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추석 특집] 한국 바둑 전설들의 명장면(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추석 연휴 기간인 지난 2~4일 바둑TV에서 방영된 '연기 대국 3인 3색'에서 '바둑의 전설' 조치훈·이창호·서봉수·유창혁 9단을 한 자리서 만나 볼 수 있었다. 이들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여성 선수, 어린이 선수와 팀을 이뤄 연기 대국을 펼쳤다. 한국 바둑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어우러진 무대였다.

아쉽게 출연하지 못한 조훈현 9단을 포함, 조치훈·이창호·서봉수·유창혁 9단 등 다섯 명은 화려했던 한국 바둑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주역들이다. 이들이 활약하던 시기, 변방국이었던 한국 바둑은 당당히 세계의 중심이 됐다. 전설들의 명장면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관련기사


3. 이창호 9단, 최연소 세계 챔피언 등극

린하이펑 9단(왼쪽)과 이창호 9단. 제3회 동양증권배 결승전 대국 장면 [사진 한국기원]

린하이펑 9단(왼쪽)과 이창호 9단. 제3회 동양증권배 결승전 대국 장면 [사진 한국기원]

<제3회 동양증권배 결승전 제5국>
- 대국자: ●린하이펑 9단 ○이창호 9단
- 날짜: 1992년 1월 27일
- 결과: 백 1집 반 승

50수까지는 린하이펑 9단의 반면 운영이 돋보였으나, 이창호 9단 특유의 끈질긴 따라잡기로 판을 역전시키고 세계 최연소로 세계 챔피언에 올랐다. 3대 2로 이창호 우승.

50수까지는 린하이펑 9단의 반면 운영이 돋보였으나, 이창호 9단 특유의 끈질긴 따라잡기로 판을 역전시키고 세계 최연소로 세계 챔피언에 올랐다. 3대 2로 이창호 우승.

1990년대는 한국 바둑이 세계 최강국으로 우뚝 선 황금기다. 조훈현 9단이 한국 바둑을 최강의 대열로 견인했다면, 바통을 이어받은 제자 이창호 9단은 한국 바둑을 독보적인 강국으로 만들어놓았다.

이 9단은 6살이던 1981년 할아버지 이화춘 손에 이끌려 바둑에 입문했다. 3년 뒤인 1984년 조훈현 9단의 내제자가 됐다. 1986년, 11살에 입단한 이창호는 스승을 꺾으며 일인자에 올라선다. 그는 하늘이 한국 바둑에 내린 선물이었다.

1988년 이 9단은 13세에 ‘KBS 바둑왕전’에서 우승하며 세계 최연소 타이틀 획득 기록을 세운 데 이어, 1992년에는 불과 17세의 나이로 3회 ‘동양증권배’를 제패하며 최연소 세계 챔피언에 올라 세계를 경악하게 했다. 새로운 세계 최강자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후 이창호 9단은 2001년 응씨배와 LG배 우승, 국내대회 6관왕 등으로 통산 100회 타이틀을 획득했고, 2003년에는 제1회 도요타덴소배와 제4회 춘란배 우승으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며 절정을 맞았다. 이 9단의 활약에 힘 입어 한국 바둑도 만개했던 시절이다.


4. '일지매' 유창혁이 후지쓰배 우승컵 가져온 날

후지쓰배 결승전에서 만난 유창혁 9단(왼쪽)과 조훈현 9단. [사진 한국기원]

후지쓰배 결승전에서 만난 유창혁 9단(왼쪽)과 조훈현 9단. [사진 한국기원]

<제6회 후지쓰배 결승전>
- 대국자: ●유창혁 9단 ○조훈현 9단
- 날짜: 1993년 8월 7일
- 결과: 흑 6집반 승

한국 바둑의 세계대회 석권에 단단히 한 몫을 한 인물로 유창혁 9단을 빼놓을 수 없다. 유 9단은 1990년대 이창호 9단의 대항마로 결정적 한 방을 가진 기사로 인기를 끌었다.

특히 유 9단은 특유의 호방하면서도 매서운 공격 스타일로 유명했다. 그의 바둑 스타일을 좋아하는 바둑 팬들은 그에게 '일지매'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유 9단은 세계대회에서 활약이 두드러졌다. 1993년 제6회 후지쓰배에서 조훈현 9단을 꺾고 우승하면서, 그간 일본이 독식해온 후지쓰배 타이틀을 처음으로 한국으로 가져왔다. 이 역시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이후에도 유 9단은 삼성화재배(2000년), 춘란배(2001년), LG배(2002년) 등 메이저 세계 대회에서 모두 한 번 씩 우승하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며 한국의 세계 제패에 일조했다.


5. 사상 초유의 '대삼관' 달성한 조치훈 9단

조치훈 9단(왼쪽)과 후지사와 슈코 9단의 기성전 대국 장면. [사진 한국기원]

조치훈 9단(왼쪽)과 후지사와 슈코 9단의 기성전 대국 장면. [사진 한국기원]

<제7회 일본 기성전 도전 7번기 제7국>
- 대국자: ●후지사와 슈코 ○조치훈 9단
- 날짜: 1983년 3월 16일
- 결과: 268수 백 1집 반 승

&#39;괴물&#39; 후지사와 9단이 노익장을 과시하며 초반 내리 3연승으로 또 한 번의 기적을 이루는가 했다. 그러나 집념의 승부사 조치훈 9단은 3연패 이후 4연승이라는 기적의 드라마를 연출해 냈다.

&#39;괴물&#39; 후지사와 9단이 노익장을 과시하며 초반 내리 3연승으로 또 한 번의 기적을 이루는가 했다. 그러나 집념의 승부사 조치훈 9단은 3연패 이후 4연승이라는 기적의 드라마를 연출해 냈다.

한국 바둑이 무섭게 성장하던 시절, 조치훈 9단은 바둑의 종주국이었던 일본을 제압했다. 그는 1962년 6살에 숙부 조남철 9단을 따라 일본으로 바둑 유학을 떠나게 된다.

조 9단은 1980년 오다케 히데오 9단을 꺾고 명인전 타이틀을 획득했다. 그리고 다음 해인 1981년 다케미야 마사키 9단을 격파하고 본인방을 획득하며 양대 타이틀을 손에 쥐었다. 이제 남은 것은 일본 상금 랭킹 1위 대회인 기성전.

1983년 조치훈 9단은 드디어 기성전에서 도전 무대에 올랐다. 상대는 기성전 6연패를 달리고 있는 '괴물' 후지사와 슈코 9단이었다. 도전 7번기가 시작되자 후지사와 9단이 파죽의 3연승을 달렸다. 하지만 조치훈 9단은 포기하지 않았다. 4국을 이긴 다음 5, 6국을 따내 동률을 만들었다.

드디어 최종국인 제7국, 중반까지는 후지사와 슈코 9단의 우세였다. 그런데 종반에 후지사와 슈코 9단의 어이 없는 착각이 연달아 나오면서 조치훈 9단이 대역전승을 거뒀다. 이로써 조 9단은 사상 초유의 대삼관(기성·명인· 본인방 타이틀 동시 보유)의 위업을 달성했다.

이후에도 조 9단의 질주는 계속됐다. 1987년 고바야시 고이치 9단에게 천원전 타이틀을 빼앗으며 사상 최초로 그랜드슬램(7대 기전 타이틀 제패)을 달성했다. 항상 불굴의 투지로 대국에 임하는 조치훈 9단은 일본 바둑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