양측 국내사정 얽혀 협상폭 좁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한-미 통상협상 결렬의 배경>
국내의 정치적 상황과 얽힌 대외 통상문제의 해결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이번 정·「야이터」협상의 결렬은 여실히 말해주고 있다.
오랜 기간 적자의 늪에서 성공적으로 벗어난 흑자국가의 대외통상은 흑자라는 경제적 지위에 걸맞는 국내의 정치·사회적 상황, 국민 각계 각층의 의식수준이 함께 해야만 큰 마찰없이 세계 경제속에서의 순항이 가능한 것임을 현실로 일깨워 주고있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이번 협상에서 한미양국 모두에 가장 예민한 현안이 되었던 것은 쇠고기 문제를 들 수 있다.
미측이 요구하는 관광호텔용 쇠고기를 우리가 사줄 때의 경제적 부담은 농림수산부의 추정에 따르면 최대한으로 보아 1년에 1천만 달러어치 수준이다.
올해의 대미무역흑자 예상액 95억달러의 0.1%정도니 호텔용 쇠고기를 들여와 봐야 대미 혹자는 흔들릴리는 없다.
또한 국내 쇠고기 시장은 연간 1조∼1조 2천억원 규모이므로 그의 1%도 안되는 80억원 (1천만달러) 어치의 쇠고기를 사온다 해도 국내 소값에는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는 것이 역시 정부 당국의 내부적인 판단이기도 하다.
더우기 농림수산부는 소값이 마리당 1백20만원 정도면 적정하다고 판단하고 있는데 지난 86년이후 국내소의 마릿수가 줄어드는 추세에 있어 올 하반기부터는 소값이 올라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기까지 하다.
실상이 이러한데도 정무는 이번 한미협상에서 끝까지 『지금 당장은 쇠고기수입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이미 지난해 7월 우리 정부로부터 『대통령선거만 끝나면 87년안에 호텔용 쇠고기를 개방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놓았던 미측은 『국가간의 약속을 지키라』고 맞섰다.
우리측이 쇠고기 수입 불가라는 입장을 고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경제적인 실리를 위해 호텔용 쇠고기의 수입을 터주고 미국의 치명적인 무역보복을 피해가야 한다는 대국민 설득에 나설수 있는 정부로서의 정당성이 과거 새마을 운동본부의 「수입소파동」으로 인해 결정적으로 손상되어 있기 때문이다.
소파동의 기억이 생생한 농촌이나 얼마전까지만 해도 양담배 피우는 일을 반국가적인 행위로 생각했던 일반 국민들에 대한 흑자시대의 「인식 전환」 설득은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일인데 그같은 「정당성」문제까지 얽혀 들어서야 정부의 통상외교 입장은 애초부터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그같은 문제들이 심각하게 걸려있다는 사실조차 그간 선거를 위해 쉬쉬해 온통에, 부총리의 정초 워싱턴 방문이라는 화급한 일정에 대해서도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화되어 있을 정도다.
이번 협상을 통해 다시 확인된 미국정부의 입장에도 문제가 많다.
대표적인 보기가 보험 합작문제와 양담배다.
미국 보험사와의 합작은 우리로서는 새 보험회사의 설립인데 경제력 집중 방지라는 우리의 기본 정책상 미국과는 관계가 없는 지방 생보사의 설립요건을 30대 대기업 그룹 제외라고 못박아 놓은 우리로서는 미보험사와의 합작회사라고 예외를 인정할 수가 없는 노릇이다.
분명히 논리에 맞고 더우기 그같은 「30대 제한」이 실질적으로 합작을 막기위한 방편이 아님이 확실한데도 「논리」를 좋아하는 미국인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또 양담배 문제는 미국이 공정무역을 거론하기 이전에 요즘의 외국 여행객들이 미국내에서 담배를 피우기가 눈치가 보일 만큼 자기네들은 안피우면서 남더러 담배를 더많이 사가라고 압력을 넣는 일이 얼마나 국민적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인지를 직시해야할 문제다.
어쨌든 대미 무역마찰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번 협상의 결렬은 문제의 끝이 아니라 앞으로 양쪽의 복잡한 「수순」이 예상되는 문제들의 시작이다.
한미 양국은 이달 중에 워싱턴이나 서울에서 다시 한번 양국의 입장을 확인하는 회의를 갖기로 이번에 합의했으나, 미측의 입장은 강경하고 우리는 총선을 앞둔 시점이라 정부의 「운신폭」이 좁아 협상 타결여부는 여전히 매우 불투명하다.
비단 미국만이 아니라 앞으로 EC(유럽공동체)국가들과의 무역마찰도 멀지않아 심각한 현안이 될 것이며 또 일부 품목에서의 무역마찰이 환율 문제로 불똥을 튀길 경우 그때는 훨씬 더 치명적인 국민 경제적 손실을 감당해야만 한다.
그런 뜻에서 엄청난 환솔절상(엔고)을 울며 겨자 먹기로 감수하면서도 곧「다케시타」신임 수상이 20여 가지의 농산물 수입개방 「카드」를 들고 워싱턴을 방문해야하는 일본의 예를 우리는 심각한 타산지석으로 삼아야만 한다.
또한 『대외통상 교섭노력의 5%만이 외국과의 일이고 나머지 95%는 대내설득』이라고 자신들의 어려움을 표현한 한 미국측 통상담당자의 언급은 우리로서도 예외가 아님을 모두가 깨달아야 할때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