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공원 짓지 마” … 구미 주민들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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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지난달 31일 경북 구미시청 인근에 민간공원 조성 반대 현수막이 걸린 모습. [김정석 기자]

지난달 31일 경북 구미시청 인근에 민간공원 조성 반대 현수막이 걸린 모습. [김정석 기자]

지난달 31일 오전 경북 구미시의회 3층. 제217회 임시회 본회의를 앞둔 자리에 주민 100여 명이 좁은 복도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일부 주민들은 ‘시민의 동의 없는 중앙공원 개발 반대’라는 글귀가 적힌 피켓도 들고 있었다. 이들은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본회의가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시, 공원일몰제 앞두고 조성 추진 #예산문제로 민간업자에 사업 맡겨 #3개 부지 아파트 8500세대 들어서 #집값 하락 걱정에 지역 주민 반발 #시의회도 찬반 엇갈려 결론 못 내

자신이 사는 지역에 지자체가 공원을 조성한다고 하자 주민 수백 명이 반대하고 나선 상황. 언뜻 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보통 군사시설이나 화학공장, 교도소, 장례식장 등을 짓는다고 하면 주민 반대가 일어나곤 하지만, 공원을 조성한다고 반대하는 사례는 드물다.

이들이 공원 조성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주택 과잉 공급에 따른 주택 가격 하락’이다. 공원을 짓는데 주택 가격이 떨어지는 이유는 뭘까.

이날 구미시의회 본회의장 앞에서 한 주민이 피켓을 들고 있다. [김정석 기자]

이날 구미시의회 본회의장 앞에서 한 주민이 피켓을 들고 있다. [김정석 기자]

갈등의 중심에는 ‘공원 일몰제’가 있다. 공원일몰제는 도시계획상 도시근린공원으로 지정된 땅이 장기간 방치될 경우 2020년 7월 1일자로 해제시키는 제도다. 1999년 헌법재판소가 장기미집행 도시계획시설으로 국민의 재산권이 침해되는 것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리면서 도입됐다.

이에 따라 각 지자체는 2020년 공원 일몰제 시행 전까지 공원 개발을 시작하거나, 제도 시행 후 각 소유자들에게 종전 용도지역으로 토지를 돌려줘야 한다. 문제는 예산이다. 도시근린공원으로 지정·고시된 구역의 면적이 넓고 땅값이 높으면 지자체가 토지보상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다.

구미시가 선택한 방법은 이들 도시근린공원을 민간 사업자에게 맡기는 것이다. 공원녹지법에 따라 지자체는 도시근린공원으로 지정된 땅을 민간 사업자에게 개발하도록 할 수 있다. 전체 토지의 70%를 공원으로 개발해 기부채납해야 하는 조건이 달린다. 나머지 30%는 사업자가 주택을 짓거나 상업시설로 개발해 수익사업을 할 수 있다.

구미시는 현재 3개 공원을 민간공원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동락공원(8만3781㎡)·형곡중앙공원(60만5659㎡)·꽃동산공원(68만8860㎡) 등 총 면적이 137만8300㎡에 이른다. 만약 이 토지를 모두 매입해 공원으로 조성할 경우 1896억원이 드는 것으로 구미시는 추산하고 있다. 이들 공원이 민간공원으로 개발되면 부지 30%에 아파트가 건설된다. 동락공원에 1020가구, 형곡중앙공원에 3493가구, 꽃동산공원에 3955가구 등 약 8500가구 규모다.

주민들과 지역 시민단체가 민간공원 조성에 반대하는 결정적 이유도 대규모 주택 공급이다. 8500가구가 추가로 들어오면 구미시 주택보급률이 150%를 넘어 주택 가격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이다.

구미YMCA는 최근 보도자료를 내고 “주택 과잉 공급에 대한 우려가 팽배한 상황에서 녹지를 훼손하면서까지 8500세대를 추가로 건설하는 계획이 구미시와 일부 시의원, 업체만의 의견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구미시는 일부 주민과 시민단체가 주장하는 ‘주택보급률 150%’가 과장된 수치라고 지적했다. 구미시 관계자는 “지난해 말 기준 구미시 주택 수는 19만5757가구로 공급대상 가구 16만286가구의 122.1%지만 이 중 원룸 형태의 가구가 6만6081가구”라며 “이를 제외하면 구미시의 주택보급률은 80.9%”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8500가구가 추가로 들어선다 하더라도 주택보급률은 150%가 아니라 127.7%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구미시의회는 이날 열린 본회의에서 민간공원 조성사업에 대한 안건 표결을 보류했다. 지난 7월 주민들의 반대 의견을 의식해 표결을 미룬 데 이어 또 다시 결정을 미룬 셈이다. 김익수 구미시의회 의장은 본회의에 앞서 “문재인 정부가 공론화를 통해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 재개 여부를 결정한 것처럼 구미시의회도 대시민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에 따라 결정을 내리겠다”고 말했다.

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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