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당 20년 만에 등 떠밀려 떠난 ‘보수 아이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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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은 1997년 12월 이회창 한나라당(자유한국당의 전신) 대선후보의 영입 제안에 응해 정계에 입문했다.

정치적 ‘1호 당원 출당’ #최고위원회 오전에만 100분 토론 #결국 홍 대표에게 정치적 책임 넘겨

1년 미만의 탈당 기간(2002년 2~11월, 탈당 후 미래연합 창당)을 제외한 20년간 ‘박근혜’ 없는 한나라당이나 새누리당·한국당은 생각하기 힘들었다. 2004년 ‘차떼기(불법 대선자금을 트럭째로 수령) 사건’ 때 천막당사를 치고 침몰하는 한나라당을 구했고, 재·보선-지방선거-총선-대선 때마다 당을 승리로 이끌며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하지만 이제 등을 떠밀려 당과의 연을 끊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 이래 반복된 ‘대통령 당적 이탈’이란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박 전 대통령이 7번째다. 이전 대통령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탈당이 아닌 출당(黜黨·제명)이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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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전 대통령 출당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열린 3일 최고위원회의는 오전에만 100분 동안 진행됐다.

홍준표 대표를 포함해 정우택 원내대표, 이철우·김태흠·류여해·이재만 최고위원, 이재영 청년최고위원, 이종혁 지명직 최고위원, 김광림 정책위의장 등 9명이 모두 참석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회의 뒤 이종혁 최고위원은 기자들에게 “이 문제를 표결해서는 안 된다는 데 일치를 봤다”며 “당 대표가 충분히 최고위의 의견을 숙고해서 결정하고 모든 책임을 지기로 했다”고 전했다. 박 전 대통령 출당에 부정적이었던 정 원내대표 등이 홍 대표에게 정치적 책임을 넘긴 게 결정적이었다.

이 문제가 공식화된 것은 지난 8월 16일 대구 토크 콘서트 때였다. 홍 대표는 “국정 농단에 관여했던 핵심 친박과 박 전 대통령은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당에서 앞으로 출당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두 달 뒤인 지난달 20일 당 윤리위에서 박 전 대통령과 서청원·최경환 의원에 대한 ‘탈당 권유’ 징계를 의결했다. 이후 당원 탈당에 대한 당내 규정을 두고 홍 대표 측과 친박계가 충돌했다.

홍 대표 측은 ‘탈당 권유 의결 통지를 받은 날부터 10일 이내에 탈당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바로 제명 처분한다’는 윤리위 규정 제21조 3항을 근거로 들었고, 친박계는 ‘최고위 의결을 거쳐 확정해야 한다’는 제21조 2항을 내세워 반발했다.

이에 대해 홍 대표는 “현재의 당헌·당규는 내가 만들었다”며 “본인이 굳이 이의 제기를 안 했고, 제명 처분의 주체는 당 대표”라고 유권해석했다.

백민경 기자 baek.mi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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