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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용 KCC정보통신 회장 "4차 산업혁명, SW로 하느님께 도전하는 것"

중앙일보

입력

경제학자가 되겠다며 미국 유학을 떠난 청년은 우연히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눈뜨게 됐다. 굴지의 컴퓨터 회사 IBM에 한국인 최초로 입사했고, 1963년 IBM 한국 대표가 돼 귀국했다. 8년 만에 찾은 조국의 가난은 새삼스러웠다. 당시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P)은 100달러. 그의 연봉(1만2000달러)의 120분의 1 수준이었다.

IBM 한국인 최초 입사... 원조 SW프로그래머 #"3차 산업혁명만은" 거액 연봉 포기하고 귀국 #국내 최초 컴퓨터 파콤222 도입 이끌고 #75년 2000만명 대상 주민등록 전산화 작업 #"불신 심한 한국인, 만질 수 없는 건 믿질 않아" #4차 산업혁명 이끌 SW 교육에 600억 기부키로

“문득 깨달았어요. 우리가 가난한 건 1, 2차 산업혁명에 동참하지 않아서구나. 그래서 3차 산업혁명만은 우리도 뒤져선 안 된다고 생각했죠.”
1966년 IBM에 사표를 냈다. 한국에 컴퓨터를 보급하고 전산화를 이끄는 데 인생을 바쳤다. 국내 소프트웨어 1세대 이주용(82) KCC정보통신 회장의 이야기다.

지난달 말, 회사 창립 50주년을 맞아 서울 염창동 본사에서 만난 이 회장은 “척박한 환경에서도 우리가 일본보다 컴퓨터 산업이나 전산 시스템이 앞섰다는 데 큰 보람을 느낀다”며 “하지만 소프트웨어 중심의 4차 산업혁명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주용 KCC정보통신 회장이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강서구 염창동 KCC정보통신 본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이주용 KCC정보통신 회장이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강서구 염창동 KCC정보통신 본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지난 50년 간 가장 큰 보람을 느낀 일은.
“66년 귀국 후 처음으로 일했던 한국생산성본부에서 한국 최초의 컴퓨터 파콤222(일본 후지쯔 제품)를 들여오고 컴퓨터 인력을 키워낸 것, 그리고 75년에 주민등록 전산화 사업을 맡아 성인 2000만명의 정보를 전산화해낸 것이다. 모두 열악한 환경에서 진행했고, 한국의 컴퓨터 산업이 한 단계 발전하는 데 기여했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소프트웨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데, 당시에는 더 심했겠다.
“한국은 불신이 심한 사회다. 만질 수 없는 건 믿지를 않는다. 조금이라도 모르면 밀어내고 깔아뭉갠다. 3차 산업혁명도 본질이 소프트웨어다. 우리나라에선 학자들도 이해를 못 해 늘 싸워야 했다.”

이주용 KCC정보통신 회장이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강서구 염창동 KCC정보통신 본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이주용 KCC정보통신 회장이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강서구 염창동 KCC정보통신 본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그런 풍토에서 소프트웨어 사업을 지속할 수 있었던 비결은.
“몸으로 때웠다. 새벽도 밤도, 토요일도 일요일도 없이 일했다. 3차 산업혁명에서 일본을 앞서려면 절대 일본을 거쳐 소프트웨어 기술을 들여와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여러 전산화 작업에서 이런 철학을 지켰다는 게 내 자부심이다.”

-4차 산업혁명이 나라의 큰 화두다.
“답답하다. 4차 산업혁명을 어떻게 대처하겠다는 건지 제대로 된 해법을 제시하는 사람이 없다. 본질을 몰라서다. 4차 산업혁명은 소프트웨어를 극단적으로 발전시켜서 하느님께 도전하는 일이다. 하느님께서 못 하신 일을 인간이 소프트웨어로 이뤄보겠다고 싸우는 일이다. 아직도 하드웨어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큰 오산이다.”

-소프트웨어 교육에 쓰라고 큰돈을 기부했는데.
“3차 산업혁명에 매달린 덕에 내가 돈을 많이 벌었다. 4차 산업혁명을 위해 쓰고 싶다. 미래와 소프트웨어 재단을 세웠고 100억원을 냈다. 앞으로 500억원을 더 출연해 연구소를 만들려고 한다. 그런데 안타깝다. 일평생을 여기에 바치겠다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런 사람을 발견하면 꼭 붙들고 가고 싶다.”

인터뷰 중 전화벨이 울리자, 그는 구형 폴더폰을 꺼냈다. 한때 국내 최고 소프트웨어 전문가였던 그는 “아들에게 경영을 맡기고 은퇴한 지 20년이 되다 보니 컴맹이 다 됐다”며 웃었다. 장남 이상현 대표가 맡은 KCC정보통신은 자동차 수입업체 KCC모터스와 함께 연 매출 1조원대 회사로 성장했다.

임미진 기자 mi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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