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정쟁 속 동네북 신세 된 한국 우주개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최준호 기자 중앙일보 과학ㆍ미래 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최준호 산업부 차장

최준호 산업부 차장

지난달 31일 새벽 미국 플로리다 우주기지에서 민간 우주선 스페이스X가 불을 뿜었다. 이날 오전 한국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보도자료를 내고 “무궁화위성 5A호의 발사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발표를 씁쓸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전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과학자들이었다. 보도자료의 구석에 있는 표현 하나에서 항우연 사람들의 속내를 읽을 수 있었다. ‘위성체는 프랑스 위성제작 기업인 탈레스 알레니아 스페이스가 제작했고, 미국 상업 우주발사업체인 스페이스 X가 발사했다.’ 어디 항우연 사람들뿐이랴. 인터넷에 올라온 기사의 댓글에도 ‘프랑스 위성’ ‘미국 발사’를 한탄하는 내용들이 줄을 이었다.

한국이 고도 3만6000㎞의 정지궤도에 올릴 통신위성을 만들 능력이 없을까. 무궁화위성 사업 주체인 KT 측은 한국의 위성통신 중계기술을 못미더워하고 있다. 하지만 항우연 관계자는 “한국의 통신위성 제작 기술은 이미 완성됐다”고 말했다. 2009년 7월 프랑스와 같이 만들어 쏘아 올린 천리안 1호의 통신 중계기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제작했다. 2020년 발사 예정인 천리안 2호는 순수 국내 기술로 만들어진다.

과학자들의 씁쓸한 마음은 인공위성뿐이 아니다.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의원은 지난 국정감사에서 전 정부의 달 탐사 사업이 연구개발 분야의 대표적인 적폐라고 주장했다. 틀린 말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애초 2020년에 달 착륙선을 보내 달에 태극기가 펄럭이게 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세웠던 최초 정부안보다 5년을 앞당긴 계획이었다. 과학계도 어리둥절했던 무리수였다.

요즘 과기정통부는 박근혜 정부 당시 세워뒀던 우주계획을 전면 재검토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오는 12월 열릴 우주위원회에서는 한국의 중장기 우주계획을 수정·확정한다. 이를 앞둔 우주분과위원회에서는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이 와중에 달 착륙 목표를 2020년과 2025년도 아닌 2030년으로 미루는 쪽으로 의견이 모이고 있다고 한다. 설상가상 청와대에서는 2030년까지 기다리기엔 너무 머니 내년 10월 1단형 발사체 시험발사를 한 후 현 정부 임기 내에 2단을 이용한 추가 시험발사도 하자는 얘기까지 나왔다. 과학계는 다시 어리둥절해하고 있다. 3단형 발사체에서 시험발사란 애초부터 3단형으로 해야지 1, 2단을 따로 시험발사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의미 없는 예산 낭비라고 말한다.

박근혜 정부의 달 탐사가 적폐인 이유는 정치가 과학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권력 행사의 유혹은 달콤하다. 적폐를 바로잡고자 하는 문재인 정부가 다시 정치논리로 우주계획을 흔들지 않기를 바란다.

최준호 산업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