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민노당 비정규직 법안 실력행사 중단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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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비정규직 근로자 보호 법안 처리가 또 무산됐다. 민주노동당이 법안의 일부 조항이 미흡하다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와 법안심사소위원회 회의장을 점거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법안과 관련해 민주노동당의 물리력 행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6월 한 번, 올 해 두 번에 이어 이번이 네 번째다. 자신들의 의견이 관철되지 않는다고 회의장을 점거하는 것은 의회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행위다. 합의를 시도하다 안 되면 표결에 따르는 게 민주주의다.

비정규직 근로자는 외환위기 이후 매년 80만 명씩 늘어나 지난해는 550만여 명(정부 추산)으로 증가했다. 전체 근로자의 36.6%에 달한다. 비정규직 증가는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요인으로도 작용했다. 비슷한 일을 하는 데도 임금이 정규직의 63% 선에 불과하고 해고되더라도 호소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노사정이 2001년부터 머리를 맞대 보호방안을 논의했고 2004년 11월 법안이 국회에 제출돼 수차례 논의 끝에 최근에는 이견을 상당 부분 좁혔다. 법안이 통과되면 2년 이상 근무한 기간제근로자의 고용의무가 부과되는 등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권익이 대폭 향상된다. 정규직화할 수 있는 길도 크게 넓어진다.

그런데도 민주노동당은 기간제근로자 사용 사유 제한 등 몇 가지 조항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법안 처리를 방해하고 있다. 민주노총도 이런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총파업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만약 민노당이나 민주노총 주장대로 한다면 현재 360만 명에 달하는 기간제근로자의 상당수가 채용 사유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길거리로 나앉아야 한다. 민노당은 이런 현실을 알기나 하는지 모를 일이다.

법안 처리가 늦어질수록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권익 보호도 멀어져 결국 비정규직 근로자가 손해를 보게 된다. 비정규직을 위한다는 것이 오히려 그들을 괴롭히고 있는 꼴이다. 문제가 있으면 점거를 할 것이 아니라 법률 개정을 논하는 게 순리다.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도 민노당을 설득하되 안 되면 질서유지권을 발동해서라도 법안을 처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