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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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세간의 개탄과 시속의 타락과 생활양식의 변혁속에서도 마치 하늘의 반짝이는 별빛은 변함없듯이 사람의 길을 꿋꿋이 가고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인류문화가 발전하고 인간의 정신이 역사속에 맥맥이 살아있는 것은 소리없이 누가 뭐라든 사람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의 덕이다.
전국의 방방곡곡에서 앞을 다루어 추천된 효행자들의 행적은 그런 점에서 감동 아닌 것이 없었고 「휴먼드라마」 아닌 것이 없었다.
일찌기 장자는 『공경하는 마음으로 효도하기는 쉬워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효도하기는 어렵다』(이경효역 이애효난)는 말을 남겼다. 세상에 형편만 넉넉하면 나도 효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 갈다. 극한의 상황속에서 희생과 고통을 무릅쓰고 헌신적인 사랑을 하기란 비록 그 대상이 친부모일지라도 쉬운 노릇이 아니다.
토론의 여지도 없이 효행대상자로 선정된 이영희씨(61)의 경우는 인간의 역경은 극복하기 나름으로 도리어 희망과 용기를 줄 수도 있다는 값진 교훈을 보여주고 있다.
6·25동난에 참전한 부군의 전사로 21세의 젊은 나이에 청상(청상)이 된 이여사는 위로는 양대의 시조부모와 시모를 모시고 소작농을 연작해 생계를 꾸려가고 한편으로는 농토를 조금씩 늘려 가는가 하면 그런 가운데 반세기 가까이 백고의 시조모를 봉양해 왔다. 그 동안 시조부.·시부·시모가 오랜 병환끝에 모두 이씨의 품에서 작고했고, 지금은 99세의 시조모를 모시고 산다.
이씨의 극진한 효성은 외아들에게 무언의 감화를 준 듯, 그는 홀어머니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없이 세칭 일류대학에까지 진학해 지금은 미국MIT (매사추세츠공대)에서 미생물학 자로 봉직하는 등 번듯한 일가를 이루었다. 어느 모로 보나 여유가 있어서 그랬던 것 같지는 않다. 부모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리는 것은 물질적 봉양 못지않게 훌륭한 봉양이다. 물론 몸이 불편한 노인일수록 그 옆에는 정성스런 수발을 드는 사람이 있어야 하지만 효성이란 어느 하나에만 치우친 것보다 모든 정성과 모든 희생과 모든 사랑이 요구되는 것이다.
가상을 받은 신명임씨(58)의 생애 또한 기구한 가운데 감동을 준다. 11세의 나이에 믿며니리로 출가해 가난한 집 살림을 뒷바라지하며 농사지으랴, 중풍으로 누운 시아버지의 병수발을 드는가 하면 97세를 누리는 시어머니 봉양도 적은 일은 아니었다.
남편 역시 병약한 몸으로 신씨의 수발을 받아야 했다.
고초와 역경뿐인 생활환경을 극복하며 그런 속에서도 웃어른에 대한 병구완과 봉양이 지극한 것은 범인의 상상을 넘는 일이다.
올해 효행자의 행적들 가운데는 예사로 보아 넘길 수 없는 또 하나의 효행자가 있었다. 22 세의 효녀 한은희양의 경우다.
비록 효행기간은 짧지만 척추골절로 거동이 어려운 아버지와 다섯 동생을 거느리고 살림을 끌어가는 한양은 웃어른에 대한 효성에 모자람이 없고 동생들의 뒷바라지에 세상 떠난 어머니의 구실을 대신하고있었다.
한양의 경우는 효행을 표창하기보다 격려해 주자는 중론에서 올해는 가상자군로 한사람 더 늘려 선정했다. 그대로 보아 넘기기엔 그의 행적이 너무 갸륵하고, 나이 또한 너무 창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 부모를 사랑하는 자는 감히 남을 미워하지 못하고, 제 부모를 공경하는 자는 감히 남을 업신여기지 못한다.
사랑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제 부모에게 다하고 보면 덕스러운 가르침이 모든 사람들에게 두루 미쳐 천하가 본받게 될 것이다.』(공자·효경) .
올해 효행자로 선정된 전국의 14명 효자효녀들은 천하에 감우가 스며들 듯 그 덕행이 고루 스며 더 없는 향당으로 우리세상을 밝고 화평하게 만들어 주는 구실을 하리라 믿는다.

<중앙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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