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바라볼수록 더 큰 파워, 신전·미디어가 권력인 까닭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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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6호 23면

[도시와 건축] 권력 만드는 건축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디오니소스 극장. 일반 국민도 무대에 서서 시선 집중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중앙포토]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디오니소스 극장. 일반 국민도 무대에 서서 시선 집중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중앙포토]

우리는 교실에서 선생님의 강의를, 절에서는 스님의 설법을, 교회에서는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다. 그런데 어떤 때는 말씀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고, 때로는 앞에서 말하는 사람이 싫어서 자리를 박차고 나오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기는 어렵다. 예절상의 문제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주변 모든 사람이 경청하는 자리에서는 앞에서 말하는 사람의 권위와 힘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럼 왜 단상 위의 선생님은 그런 힘을 갖게 될까?

강단과 무대는 권위와 힘의 상징 #사람이 위치한 자리가 권력 만들어 #지구라트·피라미드·롯데타워는 #권력 창출하는 초고층 선호의 산물 #현대엔 미디어 장악이 힘의 원천 #권력 분배와 균형, 상호 견제 중요

일반적으로 교사는 지식과 성적평가를 통해서, 종교지도자는 말씀을 통해서 권력을 만든다. 하지만 이런 이유들이 변변찮은데도 그 권력이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 건축적으로 그들의 권력이 강화되는 이유는 없을까? 필자는 그 이유가 사람들이 바라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단상 위에 서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을 쳐다본다. 많은 사람이 바라보면, 바라보는 사람들이 보여지는 대상의 추종자로 느껴지고, 그 숫자만큼 큰 집단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으로 보이게 된다. 그렇게 보여지는 사람은 권력을 가진다.

TV 뉴스를 보면 여야 국회의원들이 몸싸움을 하면서 국회 단상에 서있는 사람을 끌어내리려는 모습이 가끔 연출된다. 단상의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것은 그 사람의 권력을 빼앗는 일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직함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그 사람이 위치한 물리적인 자리가 권력을 만들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는 곳에 위치하면 권력이 생긴다. 우리는 축구장에 가면 수만 명의 관중들이 객석에 앉아서 공을 드리블하는 선수를 집중해서 바라본다. 그 순간 그 선수는 중요한 사람이 되고 그 선수에게 권력이 부여된다. 영화 ‘글레디에이터’를 보면 황제보다 검투사가 더 인기라고 황제가 투덜거리는 장면이 있다. 그런 현상이 생기는 것은 콜로세움에서는 관객석에 위치한 황제보다 경기장 중앙에 서있는 검투사에게 관객이 더 집중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유로 교사·목사·운동선수 등 시선의 집중을 받는 사람은 권력을 가지게 된다.

그리스식 민주사회 만든 디오니소스 극장

이들은 건축적으로 군중이 바라보게 하는 공간구조의 중심점에 위치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바라보면 더 많은 권력을 갖게 된다. 선생님이 강단에 서면 학생들의 책상과 의자는 모두 강단을 향해 배치된다. 그런 공간구조는 강단에 서있는 사람이 누구든 상관없이 권력을 갖게 만든다. 모든 공연 무대도 마찬가지다. 필자는 예전에 텅 빈 연극무대에 서 본 경험이 있다. 원형극장의 구조였는데 수천 개의 빈 의자가 필자가 서있는 무대 중심을 향해 있는 것을 보고 정신이 번쩍 드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다. 사람도 없고 그저 빈 의자였을 뿐인데도 그 공간의 구성은 충분히 특별한 차이를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권력이 있어서 그런 배치가 된 것일까 아니면 배치가 권력을 만드는 것일까? 그 둘은 계속 순환하면서 강화하는 쪽으로 진화해왔다.

건축의 역사를 보면 이러한 원리를 잘 아는 왕들은 시선 집중을 위해 평면을 좌우대칭으로 만들고 중심축을 만들어서 그 선상에 앉았다. 권력의 집중을 더 강화하기 위해서 그 자리를 높게 만들어서 멀리서도 바라볼 수 있게 했다. 더 많은 사람이 보게 만들어서 더 큰 권력을 갖기 위해서다. 대표적인 사례가 수메르 문명의 ‘지구라트’이다. 지구라트는 좌우대칭의 구성에 가운데 계단이 높게 올라가는 구조이다. 맨 꼭대기에는 신전을 위치시켰는데, 높기 때문에 주변의 수만 명의 사람이 바라볼 수 있는 구조이다.

좌우대칭 구조를 띤 자금성이나 베르사이유 궁전도 한 사례가 될 수 있다. 자금성에서 황제의 위치를 보면 가운데 축선 상에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있다. 높이 세울수록 많은 사람이 쳐다볼 수 있고 그래서 더 많은 권력이 창출되기 때문에 권력자는 고층건물을 선호한다. 과거의 지구라트, 피라미드도 당대 초고층 건물이었고 현대도시에서는 대기업 총수가 초고층사옥을 짓는다. 서울에서 가장 높은 롯데타워는 서울 대부분 지역에서 잘 보인다. 시민들이 계속 바라보게 되면 초고층 건물의 주인은 권력을 가지게 된다.

최초의 극장은 기원전 500년 께 만들어진 아테네의 디오니소스 극장이다. 극장의 무대는 관객의 시선집중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다. 그리고 그 무대에는 국민 누구나가 배우가 되면 설 수 있다. 국민 누구나가 권력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시선의 집중을 왕이나 제사장이 아니라 일반 국민도 언제든지 받을 수 있게 해주는 디오니소스 극장이 그리스 민주주의 사회를 완성시켰다고도 할 수 있다.

집회의 성지 광화문 광장은 권력 중심축

부시 행정부 시절 낙태권을 옹호하는 여성들이 대규모 집회를 열고 있는 미국 워싱턴의 의사당과 링컨기념관 사이 광장.

부시 행정부 시절 낙태권을 옹호하는 여성들이 대규모 집회를 열고 있는 미국 워싱턴의 의사당과 링컨기념관 사이 광장.

이러한 시각에서 도시구조를 살펴보자. 미국 워싱턴DC의 도시계획에는 링컨 기념관-워싱턴 기념비-국회의사당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축이 있다. 이 축선 상에 미국의 정신을 보여주는 중요한 건축물들은 다 들어가 있다. 국회의사당 역시 그 축선 상에 있어서 현재의 국회의사당이 워싱턴과 링컨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권력의 정통성을 인정받는 것처럼 보인다. 프랑스 파리는 이러한 역사 축의 원조 격 도시다. 루브르 박물관부터 콩코드 광장을 거쳐서 개선문까지 이어지는 역사의 축은 파리의 척추가 되는 중심공간이다. 그리고 이 축은 계속 이어져서 신도시인 라데팡스까지 이어져 있다. 라데팡스에는 ‘그랜드아치’라는 개선문처럼 생긴 건축물이 있다. 그곳에선 마치 예전의 황제처럼 누구나가 역사적 축의 선상에 서있을 수 있다. 그것은 누구나가 권력의 주인이 될 수 있는 민주적 도시라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정치적 집회를 할 때 주로 광화문 광장에 모인다. 우리나라의 경우 역사적 중심축이 이순신 동상-세종대왕 동상-광화문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 축선 상의 중심공간이 광화문 광장이다. 각종 집회가 이곳에서 이뤄지는 것은 단순히 넓다는 것을 떠나서 권력의 중심축을 누가 점유하고 있느냐를 보여주는 중요한 데몬스트레이션이다. 마찬가지로 베트남전쟁당시 미국 내 반전시위나 ‘마틴 루터 킹’의 정치집회도 워싱턴DC 역사의 축인 링컨 기념관과 워싱턴 기념비의 사이에 위치한 넓은 공간에서 이뤄졌다. 도시를 만들다 보면 이러한 중요한 축이 생겨나고 그 축의 선상에 위치한 공간을 점유한다는 것은 권력의 장악을 보여주는 것이다.

현대에 와서는 바라보게 해서 권력을 창출하는 방법이 건축 외에 더 생겼다. TV, 영화 같은 미디어가 그 방법이다. TV모니터에 많이 나오는 사람은 권력을 가지게 된다. 현대인들은 신전 꼭대기를 우러러보기보다는 TV모니터나 스마트폰 스크린을 더 많이 쳐다본다. 그 모니터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 권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가들은 나쁜 소식으로라도 TV뉴스에 나오기를 원한다. 이 원리를 잘 이용한 사람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그는 과거 ‘어프렌티스’라는 연예프로그램을 통해서 권력을 얻었고, 각종 안 좋은 뉴스를 통해서도 미디어에 거론되면서 점차적으로 권력을 가졌다. 그러다가 결국 대통령까지 된 것이다.

현대인이 SNS를 많이 하는 이유

건축에서 미디어로 양상만 바뀌었을 뿐 바라보기와 권력의 본질은 그대로다. 현재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희망 직업 1위가 연예인인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이 사회에서 TV에 가장 많이 나오는 연예인이 최고의 권력자이기 때문이다. TV방송에 나온 사람이 권력을 가진다는 배경에서 보면 ‘전국노래자랑’은 마치 그리스의 극장처럼 국민 누구나가 용기만 있으면 TV 속 무대에 설 수 있게 해주는 민주적인 장치라고 할 수 있겠다.

TV나 영화에 나올 수 없는 일반인들은 그러한 권력을 가지기 위해서 페이스북과 각종 SNS에 자신의 사진을 올린다. 내 사진을 누군가가 본다면 내가 권력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감시의 방식으로 보여지는 것은 권력을 빼앗기지만 내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보여주는 것은 오히려 권력을 갖게 된다. 미디어를 통해서 권력을 가진 연예인과 과거의 권력자와 다른 점이 있다면 연예인은 영속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5000년 전 수메르 문명의 권력자는 건축물을 만들고 죽을 때 까지 점유했다면 지금의 연예인은 방송국의 시스템을 잠시 빌려서 아주 짧은 기간 권력을 갖는다는 점이 다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며 미디어 시스템을 장악한 사람이 이 사회에서 권력을 가진 사람이다. 방송국 시스템이 곧 과거의 신전건축이다.

현대는 미디어가 권력을 만드는 세상이다. 곧 시청률이 권력이 되는 세상이다. 인기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PD는 과거의 건축가가 했던 역할을 하는 중요한 권력 창출자이다. 앵커맨은 화면의 중앙에 위치하기 때문에 큰 권력을 가진다. 마치 고대의 신전 꼭대기에 서있는 제사장과 같다. 권력이 생겨나면 함께 따라오는 것은 중독이다. 연예인들이 인기가 내려갈 때 힘든 것은 이러한 권력의 중독에서 벗어나는 금단현상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권력은 영원하지 않다. 특히나 미디어를 통한 현대사회에서 만들어지는 권력은 찰나성이 더욱 심하다.

우리는 건축과 미디어를 통해서 권력을 만드는 법을 안다. 이제 더 중요한 문제는 그렇게 만들어진 권력을 어떻게 잘 분배해서 균형을 맞추고 상호 견제하게 만드느냐이다. 그리스는 인류역사 최초로 객석과 무대라는 구성의 극장을 만듦으로써 시민사회를 완성했다. 지금은 우리사회를 한층 더 성숙시킬 수 있는 새로운 건축 장치가 필요한 때이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
하버드·MIT에서 건축 공부를 했다. 세계적인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 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혔다. 아테나움 건축상, 아시아건축가협회 건축상 등을 수상했고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등 저술활동도 활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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