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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세]공포의 버뮤다 바다에 임신부 몰려든 사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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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 에드워즈가 버뮤다 제도를 배경으로 만삭촬영한 모습을 블로그에 올린 사진. 버뮤다 제도로 태교여행을 떠나는 임신부들이 늘고 있다. [사진=카렌 에드워즈 블로그]

카렌 에드워즈가 버뮤다 제도를 배경으로 만삭촬영한 모습을 블로그에 올린 사진. 버뮤다 제도로 태교여행을 떠나는 임신부들이 늘고 있다. [사진=카렌 에드워즈 블로그]

버뮤다 삼각지대(Bermuda Triangle).   

한 번쯤 들어본 적 있으시죠. 북대서양 영국 자치령인 버뮤다 제도(Bermuda Islands)를 정점으로 하고, 미국 플로리다 마이애미 해안과 푸에르토리코를 잇는 선을 밑변으로 하는 삼각형의 해역인데요. 이곳에서 비행기나 선박사고가 자주 일어났다고 하죠. 그런데 실종자 시신은 물론 비행기나 선박 파편 조각 하나 발견되지 않아 ‘마의 바다’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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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으로 남겨진 것만 1609년부터 현재까지 버뮤다 삼각지대에서 사라진 배가 17척이요, 비행기도 15대나 된다고 하죠. 비공식 집계론 비행기 75대, 배는 수백척이란 말도 있습니다. 가장 최근 사고로는 2015년 승무원 30명을 태운 미국 화물선이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상 중력 또는 자기장, 풍류(風流), 조류 영향 등 다양한 설이 제기됐지만, 아직 뚜렷한 원인이 밝혀지진 않았습니다.

배 17척, 비행기 15대 삼킨 바다가 태교 여행지로 

그런데 이 무서운 바다가 요즘 ‘핫(hot)’하다고 하네요. 정확히 말하면 버뮤다 삼각지대는 아니고요. 버뮤다 삼각지대의 꼭짓점 중 하나인 버뮤다 제도입니다. 7개 큰 섬과 150여 개의 작은 섬들이 흩어져 있는 곳이죠.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사연인즉, 태교여행 각광지가 됐다는데요. 미 온라인매체 ‘버즈피드’에 따르면 요즘 버뮤다 제도에 오는 여성 10명 중 6명 이상이 임신부라고 합니다. 사실 버뮤다 제도가 관광지이긴 해도, 버뮤다 삼각지대 근처라서 고개도 돌리고 싶지 않을 텐데 무려 임신부들이 붐비는 이유가 뭘까요. 바로 이곳이 지카바이러스(Zika virus) 청정지대라는군요.

2015년 5월부터 브라질을 중심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지카바이러스 감염증은 지카바이러스를 보유한 모기에 의한 감염성 질환인데요. 지카바이러스에 감염된 임신부에게서 태어난 신생아로부터 소두증(小頭症)이 확진된 사례가 늘면서 지카바이러스가 임신부에게 공포의 대상이 됐습니다.

지난해 9월 브라질에서 소두증으로 태어난 아기. [AP=연합뉴스]

지난해 9월 브라질에서 소두증으로 태어난 아기. [AP=연합뉴스]

세계보건기구(WHO)는 머리둘레가 32㎝ 이하인 신생아를 소두증으로 간주합니다. 정상아의 머리둘레는 34∼37㎝라고 합니다. 소두증 신생아는 두뇌 발달장애를 겪거나 일찍 사망할 가능성이 높다고 해요. 예방 백신이나 치료제는 아직 없고요.

미 질병예방통제센터는 지난해 4월 지카바이러스 감염과 소두증의 인과관계를 확인했고, 9월엔 WHO가 임신기간 중 지카바이러스 감염이 소두증을 포함한 선천적 뇌기형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버뮤다 제도는 아열대성 기후인데도 모기가 잘 없다고해요. 임신부들이 기를 쓰고 지카바이러스 청정 지역을 찾는 이유를 이제 알만하죠?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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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부에게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지카바이러스

특히 북미·중남미 임신부에게 인기인데요. 유럽으로 가기엔 비행 시간이 길고, 서너 시간 이내로 갈 수 있는 버뮤다 제도가 제격인 거죠. 우리나라 임신부들이 모기가 잘 없고, 비행 시간이 4시간 정도로 짧은 사이판·괌으로 태교여행을 가는 것과 비슷한 이치랄까요.

버뮤다 제도 관광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방문자 수는 전년 대비 7.7% 증가했고, 올 들어선 또 전년 동기간 대비 13.9%까지 늘었다고 합니다. ‘지카바이러스 청정지역’이라는 식의 광고를 일절 하지 않았는데도 입소문으로 앞다퉈 찾는 지역이 됐다고 해요.

영국의 여행 파워블로거 카렌 에드워즈가 지난 1월 버뮤다 제도로 태교여행을 다녀온 뒤 자신의 블로그(travelmadmum.com)에 올린 사진. [출처=카렌 에드워즈 블로그]

영국의 여행 파워블로거 카렌 에드워즈가 지난 1월 버뮤다 제도로 태교여행을 다녀온 뒤 자신의 블로그(travelmadmum.com)에 올린 사진. [출처=카렌 에드워즈 블로그]

여기엔 영국 런던에 사는 여행 파워블로거 카렌 에드워즈가 한몫 했습니다. 페이스북·인스타그램 팔로워가 총 13만여 명인 그는 지난 1월 버뮤다 제도로 태교여행을 다녀온 사진을 올렸습니다. “지카바이러스 청정지역”이란 문구와 함께 하나같이 그림같은 풍광이었죠. 에드워즈의 버뮤다 제도 태교여행 블로그(travelmadmum.com)는 지금도 한달에 2000명이 보고 갈 정도로 인기라고 합니다.

미국 댈러스에 사는 임신부 빅토리아 다비덴코는 버즈피드에  “지카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한 태교여행지를 샅샅이 찾아봤지만 별로 없더라. 하와이로 가고 싶었는데 지카바이러스 감염 우려가 있고, 안전하다 싶으면 해변이 없더라”며 버뮤다 제도를 택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버뮤다 제도에서 임신부를 대상으로 만삭촬영을 진행하는 사진가 마크 태이템은 “해변에 가보면 거의 대부분 임신부들”이라며 “올해 촬영문의가 작년보다 133% 늘었다”고 행복한 비명을 질렀습니다.

지카바이러스의 주요 매개체인 '이집트숲' 모기. [AP=연합뉴스]

지카바이러스의 주요 매개체인 '이집트숲' 모기. [AP=연합뉴스]

일반 모기도 위험하다고?! 

사실 지난해 말부터 지카바이러스 유행이 주춤한 상황이었는데요. 그런데 브라질 과학자들이 최근 자국의 일반 모기종인 큘렉스 모기에 의해서도 지카바이러스가 전파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지금까진 개체수 자체가 희소한 ‘이집트숲’ 모기에 의해서만 지카바이러스가 옮겨진다고 알려졌었죠. 현지언론에 따르면 지카바이러스가 큘렉스 모기의 침샘에도 들어가 있다는 건데요. 브라질 과학자들은 “큘렉스 모기도 지카바이러스의 전파자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무래도 버뮤다 제도가 당분간 붐빌 것 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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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카 바이러스를 옮기는 이집트 숲 모기.

지카 바이러스를 옮기는 이집트 숲 모기.

지카바이러스는 과학자들이 1947년 우간다 지카숲에 서식하는 붉은원숭이를 상대로 조사를 벌이다 발견했습니다. 이어 이듬해 지카바이러스에 감염된 ‘이집트숲’ 모기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2007년까지 60년 간 사람에게서 지카바이러스가 검출된 사례는 14건에 불과합니다. 별다른 증상도 없고 사망자도 없어 의학자들이 별로 신경쓰지 않던 질병입니다.

지카바이러스가 본격적으로 창궐한 것은 2013년 오세아니아의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섬에서 인구 3만여 명을 감염시킨 사례라고 해요. 이때 일반 성인이 지카바이러스에 감염될 경우 신경계 질환인 길랑-바레증후군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게 확인됐습니다. 말초신경에 염증이 생겨 전신 근육이 약해지면서 마비되는 질병이라는데요. 치료제가 있고 회복이 가능합니다.

그러다 2015년 브라질에서 감염자가 급격히 늘면서 전 세계로 확산됐습니다. 그러면서 임신부가 감염될 경우 소두증 신생아를 출산할 수 있다는 치명적인 사실까지 확인되었죠. 지카바이러스가 공포의 대상이 된 결정적인 이유기도 하구요.

전 세계 1일 생활권 시대, 대도시에서 지카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감염 확산 속도가 겉잡을 수 없게됐습니다. 2007년부터 현재까지 총 85개국에서 지카바이러스 감염증 환자가 발생했는데, 그 중 75개국이 2015년 이후 발생했다고 해요. 확산 속도가 워낙 빨라 WHO가 ‘국제공중보건위기상황’(2016년 2월)을 선포할 정도였으니까요. 지카바이러스 감염증이 발생하지 않은 곳을 찾기는 실제 녹록치 않습니다.

‘이집트숲’ 모기에 의한 지카바이러스 환자가 발생한 국가를 보면, 브라질을 비롯해 중남미가 48개국으로 가장 많습니다. 오세아니아(13개국), 아프리카(12개국), 아시아(11개국), 북미(1개국) 등의 순입니다. 모기가 서식하기 좋은 아열대성 기후의 지역이 대부분 해당됩니다. 유럽은 그나마 안전지대네요.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출처 : WHO(IHR) 등
우리나라도 해당 모기가 서식하지 않다보니 자생적인 지카바이러스 환자가 발생하진 않았습니다. 다만 지카바이러스 유행지역을 다녀온 사람이 감염된 사례가 지난 3월 기준 18명 있다네요. 남성 13명, 여성 5명으로 다행히 임신부가 감염된 사례는 없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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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g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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