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인상분, 1인 월 13만원씩 세금으로 지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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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민간 기업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근로자의 임금 일부를 정부가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내년에 일반회계 예산 약 3조원을 투입해 근로자 1인당 월 13만원씩 지원하는 내용이다.

내년 영세기업 대상 … 총 3조 규모

정부는 9일 일자리 안정자금 시행계획을 확정했다. 대상은 30인 미만 사업장이다. 임금이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근로자의 83%가 30인 미만 사업장에 몰려 있는 걸 감안했다. 다만 아파트 경비원이나 청소원을 고용한 업체는 30인 이상도 지원하기로 했다. 고소득 사업주(과세소득 5억원 이상)와 임금체불 경력이 있는 사업주 등은 지원 대상에서 빠진다. 월 임금이 최저임금 월 환산액(157만원)의 120%인 190만원을 넘는 근로자도 제외한다.

혜택을 받으려면 사업주가 신청 시점에 고용보험에 가입 중이어야 한다. 근로자에게 최소한 전년과 같은 수준의 임금을 주고, 고용도 유지하는 조건이다.

2018년 최저임금 인상률(16.4%)은 과거 5년 평균인상률(7.4%)보다 높다. 평균인상률을 초과한 9%포인트에 상응하는 12만원과 노무비용 등 추가 부담액(1만원)을 합한 금액을 정부가 기업에 지원한다.

프랑스와 미국은 2000년대 중반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세금 우대, 사회보험료 감면 혜택을 줬다. 일본도 일부 소규모 사업장에 설비 자금을 지원한 적이 있다. 그러나 납세자의 세금을 써서 근로자의 임금을 사업주의 계좌로 직접 입금하는 건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다.

세계 유례없는 민간 임금 직접 지원 … 1년간 보전해주다 끊으면 반발 우려 

직접 지원을 꺼리는 건 한번 시작하면 좀처럼 중단하기 어려워서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시적 지원으로 방향을 잡고 있지만 한 해만 해보고 그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계속 지원을 시사하는 발언이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린다는 정부의 뜻대로라면 적어도 2년간 올해와 같은 수준(16.4%)으로 인상해야 한다. 그러면 2019년엔 3조원으로 끝나지 않는다. 2019년이 된다고 2018년 인상에 따른 부담이 당장 사라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에 따르면 올해 지원하는 2조9708억원에다 매년 인상액에 따른 추가 지원금까지 더하면 향후 5년간 28조5233억원을 투입해야 한다. 65세 이상 노인에게 지원하는 기초연금(연간 9조8000억원) 3년치와 맞먹는 돈이다. <중앙일보 8월 31일자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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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부산대 경제학과 교수는 “특정 시점에 지원을 중단한다면 그때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것인지 의문”이라며 “계속해도, 중단해도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유례 없는 실험을 하면서 예비타당성 조사(예타)를 하지 않았다. 국가 재정지원 규모가 300억원 이상인 신규 사업은 시행 전 예타를 거쳐야 한다. ‘긴급한 경제·사회적 상황 대응 등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 면제할 수 있다는 규정을 이용했다. 당장 내년부터 영세업체의 인건비 부담이 커지고, 고용안정이 흔들릴 수 있으니 빨리 추진해야 한다는 논리다.

익명을 원한 한 중견기업 대표는 “대통령의 공약을 이행한다며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최저임금을 올려놓고 국민 혈세로 메우는 건 아랫돌을 빼내 윗돌을 괴는 격”이라고 말했다.

민간기업을 공기업 다루듯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부는 지원금의 부정 수급을 막기 위해 국세청과 고용보험 데이터베이스의 자료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입장이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부 교수는 “고용을 얼마나 하는지, 임금을 얼마나 주는지 민간기업의 경영을 세세히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라며 “기업을 통제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관치 행정의 결정판”이라고 말했다.

세종=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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