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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 연정협약’ 수준의 정책 연합 통한 정당 통합 돼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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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4호 02면

사설

지금 우리 정가에선 통합·연정·협치 논의가 한창이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사이의 보수 통합,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사이의 중도·보수 통합,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간 연정 논의 등이 물밑에서 혹은 물 밖에서 무성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계 개편 혹은 이합집산 수요가 커져서다.

정치는 ‘살아 있는 생물’이라 이런 현실적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원론적으로 볼 때 어딘지 모르게 데자뷔(기시감)의 불편함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그동안 죽 그렇게 해왔던 것처럼 그야말로 정책이 아닌 인위적 권력 중심의 이합집산 기운이 가득하기 때문이 아닐까.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정당을 자유자재로 만들었다 해체했다 하는 우리 정치권의 행태에 국민은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있다. ‘100년 정당’은커녕 ‘10년 정당’도 찾기 어려울 정도니 오죽하겠나.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인정한다고 치자. 그렇지만 기왕에 이렇게 된 것, 이번만큼은 좀 더 지속 가능한 제대로 된 통합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 연정이나 협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철저히 정책에 입각한 성숙한 정당 간 협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때마침 정치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독일에서도 연정 논의가 한창이다. 지난달 24일 총선 이후 지금까지는 정당 간에 연정 참여 의향을 탐지해 보는 ‘간 보기 대화(Sondierungsgesprach)’가 이어지고 있다. 총선 민의에 따라 이른바 ‘자메이카 연정’을 구성하는 안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총선에서 제1당을 차지한 기민·기사당 연합(32.9%)과 제4당인 자민당(10.7%), 제6당인 녹색당(8.9%)의 상징색인 흑·황·녹이 자메이카 국기 구성 색깔과 같아 붙여진 이름이다.

간 보기 대화가 끝나면 본격적인 연정 협상(Koalitionsverhandlungen)이 시작된다. 여기서는 철저히 정책 협상이 주를 이룬다. 인위적 정치공학에 따른 권력 나눠 먹기는 끼어들 틈이 없다. 물론 정책 합의와 함께 각료 배분도 이루어지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효율적 연립정부를 구성하기 위한 최적의 인적 조합을 만들기 위한 목적이 크다.

기민·기사당연합은 중도 우파, 자민당은 친기업적 리버럴, 녹색당은 환경을 중시하는 진보 정당이어서 타협은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 18일 회동 후 기민당 사무총장 페터 타우버와 자민당 사무총장 니콜라 베어는 “독일과 자메이카 사이는 8500㎞나 된다. 이제 첫발을 디뎠을 뿐이다”고 말했다.

난민, 유로존의 미래와 개혁, 기후변화에 따른 에너지 변환, 경제 등 많은 분야에서 치열한 정책 교환이 필요한 상황이다. 2013년 대연정 협상에 참여했던 카타리나 란트그라프(기민당) 연방 하원의원은 “정당들의 연정 협상팀은 부처 장관실처럼 조직적으로 시스템화돼 있다”고 말했다. 협상에 참가하는 정당들의 주와 연방 조직 각 분야 실무자부터 최고 지도부까지 총동원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꼼꼼한 협상을 벌이는 것은 독일에서 상식화돼 있다.

이런 철저한 협상을 거친 끝에 합의된 정책 내용들을 집대성한 두툼한 연정협약이 만들어진다. 이는 새로 구성되는 연정의 정책교과서다. 정책 집행 또한 이 협약에 맞춰져 일사불란하게 행해진다.

물론 의원내각제인 독일과 대통령제인 우리의 정치적 환경은 매우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내각제든 대통령제든 확고한 정책을 가진 정당들이 정치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 정가에서 논의되고 있는 통합이든 연정이든 협치든, 모든 정치적 협상과 타협의 중심에는 정책이 굳건히 자리 잡아야 한다.

무조건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정당들이 이합집산을 하는 것은 후진 민주주의의 대표적 행태다. 정당이 사람에 따라, 시류에 따라 금방 생겨났다 금방 사라지는 현상이 반복되는 한 우리의 정치는 그만큼 후퇴할 뿐이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은 최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저 선거를 앞두고 숫자 올리는 방법이나 정치공학적으로 접근하지 않겠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당면한 안보와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정치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꿈꾼다면 지금부터라도 민주주의의 기본인 정당이 튼튼해져야 할 것이다. 인위적인 정치공학으로 탄생한 통합 정당은 사상누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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