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광주 최군 15개월 뇌손상인데..'나홀로 차량 방치' 너무 다른 한국과 미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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괌 현지 경찰이 한국인 법조인 부부가 차량 내에 두고 간 아이들을 구조하고 있다. [사진 KUAM 뉴스 보도 화면 캡처]

괌 현지 경찰이 한국인 법조인 부부가 차량 내에 두고 간 아이들을 구조하고 있다. [사진 KUAM 뉴스 보도 화면 캡처]

광주광역시에 사는 최모(5)군은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해 7월 29일 유치원 통학버스에 홀로 남겨졌다. 이날 오전 집 인근에서 통학버스에 탄 최군은 오후까지 약 7시간 동안 방치됐다. 인솔교사와 버스기사가 버스 내부를 제대로 살피지 않은 채 다른 아이들만 데리고 유치원으로 갔기 때문이다.

미국 20여 개 주, 차량 내 아동 방치 관련 처벌 규정 갖춰 #한국은 아동 건강 상태에 문제 생겨야만 '과실'로 보고 처벌 #"처벌 아닌 예방에 맞춘 법률 개정 통해 아이들 지켜야"

숨 쉬기도 어려울 정도의 더위에 뇌손상을 입은 최군은 뒤늦게 구조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15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의식이 없는 상태다. 당시 인솔교사와 버스기사는 물론 최군의 출석 여부를 제대로 챙기지 않은 유치원 관계자 3명이 금고형의 처벌을 받긴 했지만 이후에도 비슷한 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국내에서는 아이가 죽거나 크게 다치지 않으면 구체적 처벌 규정이 없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미국의 상황은 크게 다르다. 지난 2일 미국령 괌에서 두 자녀를 차량에 방치한 혐의로 체포된 수원지법 설모(35) 판사와 남편 윤모(38) 변호사 사례를 보면 극명한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설 판사 부부는 마트에서 쇼핑을 하면서 아들(6)과 딸(1)을 주차장에 세워둔 차에 남겨두고 갔다가 체포됐다. 국내 언론과 인터뷰를 한 윤 변호사의 주장에 따르더라도 채 30분도 되지 않아 차량으로 돌아왔지만 부부는 체포된 뒤 ‘머그샷’으로 불리는 얼굴사진을 찍고 각각 벌금 500달러씩 내야 했다.

미국의 경우 어린 아이를 보호자 없이 차량에 두기만 해도 범죄로 간주한다. 전체 50개 주 가운데 20여 개 주가 차량 내 방치 처벌 규정을 갖추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법을 따르는 괌에서도 이같은 규정이 적용된다. 6세 미만 아이를 12세 이상 보호자 없이 15분 이상 방치하면 경미범죄로 간주돼 벌금형에 처해진다. 사안이 심각해 중범죄로 분류되면 더욱 무거운 처벌이 내려진다.

지난해 7월 말 찜통 통학버스에 갇히는 사고로 의식불명인 최모(5)군을 광주시교육청 채미숙 장학관(왼쪽)과 광주사립유치원연합회 백희숙 회장이 살펴보고 있다. [사진 광주시교육청]

지난해 7월 말 찜통 통학버스에 갇히는 사고로 의식불명인 최모(5)군을 광주시교육청 채미숙 장학관(왼쪽)과 광주사립유치원연합회 백희숙 회장이 살펴보고 있다. [사진 광주시교육청]

한국은 차량 안에 아이를 남겨둔 채 보호자가 일을 보러 가는 경우가 흔하다. 아이에게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경우 범죄로 생각하지 않는 인식과 뾰족한 처벌 규정이 없어서다. 아이의 건강 상태에 문제가 생겨야만 비교적 가벼운 범죄인 ‘과실’로 보고 처벌할 뿐이다.

이 때문인지 ‘찜통 통학버스’ 사고 이후에도 비슷한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통학버스 뿐만 아니라 자가용에서도 비슷한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아동 보호 의식 수준이 높은 미국과 달리 단순한 해프닝 정도로 간주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이의 보호자는 처벌 대상이 아닌 위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익명을 요구한 아동 기관 관계자는 “차량 내부에 홀로 남겨진 아이에게 문제가 생겨야만 그것이 범죄가 된다는 인식을 버려야 한다”며 “사후 처벌이 아닌 예방에 맞춰 관련 법률을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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