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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아리바우길 열리다] 금강송과 나란히 걸은 삼십 리 길 … 온몸에 솔향이 스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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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아리바우길 7코스는 금강소나무와 내내 함께한다. 어명정에서 술잔바위 가는 길 비탈을 따라 엄청난 규모의 금강소나무 군락지가 있었다. 소나무 아래가 송이버섯 밭이다.

올림픽 아리바우길 7코스는 금강소나무와 내내 함께한다. 어명정에서 술잔바위 가는 길 비탈을 따라 엄청난 규모의 금강소나무 군락지가 있었다. 소나무 아래가 송이버섯 밭이다.

올림픽 아리바우길 강릉 구간은 기존의 강릉바우길과 길을 공유한다. 코스로 보면 6코스부터 9코스까지다. 올림픽 아리바우길 6코스는 강릉바우길 2코스, 올림픽 아리바우길 7코스는 강릉바우길 3코스, 올림픽 아리바우길 8코스는 강릉바우길 10코스, 올림픽 아리바우길 9코스는 강릉바우길 11코스에 해당한다.

올림픽 아리바우길 이정표가 강릉바우길 이정표보다 아직은 드문 형편이어서, 강릉에 들어서면 강릉바우길 이정표를 보고 걷는 것이 편할 수 있다. 대신 주의할 점이 있다. 강릉바우길은 2009년 조성했다. 그때와 지금의 표기가 다른 경우가 종종 있다. 이를테면 ‘보광리 게스트하우스’라고 적힌 안내판이 군데군데 서 있다. 강릉바우길 게스트하우스를 이르는 것인데, 성산면 보광리의 게스트하우스는 폐쇄된 지 오래다. 현재 강릉바우길 게스트하우스는 강릉 시내(임영동)에 있다.

강릉바우길에는 코스마다 작은 제목이 있다. 강릉바우길 3코스, 즉 올림픽 아리바우길 7코스의 부제가 ‘어명 받은 소나무길’이다. 올림픽 아리바우길 7코스는 부제처럼 소나무 숲에서 온종일 거니는 길이다. 경북 울진의 금강소나무숲길 버금가는 명품 송림길이라 할 수 있다.

보현사 입구에서 길은 산으로 들어간다. 임도 옆으로 붉은 흙길이 나 있다. 숲에 드니 온통 소나무다. 소나무도 보통 소나무가 아니다. 반듯하고 잘생긴 금강소나무다. 금강소나무는 백두대간에서 뻗어나온 산자락에 서식한다. 길은 7코스 초입에서 백두대간을 내려왔지만, 산은 여전히 백두대간의 식생을 품고 있다.

온몸에 솔향이 배는 기분이 들 때쯤 흥미로운 장면이 펼쳐진다. 길 왼편으로 소나무가, 오른편으로 굴참나무·갈참나무 등 참나무가 마주보고 서 있다. 자연 그대로의 숲은 아니다. 붉은 길을 사이에 두고 두 종류의 나무가 500m 이상 스스로 도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근래에 심은 것도 아니다. 소나무와 참나무 모두 하늘을 가릴 만큼 높고 크다.

숲에서 빠져나오니 임도다. 임도는 의외로 널찍하다.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폭이다. 평소에는 보현사 입구에서 자동차를 막지만, 명절 기간에는 성묘객을 위해 길을 열어놓는다고 한다. 10분쯤 걸었을까. 모퉁이를 돌아서자 길가에 선 정자가 보인다. 어명정(御命亭)이다. 어명정은 원래 아름드리 노송이 있던 자리다. 2007년 11월 29일 광화문 복원을 위해 벌채한 소나무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어명정. 2007년 광화문 복원을 위해 벌채한 소나무가 서 있던 자리에 있다

어명정. 2007년 광화문 복원을 위해 벌채한 소나무가 서 있던 자리에 있다

정자 복판에 그때 베어낸 금강소나무 세 그루의 그루터기가 있다. 지름이 90㎝나 되는 대경목(大莖木)이다. 안내문에 ‘금강소나무 벌채를 위해 교지를 내리고 위령제를 지낸 뒤 대경목을 베고 묘목을 심었다’고 적혀 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유홍준 교수가 문화재청장일 때 당시 산림청장과 함께 “어명이오!”라고 외치고 도끼를 내렸다고 한다.

올림픽 아리바우길은 어명정에서 다시 산길로 접어든다. 멧돼지들이 진흙 목욕을 한다는 ‘멧돼지 쉼터’를 지나고 비탈을 따라 늘어선 엄청난 규모의 금강소나무 군락지를 지나면 마루금에 놓인 펑퍼짐한 바위가 나타난다. 술잔바위다. 바위 위에 술잔처럼 생긴 동그란 구멍이 세 개 파여 있다. 술잔바위에서 선자령 북쪽 백두대간이 내다보인다. 시선 왼쪽의 봉우리가 곤신봉(1131m)이고, 풍력발전기 늘어선 능선의 봉우리가 매봉(1173m)이다. 매봉 너머에 대관령 삼양목장이 있다.

술잔바위에서 완만한 내리막이 이어진다. 아직도 소나무 숲이다. 이제 몸에서도 솔향이 풍기는 것 같다. 소나무에 대해서 다시 생각했다. 우리는 소나무와 더불어 살았다. 태어나면 금줄에 솔가지를 꽂았고, 소나무로 지은 집에 살았고, 솔잎과 솔방울로 아궁이를 지폈고, 송진을 긁어내 불을 살렸고, 솔방울을 따 술을 담갔고, 죽어서는 소나무로 짠 관에 들어가 누웠다. 고향 같이, 아니 무덤 같이 편안한 길이었다. 명주군왕릉에서 7코스가 끝난다. 여기도 죄 소나무다.

특별취재팀=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안충기 기자·화가 newnew9@joongang.co.kr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올림픽 아리바우길 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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