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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세] 키스하거나 죽이거나...바이킹과 아마존 여전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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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바이킹 축제를 즐기고 있는 여성들. [로이터=연합뉴스]

스페인 바이킹 축제를 즐기고 있는 여성들. [로이터=연합뉴스]

우리는 흔히 전쟁과 전투는 남성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사시대부터 남성은 수렵, 여성은 채집 활동을 하며 일상을 꾸려왔다고 믿죠. 하지만 현대인들의 이런 상식을 뒤흔드는 고고학적 발굴 소식이 잇따라 나옵니다. [고보면 모있는 기한 계뉴스] 이번 이야기는 '땅속에서 찾아낸 1000년 전 여전사'입니다.

[알고보면 쓸모있는 신기한 세계뉴스] #흙속에서 찾아낸 1000년 전 여전사

전쟁 포로 머리로 쌓은 아즈텍 인신 공양탑

멕시코시티에서 발굴된 해골탑 일부. [로이터=연합뉴스]

멕시코시티에서 발굴된 해골탑 일부.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여름, 멕시코시티 도심의 아즈텍 유적에서 소름 끼치는 유적이 공개됐습니다. 무려 675개가 넘는 두개골이 층층이 쌓인 해골탑입니다. 발굴하는 데에만 1년 반이 걸렸죠. 인간의 두개골에 석회로 발라 굳힌 지름 6m 원통형 구조물로 확인됐습니다.

이 해골탑은 '촘판틀리' 혹은 '해골 선반'이라고 불리는 유적의 하나로 추정됩니다. 16세기 스페인 식민 정복자들이 자신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든 이 촘판틀리를 기록에 남기면서 아즈텍 문명의 인신 공양 전설은 널리 알려지게 됐죠.

촘판틀리(해골탑) 스케치. [사진=위키미디어]

촘판틀리(해골탑) 스케치. [사진=위키미디어]

 그런데 발굴에 참여한 고고학자들은 당황했습니다. 아즈텍 사람들을 비롯한 고대 중남미인들은 태양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사람, 주로 전사를 학살해 머리를 전시했다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분석 결과 남성뿐 아니라 여성, 어린이의 두개골까지 뒤섞여 있었거든요.

2017년 6월 멕시코시티 촘판틀리에서 분리해낸 인골을 조사하는 고고학자. [EPA=연합뉴스]

2017년 6월 멕시코시티 촘판틀리에서 분리해낸 인골을 조사하는 고고학자. [EPA=연합뉴스]

발굴에 참여한 생물 인류학자 로드리고 볼라노스는 "스페인 정복자들도 이 해골탑은 전쟁에 참여하는 젊은 남성들의 그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여자와 아이들은 전쟁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고대에는 여성과 아이들조차 전쟁에 참여해 포로가 된 것일까요. 아니면 전사라기 보다는 노예로서 인신 공양의 제물이 되었을까요. 고고학자들은 아직도 땅을 파고 있습니다. 탑의 기단이 드러나면 현대인이 알지 못하는 더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지 모릅니다.

대표적인 바이킹 무덤, DNA 확인하니 XX염색체 

바이킹 여전사의 무덤 발굴 당시 현장 스케치. 앉은 자세의 인골(오른쪽) 주위에 각종 무기가 놓였고, 말 한 쌍이 함께 묻혔다.

바이킹 여전사의 무덤 발굴 당시 현장 스케치. 앉은 자세의 인골(오른쪽) 주위에 각종 무기가 놓였고, 말 한 쌍이 함께 묻혔다.

장검과 긴 창, 방패, 은제 투구 그리고 제물로 함께 묻힌 값비싼 말 두 마리. 10세기 바이킹 전사의 전형적인 무덤으로 알려졌던 스웨덴 비르까 섬의 Bj581호 봉분의 부장품입니다. 1880년대에 비르까 마을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이 무덤은 지체 높은 바이킹 전사 장례의 전형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무덤의 주인공은 키가 170cm쯤 되는 30대 여성이라는 사실이 발굴 140년 만에 밝혀졌습니다. 이 같은 결과를 담은 논문 『유전체학으로 확인된 여성 바이킹 전사』는 9월 8일(현지시간) 아메리칸 신체인류학 저널에 게재됐습니다.

앉은 자세로 묻힌 무덤 주인의 무릎에는 정교한 보드 게임 세트가 놓여 있었습니다. 바이킹 전사의 전술과 전략을 시험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로, 무덤 주인이 강력한 군사 지도자임을 암시하는 유물이죠. 스톡홀롬 웁살라 대학교 샬럿 헤든 스티나존슨 교수를 비롯한 연구진은 이 무덤의 주인공이 여성일 가능성이 크다고 봤습니다. 골반뼈의 모양 등 골격 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성이라고 충분히 의심을 품을 만했지만, 그동안 학계에선 전사니까 당연히 남성이라고 여겼거든요.

미국 히스토리채널이 상영중인 드라마 '바이킹스'의 여전사 라게르타 역을 맡은 캐서린 위닉. [사진=히스토리채널, Bernard Walsh)

미국 히스토리채널이 상영중인 드라마 '바이킹스'의 여전사 라게르타 역을 맡은 캐서린 위닉. [사진=히스토리채널, Bernard Walsh)

연구진은 무덤 주인의 송곳니와 왼쪽 위팔뼈에서 DAN를 추출해 염기 서열을 분석했습니다. 방사성 동위 원소 분석도 동원했고요. 그 결과 X염색체는 발견됐지만 Y염색체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스티나존슨 교수는 더 로컬과 인터뷰에서 “전투 경험 없이 높은 군사적 지위에 오를 수는 없다. 무덤의 주인공이 전투에 참여했다고 믿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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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바이킹 축제에서 바이킹 차림으로 레드 와인을 마시는 여성. [로이터=연합뉴스]

스페인 바이킹 축제에서 바이킹 차림으로 레드 와인을 마시는 여성. [로이터=연합뉴스]

앞서 7월엔 영국의 대표적인 바이킹선 무덤의 주인이 여성일 가능성이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바이킹들은 배를 관으로 써서 죽은 이를 매장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2011년 스코틀랜드 서부지방에서 발굴된 1000년 전 바이킹선 무덤에선 치아 두 개와 도끼날, 큰 칼, 고리가 달린 핀, 망치와 집게, 청동으로 된 술잔 등이 함께 나왔습니다. 무덤 주인은 지위가 높은 바이킹으로 추정됐고요.

스코틀랜드 바이킹선 무덤 개념도 스케치. [그림=위키미디어/ Sarah Paris]

스코틀랜드 바이킹선 무덤 개념도 스케치. [그림=위키미디어/ Sarah Paris]

영국 데일리메일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치아의 동위원소 분석 결과가 스코틀랜드 루이스 섬에서 발굴된 여성의 그것과 비슷하게 나타났습니다. 사람의 조직이라곤 치아 두 개 뿐이라 단정짓긴 어렵지만 여자일 가능성이 커진 셈이죠. 레스터대학 고고학과 올리버 해리스 박사는 "검·도끼·창은 당연히 남성 전사의 증거라고 믿곤 하지만, 국자나 냄비가 나온다고 그렇게 (반대 성별이라고) 해석하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합니다. 과학이 발달하고 해석이 달라짐에 따라 바이킹 여전사는 앞으로도 더 많이 나올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알쓸BOOK-『The Amazons』

그리스 신화의 아마조네스 부족을 표현한 그림. [출처=위키미디어/미의회도서관 라이브러리, Krohn, Feiss & Co. ]

그리스 신화의 아마조네스 부족을 표현한 그림. [출처=위키미디어/미의회도서관 라이브러리, Krohn, Feiss & Co. ]

아마조네스(amazones 혹은 amazons)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여전사로만 이뤄진 전설적 부족입니다.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죽이고 여아만 길렀고, 사냥과 전쟁을 즐겼다고 하죠. 활을 쏠 때 걸리적거릴까봐 오른쪽 유방을 잘라냈다고도 합니다. '아마존'의 어원도 '유방이 없는'이라고 해요. 무서운 그녀들은 단순히 신화 속 상상의 존재일까요.

과학사 연구자 에이드리엔 메이어가 2014년 출간한 『더 아마존스(The Amazons)』는 이 분야에선 손꼽히는 책이라고 합니다. 영국 인디펜던트지의 북리뷰와 가디언의 칼럼, 프린스턴대학교출판부의 책 소개 페이지에 따르면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은이는 전세계의 고고학적 발견을 따라가다 보면 아마존이 단순한 신화도, 상상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문학과 전설 뿐 아니라 회화·조각·동전·뼈·무기·의복·화석 등의 고고학적 증거를 연결해 아마존을 현실로 끌어냅니다. 또 비단 그리스만이 아니라 유목민이 거쳐간 고대 이집트, 페르시아, 인도, 중앙아시아와 중국 등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나 흔적이 있다는 거죠.

기원전 330~310년경 고대 그리스 테라코타 도기조각에 나타난 아마조네스 여왕과 그리스 군인.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품. [출처=위키미디어]

기원전 330~310년경 고대 그리스 테라코타 도기조각에 나타난 아마조네스 여왕과 그리스 군인.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품. [출처=위키미디어]

바이킹이나 스키타이족 같은 유목민들은 남녀 모두가 사냥꾼이자 전사였다고 합니다. 불가리아와 몽골지역에 걸쳐 전투 상흔을 입은 여성의 유골이 엄청나게 나왔고요. 어떤 고대 공동묘지에서 무기류가 부장된 무덤의 37%가 여성의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답니다. 다만 이렇게 유골 분석으로 성별을 판단할 수 있게 된 최근의 일입니다. 기술이 발달되기 전까진 위에서 소개한 바이킹 여전사 사례처럼 전투는 당연히 남성의 몫이었으리라는 편견이 역사를 왜곡시켰다는 거죠.

키스하거나 죽이거나... 옛 소녀들의 '바비 인형'

아마존 여전사의 맥을 잇는 '원더우먼'. 영화의 한 장면.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아마존 여전사의 맥을 잇는 '원더우먼'. 영화의 한 장면.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아마존이 단순히 무서운 여인의 이미지로만 소비된 건 아니라고 합니다. 당신에게 키스하거나 죽일 수도 있는 위험한 여성. 치렁치렁 늘어지는 튜닉 대신 딱 붙는 레깅스를 입고 술잔을 엎은 것 같은 스포츠 브라 스타일의 갑옷을 착용한 여전사는 예나 지금이나 남성들에게도 소름끼치게 매혹적인 이미지였다는 거죠. 가령 로마 네로 황제는 여행을 갈 땐 유크네몬이라는 이름의 아마존 여전사 청동 조각상을 꼭 지참했답니다.

어린 소녀들의 무덤 속에서도 흙으로 구운 아마존 여전사 인형이 많이 발견됐다고 해요. 강인한 여전사는 요즘의 바비 인형 뺨치는 소녀들의 장난감이자 롤모델이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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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기자 dung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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