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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전 문학 재미로 읽는 사람 나밖에 없는 것 같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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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대산문학상 수상자. 왼쪽부터 케빈 오록, 장우재, 손보미, 서효인씨. [사진 대산문화재단]

2017년 대산문학상 수상자. 왼쪽부터 케빈 오록, 장우재, 손보미, 서효인씨. [사진 대산문화재단]

 "요즘 한국 고전문학을 재미로 읽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이규보·정철·윤선도의 작품들을 영어로 번역하기 시작했는데 반응이 좋아 30년 계획을 세웠어요. 그 마지막 단계의 번역 작품으로 이런 상을 받게 돼 반갑기 짝이 없습니다."
 케빈 오록(78) 경희대 명예교수는 수상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7일 제25회 대산문학상 수상자 발표 기자간담회 자리, 한국어 발음이 정확했다. 그는 조선 시대 한시와 시조, 악장, 가사 등 600여 편의 시 작품을 영어로 번역한 선집 『The Book of Korean Poetry: Choson Dynasty』로 번역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조선시대 시선집 영어 번역해 대산문학상 받은 가톨릭 신부 케빈 오록 #제25회 대산문학상 시는 서효인, 소설은 손보미, 희곡은 장우재씨 선정 #

조선시대 시가를 번역한 시선집 『The Book of Korean Poetry: Choson Dynasty』로 번역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경희대 명예교수 케빈 오록.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신부로 1964년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조선시대 시가를 번역한 시선집 『The Book of Korean Poetry: Choson Dynasty』로 번역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경희대 명예교수 케빈 오록.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신부로 1964년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1939년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오록 교수는 가톨릭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신부다. 64년 선교활동을 위해 한국을 처음 찾았다. 관심 있던 문학 공부를 하다 82년 연세대에서 외국인으로는 국내 첫 국문학 박사학위를 땄다. 박목월·박두진 등에게 배웠다. 재미있어 한국의 고전 시가를 번역한 게 평생의 업이 됐다. 지금까지 25권, 2000수가 넘는 시 작품을 번역했다. "한국의 얼과 문학성을 살린 가독성 높은 번역으로 40년간 한국 고전문학 번역에 매진했다"는 게 선정 사유다.

 오록 교수는 "고전 시가는 한국의 커다란 문화적 재산"이라고 했다. 조선의 시가보다는 신라와 고려의 시가가 위대하다. 조선 시대 시가는 유교 이념에 따라 이성과 도덕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상상력이 억눌려서다. 특히 "한국의 가장 위대한 시는 선시(禪詩)들"이라고 했다. 말할 필요 없이 보는 것만으로 뜻이 통해서다.

 『The Book of Korean Poetry: Choson Dynasty』 표지. 싱가포르 출판사에서 출간됐다.

『The Book of Korean Poetry: Choson Dynasty』 표지. 싱가포르 출판사에서 출간됐다.

 가장 어려웠던 번역으로 윤선도의 연시조 '어부사시사'를 꼽아 이유를 물었더니 "보편적인 내용의 시 구절을 구체적인 영어로 옮기려다 보니 만족스러운 번역을 얻는 데 10년이 걸렸다"고 했다. 오록 교수는 한국어는 물론 한문에도 능통한 드문 번역자로 꼽힌다. "한국문학 번역 지원이 노벨상을 받는 데만 맞춰지다 보니 생존 문인 작품만 번역되는 건 문제"라고 꼬집었다. "서정주·박목월 등은 기가 막히게 훌륭한 시인들이었는데 죽고 나자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번역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람들이 먼저 문학작품을 읽도록 만들어야 한다" "일간지 지면에 '골든 타임' '콘트롤 타워' 등 외국인들도 알지 못하는 표현이 마구 쓰여 문제"라고 했다.

 시 부문은 서효인(36) 시인의 시집 『여수』, 소설 부문은 손보미(37)의 장편 『디어 랄프 로렌』, 희곡은 장우재(46)의 '불역쾌재'가 각각 선정됐다. 상금은 각 5000만원. 시상식은 27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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