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탈원전하면서 우리 원전 사달라면 설득력 있겠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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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국무회의를 열어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 재개와 ‘탈원전 로드맵’ 안건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은 백지화되고 기존 원전의 수명 연장 불허가 확정됐다. 문 대통령은 ‘탈원전이란 국민 뜻을 받들어 국가 현안을 결정하는 역사적 첫걸음’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 발전 비중을 높이고 원전 발전 비중은 크게 줄여 나가겠다는 뜻이다.

후대에 청정 에너지 시스템을 물려주겠다는 취지야 나무랄 게 없다. 문제는 국민 안전을 위해 탈원전을 선언한 나라가 다른 나라엔 원전을 적극 수출하겠다는 자기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느냐는 거다. 청와대는 이달 말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열리는 세계 원자력장관회의에 특사를 파견할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 원전의 안전성과 기술력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얼마 전 ‘원전수출 전략협의회’를 열어 관련 기관·업체들에 해외 원전 수출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정작 우리는 안전을 문제 삼아 우리 원전을 외면하면서 외국을 향해 기술력과 경제성이 뛰어난 한국 원전을 선택해 달라는 논리는 어불성설이다. 도입하려는 나라도 안정적인 건설과 운용, 사후 관리에서 큰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치권과 환경 단체가 ‘수출 중단’을 외치고 정부마저 탈원전을 결정한 상황에서 한국산 원전을 채택해 달라는 세일즈 외교가 먹힐 공간은 크지 않다.

먼저 우리 정부의 이중적 태도를 국제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해야 한다. 더 나아가 무조건적으로 ‘원전은 나쁜 것’이고 ‘신재생에너지는 좋은 것’이란 어설픈 인식과 주장도 다시 한 번 진지하게 따져 봐야 한다. 정부는 이제라도 탈원전 도그마에서 벗어나 전문가 위원회로 하여금 에너지 믹스를 다시 검토하게 하는 게 옳은 방향이다. 아무리 진영논리가 횡행해도 전기는 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