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뮤직] 브라질 '국민음악' 삼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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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삼바로 귀결된다!' (Tudo Acaba Em Samba!)

브라질인들이 즐겨 쓰는 표현이다. 브라질에서 삼바는 단순한 음악이 아니다. 문화이자 생활이며 국민통합의 아이콘이다. 나아가 산업이기도 하다.

리우 데 자네이루의 삼바축제를 보기 위해 매년 40만 여명의 관광객이 찾아와 1억 달러가 넘는 돈을 떨구고 간다. 리우와 상 파울로에는 삼바스쿨(이곳에서는 삼바클럽이라 불린다)만 해도 5백개가 넘는다. 삼바의 실체를 보기 위해 우선 상 파울루의 명문 삼바스쿨 '파울리스타나(Paulistana)'를 찾았다.

상 파울로 시내 중심에서 자동차로 30여분 정도 걸리는 거리의 외곽에 위치한 이 스쿨은 겉에서 보면 커다란 창고 같았다. 학생들이 연습도 하지만 저녁에는 이 공간을 일반인에게 공개해, 약간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 선 채로 음료수와 함께 학생들의 연주를 즐길 수 있다.

이곳은 카니발의 사운드를 이끌어 갈 학생들을 훈련시키기도 하지만 카니발시즌이 아닐 때도 삼바연주자들이 활동할 공간을 제공한다.

1928년에 설립된 이 스쿨은 그간 상 파울루 챔피언만 두 번을 차지했는데, 찾아간 날은 새 단장이 한창이었다. 마침 수 십명의 학생이 연습을 시작하려는 참이었다. "두두둥, 따다닥, 딸랑 딸랑" 연주가 시작되자마자 마치 피가 끓듯 마음이 달아오른다.

500개 삼바스쿨 명문 경쟁

삼바는 아프리카 리듬이 뿌리이기 때문에 '바테리아(Bateria:타악기)'의 음악이다. 파울리스타나 삼바스쿨에선 간자(Ganza:양손으로 흔드는 쇠로 된 악기. '헤꾸-헤꾸'라고도 하며 마치 방울뱀 꼬리에서처럼 딸랑딸랑 소리가 난다), 탕보링(Tamborim:작은 북), 수르두(Surdo:큰 북. 이 리듬이 전체를 조율한다), 카이샤(Caixa:조금 작은북으로 다른 타악기는 손으로 연주하는 데 비해 이것만 스틱을 사용), 히피니키(Repinique:북의 한 종류) 등이 빚어내는 각양각색의 소리가 마법처럼 어우러지며 몸이 절로 들먹거렸다.

자동화기보다 강력한 화력의 타악기리듬은 멀리 한국에서 온 이방인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축제시즌이 아니기 때문에 평상복 차림이었지만 메스트리(삼바지휘자)의 지휘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학생들을 보며 실제 카니발의 위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관계자 루카스 핀투씨는 삼바의 문화적 기능에 대해 의미있는 설명을 했다. 삼바(브라질식 발음은 '쌍바')가 브라질의 인종구분을 없앴다는 것이다.

"다양한 인종이 모인 가운데 인디오는 장식을, 백인은 악기를, 흑인은 리듬을 제공했죠. 서로가 잘 어울렸고 결국 삼바는 인종통합을 가능하게 만든 겁니다." 삼바의 어원과 그 음악적 뿌리를 물어봤다.

"삼바의 어원은 '셈바(Semba, 브라질식 발음은 쎙바)'에서 왔습니다. '셈'이 주고, '바'가 받는다는 의미가 있죠. 리듬은 앙골라 혈통의 '룬두(Lundo)'리듬에서 왔는데 일종의 댄스리듬입니다."

리우 데 자네이루에도 유명한 삼바스쿨이 있다. 리우 시내 중심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우니두스 다 치주카(Unidos Da Tijuca)' 삼바스쿨도 찾아봤다.

올해 리우 카니발에서 전체 9등, 작곡 부문 1등을 차지한 명문 스쿨이다. 이곳에서 만난 이벤트디렉터 알레산드레 호드리게스는 "삼바스쿨은 매일 수업을 받는 정규학교가 아니라 축제에 필요한 인원을 뽑는 곳"이라며 "일주일에 보통 3번 정도 연습을 하고 행사 때는 5천명 정도가 모인다"고 했다. 보통 8월부터 이듬해 2월에 열릴 카니발을 준비한다니 일년의 절반을 축제에 바치는 셈이다.

그에 따르면 카니발은 의외로 여러 가지를 채점하는 행사란다. "학교소개.학교깃발소개.타악기연주.행렬.하모니.행렬차.엥헤두(Enredo:스쿨의 역사가 담기 노래).전체 균형미.작곡.의상까지 모두 10개 항목에 대한 점수를 매긴다"는 것이다.

아프리카에 뿌리를 둔 삼바가 어떻게 브라질의 국민음악이 됐고 이제는 월드뮤직의 큰 줄기가 됐을까.

"삼바 안에는 폴카, 탱고, 흑인음악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다른 문화의 여러 요소가 삼바 안에 녹아있기 때문에 브라질사람이 아닌 사람이 들었을 때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거죠. 재즈가 여러 가지 다른 음악과 잘 섞일 수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상 파울루 대학교의 로렌조 맘미교수의 설명이다.

일년의 절반 카니발 준비

그는 브라질 음악의 가장 큰 특징으로 '믹싱(혼합)'을 꼽았다. "브라질을 지배했던 포르투갈의 식민지시스템은 다른 남미 국가를 지배했던 스페인보다 허술했다"면서 "혼혈에 대해 관대하고 인종차별을 하지 않았기에 다른 나라의 문화를 수용하고 섞는 게 더 용이했습니다."는 것이 삼바의 문화적 배경에 대한 그의 분석이다. 그래서일까. 리우와 상 파울루의 각종 클럽에선 흑백 인종간의 구분 없이 서로 어울려 춤추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치주카 삼바스쿨의 이벤트 부회장인 카를로스 알베르투씨에게 삼바의 미래를 묻자 그는 밝은 표정으로 답한다. "앞으로 삼바는 보다 다양한 문화를 수용할 겁니다. 이미 삼바축제는 글로벌화 됐잖아요?"

송기철.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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