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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아리바우길 열리다] 송천 물길 돌고 도니 눈앞에 발왕산 올림픽 스키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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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천 물길을 따라 하염없이 거슬러 올랐다. 도암댐 어귀에서 내려다보니 내내 걸어왔던 숲길이 실은 거대한 협곡이었다. 길에서 나와야 제 걸어온 길이 보일 때가 있다.

송천 물길을 따라 하염없이 거슬러 올랐다. 도암댐 어귀에서 내려다보니 내내 걸어왔던 숲길이 실은 거대한 협곡이었다. 길에서 나와야 제 걸어온 길이 보일 때가 있다.

4코스는 배나드리마을에서 시작한다. 한자 이름은 선도리(船渡里). 배가 드나드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4코스를 걷는 건 배나드리마을의 이름을 풀이하는 일일지 모른다. 4코스는 안반데기를 오르는 마지막 2.7㎞ 구간을 제외하곤 내내 송천 물길을 곁에 둔다. 앞서 마치지 못한 정선 물길 이야기를 강릉 땅에 들어와서 끝맺는다.

1코스는 조양강 물길을 거슬러 올라왔다. 2코스는 아우라지까지 조양강이었고, 아우라지에서 구절리까지는 송천이었다. 3코스는 송천을 아랫도리에 두른 노추산을 올랐다 내려왔다. 산에서 내려왔으니 다시 강을 따라 걸을 차례다. 배나드리마을 앞을 흐르는 개천이 송천이다.

송천은 평창군 황병산(1407m) 계곡에서 흘러내려 정선군 구절리와 유천리를 지나 아우라지에 이르는 67.5㎞ 길이의 물길을 말한다. 송천이 아우라지에서 골지천을 만나면 조양강이 된다. 골지천은 태백시 금대봉(1418m) 계곡에서 발원해 아우라지에서 송천과 합칠 때까지 93.75㎞ 이어지는 물길이다. 조양강이 정선군 가수리에서 동대천을 받아들이면 동강이 된다. 동강이 영월에서 서강과 섞이면 남한강이라 불리고, 남한강이 두물머리에서 북한강과 어울려 한강을 이룬다.

그러니까 우리는 내내 한강의 조상을 좇아 걸어온 셈이다. 한강의 아버지(남한강)의 아버지(동강)의 아버지(조양강)의 아버지(송천)까지 찾아뵈러 이 먼길을 나선 것이다. 물은 하나인데 이렇게 이름이 많다. 이름이 많으니 사연도 많다. 옛날 한양 광나루까지 내려갔던 뗏목이 이 물길을 올라탔다. 배나드리마을이 옛날 떼꾼이 뗏목을 띄웠던 나루터 중에서 제일 북쪽의 나루터였다.

떼꾼의 역사는 1876년 경복궁 복원사업에서 시작한다. 임진왜란 때 불 타 없어진 경복궁을 복원하려면 강원도의 소나무가 필요했다. 뭍의 길이 변변치 못했던 시절, 물길만큼 신속한 원목 운반경로도 없었다. 남한강 천 리 길은 이렇게 열렸다.

떼꾼의 작업은 고단했고 또 위험했다. 남한강에는 황새여울·된꼬까리 같은 악명 높은 여울이 많았다. 하여 한 번 떼를 띄우면 큰 돈을 만질 수 있었다. ‘떼돈’이라는 말이 이 물길에서 비롯됐다. 떼꾼, 아니 떼돈을 기다리는 주막도 나루터마다 들어섰다. 동강 어라연의 ‘전산옥’은 정선아리랑에도 등장하는 전설적인 주막이다. ‘황새여울 된꼬까리 떼를 띄워 놓았네/만지산에 전산옥이야 술상 차려 놓게나.’ 그러니까 길 앞에서 행정구역은 부질없는 것이다. 강릉이면 어떻고, 정선이면 또 어떠한가. 그 물길이고 그 산자락인데. 아리랑 가락 또한 하나인데.

4코스 송천 구간은 시멘트 포장이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길이 곱다.

4코스 송천 구간은 시멘트 포장이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길이 곱다.

송천 물길을 따라 이어진 길은 도암댐 앞까지 내내 곱고 편안하다. 시멘트 포장 구간이 대부분이지만, 숲길이 아늑해 피로를 못 느낀다. 길 왼쪽으로는 송천이 흐르고 오른쪽으로는 가파른 산이 서 있다. 저 산 위에 안반데기가 숨어 있다.

배나드리마을에서 도암댐 입구까지 약 10㎞나 이어지는 천변 길은 올림픽 아리바우길에서 손꼽히는 명품 구간이다. 봄에는 길가의 아름드리 신배나무가 흰 꽃을 흩뿌리고, 여름에는 짙은 녹음이 서늘한 그늘을 드리우고, 겨울에는 뽀드득뽀드득 소리 내는 포근한 눈길이 된다고 했다. 이 계절에는 발왕산(1458m) 자락에서 내려온 울긋불긋 단풍이 시야를 적신다. 안내판을 보니 2010년 길을 닦았다고 나와 있다. 자동차 도로라지만 통행량이 적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마음 맞는 길동무와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걷고 싶다.

도암댐 입구에서 내려다보이는 송천 계곡은 거대한 협곡이다. 로키산맥의 협곡이 부럽지 않은 장관이다. 도암댐 너머로 발왕산 정상의 용평스키장 곤돌라 타워도 살짝 보인다. 도암댐부터 평창 땅이다. 다시 말하지만 길 위에서 사람이 그은 경계는 무의미하다. 도암댐에 담긴 송천 물은 도암호라고 달리 불린다. 도암호를 돌아나온 길이 피골 어귀에서 산으로 들어간다. 여기에서부터 2.7㎞ 길이의 산길이 시작된다. 1시간 남짓 걸려 약 300m의 비고를 극복하면 산 위에서 놀라운 장면이 펼쳐진다.

특별취재팀=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안충기 기자·화가 newnew9@joongang.co.kr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올림픽 아리바우길 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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