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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급 세대교체…창업2세시대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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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87년 한해는 「민주화」의 원년으로 기록될 만큼 정치척으로도 중요한 해였지만 경제적으로도 하나의 분수령을 이룬 한해였다.
우리경제는 지난여름 전국을 휩쓴 노도와도 같았던 노사분규진통과 사상최악의 풍수혜를 딛고 1백억달러 흑자에 12%가 넘는 실질성장을 기록했다. 우리나라경제의 저력과 볼륨을 재확인한 한해였다. 이렇게 커진 우리 경제의 주역인 재계는 유례없는 진통을 겪으면서도 「성숙」의 한해를 보냈다.

<70대 원로들 물러나>
○…87년 재계는 정상급의 「세대교체」가 큰 흐름을 이루었다.
재계총수들의 모임인 전경련회장자리가 정주영현대그룹명예회장에서 구자경럭키금성그룹회장으로 넘어가 재계총본산의 창업1세대시대는 막을 내리고 창업2세시대가 개막됐다.
또 조차동삼성중공업회장·정인욱강원산업회장·송인상동양나이론회장·박용학대농그룹회장등 70대 원로들이 부회장에서 고문으로 물러앉고, 대신 이건희삼성회장, 정세영현대회장, 조석내효성회장, 박성용 금호회장, 김각중 경방회장등 젊고 패기에 찬 창업2세들이 대거 부회장으로 부상했다.
정주영회장은 전경련회장직에서 물러나는데 그치지 않고 현대그룹회장 자리도 내놓아 재계의 세대교체에 불을 댕겼다.
정회장은 일단 친동생인 정세영현대자동차회장에게 그룹회장직을 물려줬지만 본격적인 세대교체에 대비, 2세들의 입지강화에도 신경을 썼다. 장남이 된 몽구씨를 현대정공·인천제철·현대산업개발등 5개계열사를 통할하는 회장으로 격상시켰고, 후계자로 점쩍어온 6남 몽준씨를 주력기업인 현대중공업 회장에 앉혔다.
한국재계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던 이병철삼성그룹회장의 타계는 여러가지 면에서 우리나라 경제계에 큰 「뉴스」거리였다.
창업시대의 종료와 2세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하나의 상징이었으며, 한국산업사의 장을 바꾸는 전환점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예정대로 3남인 이건희부회장이 대권을 승계, 삼성의 2세체제가 본격 출범했다. 신현확전총리(삼성물산회장)와 김준성전부총리(삼성전자회장)의 보좌를 받으며 정식출범한 이건희체제의 향후 진로는 재계뿐만 아니라 국민모두의 큰 관심거리로 등장했다.
미원그룹 역시 창업자인 임대홍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장남 창욱씨가 신임회장을 맡아 2세체제가 본격 출범했다.

<유능인재 노무맡겨>
○…「6· 29선언」이후의 민주화바람은 노사분규라는 이름으로 재계를 강타했다.
7월말부터 시작된 노사분규는 말그대로 봇물처렴 터져 두달가까이 전국의 각 사업장을 휩쓸었다. 올해 발생한 3천5백여건의 노사분규중 90%이상이 6·29이후 발생, 산업기능을 마비직전의 상태까지 몰고갔다.
「성장우선」이라는 명분하에 억눌려왔던 근로자들의 욕구가 한꺼번에 분출, 수용능력의 한계에 부닥쳐 고전하는 기업들이 속출했다.
노사분규는 재계에 인식의 대전환을 요구했다. 기업이 커지면 그만큼 책임도 커진다는것을 깨달아야 했고, 근로자를 사용자와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절감토록했다.
노사분규는 노무관리의 중요성을 재계에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노무관리전담부서가 앞다투어 생겨났고, 유능한 인재일수록 노무팀에 우선 배치하는 새로운 풍속도도 나타났다.
또 공장자동화나 사무자동화등 생산성향상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는 계기가 됐다.

<국영기업도 민영화>
○…해외건설과 해운관련 18개사들 대상으로 단행된 부실기업 5차정리는 재계판도에도 변화를 가져왓다.
2천억원이 넘는 부채를 닒어지고 고전하던 정우계열 5개사(정우개발·정우석탄화학·정우엔지니어링·正우정보산업·동부해양도시가스)가 벽산그룹에 한꺼번에 넘어가 40위권 재벌 벽산은 일약 30위권대로 뛰어 올랐다.
말썽많던 고려개발은 우여곡절끝에 건설재벌 대림산업으로 넘어갔다. 인수기업들이 조세감면과 부채상환 유예혜택을 받아 부실기업정리의 고질적 문제를 다시한번 제기했음은 물론이다.
대한선주는 6개월이상의 밀고당기는 시비끝에 결국 한진그룹에 넘어갔다. 대한선주의 총부채7천9백억원중 3천7백억원만 한진이 떠안고 나머지 4천2백억원은 11개은행이 결손처분키로해 부실기업정리에 따른 「국민부담」논쟁이 또 한차례 뜨겁게 일기도했다. 한진은 이를 계기로 명실공히 육·해·공을 망라하는 운송재벌로서의 자리를 확고히 했다.
청보핀토스·청보식품등 「청보」자가 붙은 루머(?)기업들은 모두 타회사에 인수되는 비운을 맞이했다. 프로야구구단 청보핀토스는 태평양화학에, 라면업체 청보식품은 오뚜기식품에 넘어갔다. 청보는 또한 금싸라기땅 을지로의 명물 내외빌eld을 삼성그룹에 처분해야 했다.
탄광업체인 동원탄좌와 명신탄광은 자금난에 허덕이던 남서울호텔과 리버사이드호텔을 각각 매입, 알부자로서의 자금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밖에 진로는 「술기업」의 이미지에서 과감히 탈피, 한일상공의 서초동종합도매시장과 국내최대의 건어물도매업체인 중부건해물산을 인수했다. 이렇게 해서 진로는 술과 유통을 거머쥔 중견재벌로 부상했다.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조치에 따라 국영기업들이 속속 민간업체에 넘어간것도 특기할만하다.
(주)한주를 인수한 한일염업은 국내최대의 소금업체로 부상했고, 한일합섬은 1백60억원에 비료업체인 진해화학을 인수했다. 또 동부그룹은 영남화학의 인수를 놓고 효성과의 치열한 각축전 끝에 2위응찰업체보다 1백70억원이나 많은 5백32억원을 써넣어 끝내 인수에 성공하기도 했다.

<범양사건으로 파문>
○…87년재계를 돌이켜보면서 빼놓을수 없는것이 범양사건이다.
서울한복판 고층빌eld에서 한 노기업가의 투신자살은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오너기업인(박건석회장)과 전문경영인(한상연사장)사이의 뿌리깊은 불신과 불화가 박회장을 자살로 몰고간 배경이었으며 그 직접적인 계기가 서로의 투서와 음해였다는 사실은 재계는 물론 온국민에게 깊은 충격과 교훈을 남겼다.
또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1백억원이 넘는 비자금의 행방이 끝내 속시원히 밝혀지지 않은점은 아직도 국민의 뇌리에 남아있다. <배명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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