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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친구 살인 혐의 ‘어금니 아빠’ 구속…풀리지 않는 의혹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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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인 딸의 친구를 살해하고 야산에 유기한 혐의를 받는 이모 씨가 8일 오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중랑경찰서를 나서 북부지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학생인 딸의 친구를 살해하고 야산에 유기한 혐의를 받는 이모 씨가 8일 오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중랑경찰서를 나서 북부지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학생 딸의 친구를 살해하고 야산에 유기한 혐의로 체포된 30대 남성이 구속됐다.

서울북부지법은 지난 5일 딸의 친구인 중학생 김모(14)양을 살해하고 시신을 강원도 영월 야산에 버린 혐의를 받고 있는 이모(35)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8일 발부했다. 이씨의 범행을 도운 그의 지인 박모씨도 이날 구속됐다.

서울 중랑경찰서는 이날 오전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던 이모(35)씨를 데려와 조사를 시작했다. 이씨를 상대로 1차 조사를 마친 경찰은 브리핑을 통해 "이씨는 범행 방법·과정·혐의 인정 여부 등 사건과 관련된 질문에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조사는 이씨가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상태라 질문 내용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가로젓는 방법으로 진행됐다.

수사팀은 "전날 '김양의 사인이 끈에 의한 교사(목 압박 질식사)로 추정된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구두소견을 받았다. 앞서 이씨는 지난 2일 딸과 함께 남긴 동영상에서 "자살을 마음먹고 영양제 안에 약을 넣어뒀는데 김양이 모르고 먹었다"고 주장했다.

수사팀 관계자는 "친구의 딸이 약을 먹고 쓰러졌으면 병원에 연락하는 게 정상 아니겠느냐"며 "이씨가 유기 사실을 인정한 것에 비춰 살인 혐의로 보고 수사 중이다"고 말했다. 또 "범행 장소로 추정되는 주거지에서 수거한 비닐끈·드링크병·라텍스 장갑 등을 국과수에 정밀 감정 의뢰했다"고 밝혔다.

이씨가 김양의 시신을 유기할 때 사용한 친형 지인 명의의 차량. 김준영 기자

이씨가 김양의 시신을 유기할 때 사용한 친형 지인 명의의 차량. 김준영 기자

◇딸을 범행에 동원했나=이씨는 10여 년 전 희귀난치병인 '유전성 거대 백악종'을 앓고 있고 자신과 같은 병을 가진 딸을 극진히 돌보고 있는 사연이 언론에 소개돼 널리 알려졌다. 당시 그는 딸의 수술비를 마련하려고 자전거 국토 대장정, 길거리 모금 활동 등을 하고 개인 홈페이지에 투병 일지를 올려 많은 사람의 관심과 지지를 받았다.

이씨는 계속된 수술로 치아 중 어금니만 남아 일명 '어금니 아빠'로 불렸다. 유명세를 탄 이후에는 『어금니 아빠의 행복』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김양은 이씨의 딸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을 받고 집에서 나갔다. 평소 두 사람은 교류가 거의 없는 편이었지만 이씨의 딸은 최근 계속해서 김양에게 만나자고 연락했다고 한다.

밤 늦게까지 딸이 돌아오지 않자 김양의 부모는 이날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경찰은 주변 폐쇄회로(CC)TV 영상을 통해 김양이 30일 정오쯤 이씨 집으로 들어갔다가 나오지 않았으며 다음날인 1일 이씨와 딸이 검은색 여행 가방을 들고 집에서 나왔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지난 5일 서울 도봉동의 한 빌라에서 이씨를 체포했다. 체포 당시 이씨는 그의 딸과 수면제를 과다복용한 상태였다.

경찰은 이씨의 딸 이모(14)양을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해 수사 중이다. 이양은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현재 자가호흡은 가능하나 의식이 없는 상태다.

지난달 27일 여중생 살인 사건 피의자 이모 씨가 공개한 동영상. 이씨는 지난 달 5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부인 영정 사진을 들고있는 영상을 공개했다. 유튜브 캡처

지난달 27일 여중생 살인 사건 피의자 이모 씨가 공개한 동영상. 이씨는 지난달 6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부인 영정 사진을 들고있는 영상을 공개했다. 유튜브 캡처

◇'어금니 아빠'의 두 얼굴?=이씨의 서울 망우동 집에서는 성(性) 보조도구 여러 개가 발견됐다. 김양의 시신도 발견 당시 알몸이었다. 이 때문에 이씨가 김양을 성적으로 학대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하지만 수사팀 관계자는 "김양의 몸에서 성폭행이나 성적 학대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씨가 후원금으로 호화 생활을 해왔다는 의혹도 나왔다. 이씨의 개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지에 외국산 차량 두 대와 국산 차량 한 대가 등장해 의문이 증폭됐다. 경찰 측은 이에 대해 "이씨 누나의 차와 형 지인의 차가 이씨의 차로 잘못 알려졌다"며 "이씨의 재산 형성 과정은 따로 수사할 계획이 없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투신한 이씨의 부인=지난달 6일에는 이씨의 부인 최모(32)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강원 영월경찰서에 따르면 최씨는 지난달 1일 "의붓 시아버지에게 2009년부터 8년간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며 경찰에 고소장을 냈다. 최씨는 고소장을 낸 지 닷새 만인 지난달 6일 서울 망우동 집에서 투신해 사망했다.

A4 용지 4장 분량의 유서에는 '가족·남편 등 여러 사람에게 성적 학대를 당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경찰은 최씨가 투신했을 때 집에 함께 있었던 이씨가 말리지 않은 것으로 보고 내사를 진행해 왔다. 영월경찰서 관계자는 "최씨 투신 전에 이씨의 폭행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최씨 고소사건은 여중생 살해 사건과 별도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홍상지·김준영 기자, 영월=최종권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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