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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렁물렁한 ‘소프트 로봇’, 재난·의료 현장 대활약 예고

중앙일보

입력

각종 사고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생존자의 위치와 건강 상태 파악이다. 하지만 장애물이나 사고 잔해를 뚫고 접근하기란 쉽지 않다. 사람을 대신해 로봇을 투입하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구조로봇은 대부분 덩치가 크고 단단하다 보니 비집고 들어가는 데 한계가 있었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최근 이같은 단점을 보완해 유연하고 신축성 있는 ‘소프트로봇’을 개발했다.

미 스탠퍼드대 연구진이 개발한 소프트로봇은 각종 장애물을 뚥고 갈 수 있다. [사진 스탠퍼드대]

미 스탠퍼드대 연구진이 개발한 소프트로봇은 각종 장애물을 뚥고 갈 수 있다. [사진 스탠퍼드대]

폴리에틸렌 소재로 만든 이 로봇은 두루마리처럼 둘둘 감긴 튜브 형태로 생겼다. 임무가 시작되면 로봇은 덩굴처럼 몸을 늘이면서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최대 72m까지 뻗어갈 수 있고, 몸을 팽창하면 100kg짜리 물체도 들어 올린다. 로라 블루멘셰인 연구원은 "위험한 지역이나 좁고 울퉁불퉁한 지형 등을 탐색하고 통로를 확보하는 데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튜브 형태 로봇, 잔해 사이로 들어가 생존자 확인 #종이접기 로봇, 몸 안에 들어간 건전지 꺼내게 설계 #전기 없이 움직이고, 먹을 수 있는 재질로 만들기도

최근 로봇 개발의 새로운 화두는 탄성 소재를 이용한 소프트로봇이다. 일반적으로 로봇은 견고하고 딱딱한 금속성 재료로 만들어진다. 무겁고 사람이 다칠 우려가 컸다. 하지만 실리콘ㆍ고무 등으로 만든 소프트로봇은 움직임이 자유롭고,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딱딱한 로봇이 하지 못하는 역할을 담당하면서 응용 분야도 확대될 전망이다. 가트너ㆍIDC 등 시장조사기관과 포브스 등 주요 외신은 올해 주목해야 할 과학기술로 소프트로봇을 꼽기도 했다.

 미 MIT 연구진이 제작한 소프트로봇은 처음에는 종이 같은 평면 구조였다가 입체 구조로 변신해 물건을 밀거나, 장애물 사이를 돌아다니는 등의 역할을 수행한다. [사진 MIT]

미 MIT 연구진이 제작한 소프트로봇은 처음에는 종이 같은 평면 구조였다가 입체 구조로 변신해 물건을 밀거나, 장애물 사이를 돌아다니는 등의 역할을 수행한다. [사진 MIT]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진이 제작한 소프트로봇은 처음에는 종이 같은 평면 구조였다가 종이접기를 하듯 자신을 접어 나가면서 3차원 입체 구조로 변신한다. 이후 물건을 밀거나, 장애물 사이를 돌아다니는 등의 역할을 수행한다. 연구팀은 로봇을 넣은 캡슐을 삼키면 몸 안에서 캡슐이 녹으면서 로봇이 펼쳐지고 건전지 등을 몸 밖으로 꺼낼 수 있도록 제작했다. 이 원리를 이용하면 최소한의 절개로 인공장기를 이식할 수 있다. 건축물ㆍ기계 등의 미세한 균열을 막거나 수리작업 등에도 이용할 수 있다.

미 하버드대 조지 화이트사이드 교수가 개발한 소프트로봇은 달걀처럼 깨재기 쉬운 물건을 집고 놓을 수 있다. [사진 하버드대]

미 하버드대 조지 화이트사이드 교수가 개발한 소프트로봇은 달걀처럼 깨재기 쉬운 물건을 집고 놓을 수 있다. [사진 하버드대]

하버드대 조지 화이트사이드 교수가 개발한 소프트로봇은 촉감이 부드러운데다, 크기와 모양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다. 달걀처럼 깨지기 쉬운 물건을 집고 놓을 수 있다. 일본 도호쿠대 연구팀이 만든 구조용 로봇은 몸을 꼿꼿이 세우고 넓은 시야를 확보하면서 목적물을 찾아내기도 한다.

소프트로봇 연구가 본격화한 것은 2007년 이탈리아 산안나고등연구소의 세실리아 라스치 박사가 연체동물처럼 움직이는 로봇을 개발하면서다. 스프링으로 내부 골격을 만들고 실리콘으로 피부를 감싼 단순한 형태였다. 로봇 과학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당시만 해도 로봇은 단단한 몸체와 기계적인 메카니즘으로 동작해야한다는 고정관념이 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소프트로봇만을 다루는 전문 저널이 만들어졌고, 발표되는 논문도 급증하는 추세다.

하버드대 연구진이 개발한 '옥토봇'은 소량의 과산화수소수만 보충해 주면 배터리 없이 움직일 수 있다. [사진 하버드대]

하버드대 연구진이 개발한 '옥토봇'은 소량의 과산화수소수만 보충해 주면 배터리 없이 움직일 수 있다. [사진 하버드대]

하버드대 연구진이 개발한 문어를 닮은 ‘옥토봇’은 전기가 없어도 움직인다. 백금(Pt) 촉매로 과산화수소수를 분해시켜 발생하는 산소 기체의 압력이 동력이다. 소량의 과산화수소수만 보충해 주면 배터리가 필요 없다. 정밀하게 설계된 내부 회로가 움직임을 조절한다. 제니퍼 루이스 교수는 “옥토봇이 네 개의 다리를 위로 들고 나머지 네 다리는 아래로 내리는 동작을 스스로 하게 만들었다”며 “정교한 논리 회로를 설계한다면 지금보다 더 다양한 형태로 움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스위스 EPFL은 젤라틴과 글레시롤을 이용해 먹을 수 있는 소프트 액추에이터(Actuator, 기계적인 운동을 하는 부품)를 만들었다.[사진 EPFL]

스위스 EPFL은 젤라틴과 글레시롤을 이용해 먹을 수 있는 소프트 액추에이터(Actuator, 기계적인 운동을 하는 부품)를 만들었다.[사진 EPFL]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학(EPFL)은 아예 먹을 수 있는 소프트 액추에이터(기계적인 운동을 하는 부품)를 만들었다. 젤라틴과 글리세롤로 만든 이 액추에이터는 액체ㆍ공기를 내부에 갖고 있다가 화학 반응을 통해 움직인다. 몸 안으로 들어가 약물을 전달하거나 수술을 하는 의료 로봇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게 EPFL의 설명이다.

 벨기에 브뤼셀리브레대 연구팀이 개발한 소프트로봇은 시간이 지나면 상처가 봉합되고 강도ㆍ유연성을 회복하는 재질로 만들었다. [사진 브뤼셀리브레대]

벨기에 브뤼셀리브레대 연구팀이 개발한 소프트로봇은 시간이 지나면 상처가 봉합되고 강도ㆍ유연성을 회복하는 재질로 만들었다. [사진 브뤼셀리브레대]

소프트로봇은 재료의 특성상 찢어지거나 변형되기 쉽다는 단점도 있다. 이에 벨기에 브뤼셀리브레대 연구팀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치유되는 소프트로봇을 개발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소프트로봇 개발에 속도가 붙고 있다. 하드웨어 제작기술, 제어 알고리즘 등 설계 기술은 이미 세계적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태원 영남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금속 로봇은 불안감을 자아내고 사람에게 부상을 입히기도 하지만, 소프트로봇은 친근하고 사람에게 안전하다”며 "산업용, 수술용으로 소프트로봇을 적용하는 연구 작업이 활발히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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