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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박근혜 출당을 보수 재건의 주춧돌로 삼으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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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자유한국당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탈당 권유’라는 징계 결정을 내림으로써 한국 정치사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전직 대통령이 소속 정당에서 사실상 출당되는 오점을 남기게 됐다. 노태우 전 대통령 이래 역대 전직 대통령들이 모두 정치적 위기상황에서 자진 탈당하는 길을 걸었지만 공당이 정식 징계 절차를 밟아 전직 대통령을 출당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하지만 국정 농단에 따른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이 이 나라 보수세력의 몰락이라는 초대형 쓰나미를 몰고 온 결과를 놓고 본다면 만시지탄(晩時之歎)의 감정을 지울 수 없다. 박 전 대통령은 구속기간이 연장된 뒤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지고 가겠다고 말했지만 탄핵 전에 스스로 물러나는 ‘질서 있는 퇴진’을 선택했었다면 대선 운동장이 그렇게 기울진 않았을 테고, 보수 정당이 분열하는 상황까지도 가지 않았을 것이다.

제1야당인 한국당 역시 정치 상황을 이렇게 끌고 온 데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대한민국의 보수정당이 대선에서 변변한 후보 하나 내지 못하는 사상 초유의 참담한 지경을 맞고서도 한국당은 ‘진박(진짜 박근혜파) 감별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치를 우롱하던 구태세력을 청산하지 못하고 표류해 왔다.

한국당은 어제 친박계 핵심인 서청원·최경환 의원에 대해서도 ‘탈당 권유’ 징계를 결정했지만 두 의원의 제명까지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많다. 두 의원은 지난 1월 인명진 비대위원장 체제에서 당원권 정지 3년의 징계를 받았지만 대선 과정에서 TK(대구·경북) 표를 얻기 위해 흐지부지 풀어주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의 출당 결정으로 한국당이 보수세력 재건의 주축이 되기 위해서는 이 같은 편법과 꼼수를 과감히 던져버려야 한다. 한국당 내에서는 지금도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을 수용하지 못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오죽하면 한 뿌리에서 나온 바른정당이 한국당보다 이념적 차이가 있는 국민의당과 통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겠는가. 바른정당에서 규정한 ‘친박 8적’ 청산까지는 아니더라도 건전한 보수 유권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정도로 박 전 대통령이 남긴 부채의 청산을 해야 한다.

그런 이후에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희망을 줄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고, 정부 발목잡기를 넘은 대안 제시와 이를 추구할 역량을 증명해 내야 한다. 그래야만 철저하게 무너진 정치적 폐허 위에 건강한 보수세력이 깃들 수 있는 집을 지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집 나간 의원들이 절로 문을 두드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