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성 심장마비 환자 15% 평소 건강, 원인은 유전성 부정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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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김모(24·서울 종로구)씨는 올해 초 집에서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119 구조대 후송 중에 심폐소생술을 하고 응급실로 실려 갔다. 다행히 초저녁이어서 가족들과 함께 있다가 쓰러져 시간을 지체하지 않은 덕분에 의식을 되찾았다. 그런데 초음파 검사에서 심장 혈관에 막힌 곳을 발견하지 못했다. 심장 모양도 정상이었다. 심전도 검사에서 심장 박동이 불규칙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름이 생소한 ‘브루가다심전도’라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유전이 원인인 부정맥”이라고 진단했다. 김씨는 평소 병을 앓은 적이 없다. 그런데도 쓰러진 이유는 심장 유전병 때문이다. 외할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숨졌다. 몇 년 전에는 20대이던 형이 심장마비로 숨졌다.

심장학회 급성환자 1979명 분석 #가족 중 돌연사·부정맥 있으면 #건강검진 때 심전도 검사 받아야 #환자 61%, 심폐소생술로 목숨 구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심장마비로 쓰러진 사람의 15%가 평소 심장에 이상이 없는 건강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원인은 김씨와 같은 유전성 부정맥이다. 대한심장학회는 16일 급성 심장마비와 유전성 부정맥의 상관관계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고대안암병원 심혈관센터 최종일 교수팀은 2007~2015년 건강보험으로 진료받은 112만5691명 중 급성 심장마비로 쓰러진 1979명을 찾아냈다. 이 중 290명(14.7%)이 유전성 부정맥으로 확인됐다.

심장마비는 대부분 흡연·고혈압·고지혈증 때문에 관상동맥(심장 근육에 산소·영양분을 공급하는 왕관 모양의 혈관)이 좁아지면서 생긴다. 이 동맥이 막히면 급성 심근경색증이라는 심장마비가 발생한다. 대부분의 심장마비 형태다.

유전성 부정맥은 이와 전혀 다른,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심장병이다. 평소에 건강한 사람도 가족 중 심장마비로 돌연사했거나 부정맥을 앓은 적이 있으면 본인도 급성 심장마비로 쓰러질 수 있다. 심장마비로 쓰러지면 10명 중 4명가량이 숨진다. 이번 연구 대상자 1979명 중 776명(39.2%)이 숨진 것으로 조사됐다. 1203명(60.8%)은 신속하게 심폐소생술을 받은 덕분에 숨지지는 않았다. 연간 급성 심장마비 사망률은 인구 10만 명당 48.7명이다. 심장마비가 3분 이상 이어지면 뇌가 망가지고, 5분이 넘으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최종일 교수는 “이번 연구는 우리나라 급성 심장마비의 원인을 처음으로 분석한 것”이라며 “유전성 부정맥이 심장마비를 일으키는 비율이 서양(약 1~2%)이나 일본(10%)보다 높다”고 설명했다.

유전성 부정맥은 35세 전후에 주로 나타난다. 평소 자각 증상이 없다. 심전도 검사로만 알 수 있다. 대한심장학회는 “가족 중에 돌연 심장사나 부정맥 환자가 있으면 심전도 검사를 받는 게 좋다”고 권한다. 노태호 교수는 “심전도 검사가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검진 필수 항목에서 빠져 있는데 이를 조속히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선영·이민영 기자 kim.sun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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