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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세]10대 살인 커플과 머그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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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보면 모있는 기한 계뉴스]는 중앙일보 국제부 기자들이 '몰라도 되지만 알면 더 재미있는' 다양한 세계뉴스를 가져다 각자의 스타일대로 요리해 내놓는 새 코너입니다. [알쓸신세]는 이슈에 따라 그때그때 독자들을 찾아갈 예정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이나 주제 제안은 언제든 환영합니다. 아래 이미지를 클릭하면 더 많은 [알쓸신세]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일러스트=신아영 대학생 인턴]

[일러스트=신아영 대학생 인턴]


영국에선 지난해 경악할만한 연소자 살인사건이 일어났습니다. 14살 동갑내기 커플인 루카스 마컴(남)과 킴 에드워드(여)가 주인공입니다. 이들은 킴의 엄마와 한살 어린 여동생을 집에서 칼로 수차례 찔러 잔인하게 죽였습니다. 살해 이유는 "엄마가 동생을 편애해서"였습니다.

[알고보면 쓸모있는 신기한 세계뉴스] #①범죄자 얼굴 공개하는 영미권

10대 커플 살인자 루카스 마그햄과 킴 에드워드의 머그샷. [사진=영국 경찰]

10대 커플 살인자 루카스 마그햄과 킴 에드워드의 머그샷. [사진=영국 경찰]

이들은 사람을 죽여놓고도 태연하게 씻은 뒤 케이크와 아이스크림을 먹고, 영화를 보고, 성관계를 하며 36시간을 집안에서 보냈죠. 원래는 모녀를 죽인 뒤 같이 자살하기로 계획했는데, 막상 계획한 시간이 되자 죽기 싫어져서 함께 뱀파이어 영화 '트와일라이트'를 봤다고 하네요. 영국 언론들은 이들을 뱀파이어 영화 제목에 빗대 '트와일라이트 커플'이라고 명명합니다.이 살인커플은 지난해 11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습니다. 영국의 형사 미성년 연령은 만 10세 이상이기 때문에 이들은 성인 범죄자와 똑같이 처벌 받습니다. 감형을 받아도 최소 17년은 복역할 것으로 영국 언론들은 예상합니다.

아무리 죄가 중해도…얼굴 공개라니?

10대 살인 커플의 사진과 신상은 대대적으로 공개됐죠. 바로 한국과는 다른 점입니다. 한국에선 미성년 범죄자는 낙인효과를 우려해 얼굴 공개를 하지 않습니다. 성인의 경우에도 살인·강도·강간 등 강력범죄에 한해 공익에 필요한 경우 범죄자의 얼굴을 공개할 수 있죠. 범죄자의 인권 보호가 너무 과하다는 불만이 터져나오는 이유입니다. 영국에선 살인 커플이 SNS 계정에 올려놓은 평소 모습 뿐 아니라, 소위 '머그샷(범죄자 인상착의 기록 사진)'도 공개됐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영국 언론들의 살인 사건 보도를 보면 깜짝깜짝 놀라곤 합니다.

만약 한국에서라면, 난리가 날 겁니다. 한국은 범죄자나 용의자의 얼굴·신상 공개가 매우 까다로운 나라거든요. 특히나 아무리 범죄자라 할지라도 미성년자의 얼굴을 공개하는 건 더 일어나기 힘든 일이죠. 물론 분노한 네티즌 수사대들이 집단지성의 힘으로 범죄자 신상털이를 하는 경우는 왕왕 있지만요.

'머그샷'의 나라, 미국 

반면 미국은 '머그샷의 나라'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용의자들의 사진이 공개됩니다. 미국의 머그샷 아카이브중 하나인 '머그샷게인스빌닷컴'이란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플로리다주 알라추아 카운티 경찰에 최근 한달 이내 구금된 사람들 600여명의 머그샷이 시간순으로 나열됩니다. 사이트에선 '이 사이트는 유·무죄를 가정하거나 확정하지 않는다. 범법 혐의로 기소된 사람들은 유죄로 입증되지 않는 한 무죄로 추정한다. 이 사이트의 정보는 실제 범죄 기록을 확인하는 데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 메시지를 달아놨습니다.

하지만 경고 메시지 텍스트 보다는, 머그샷 이미지 자체가 주는 메시지가 더 강렬해 보입니다. 가령 올초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음주운전 혐의로 체포된 뒤 공개된 머그샷에 미국은 물론 전세계가 충격에 빠졌습니다. 영웅의 몰락을 상징하는 충격적인 비주얼이었거든요. 네티즌들은 우즈의 머그샷을 졸린 눈을 한 고양이 캐릭터 '가필드'와 비교하며 조롱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5월 29일(현지 시간) 음주 혐의로 입건된 뒤 구치소에서 머그샷을 찍은 타이거 우즈. [사진=골프채널]

지난 5월 29일(현지 시간) 음주 혐의로 입건된 뒤 구치소에서 머그샷을 찍은 타이거 우즈. [사진=골프채널]

몰락을 상징하는 머그샷 

최근엔 미국의 데니스 해스터트(75) 전 하원의장의 머그샷이 화제가 됐습니다. 그는 21년간 하원의원을 지냈고, 1999년부터 8년간 하원의장직을 수행한 유력 정치인이었는데요. 정계에 입문하기 전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할 당시(1965~1981년)에 남학생들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했죠.

데니스 해스터트 전 미국 하원의장의 머그샷. [AP=연합뉴스, 레이크 카운티 교정당국]

데니스 해스터트 전 미국 하원의장의 머그샷. [AP=연합뉴스, 레이크 카운티 교정당국]

40년 전의 성추행 때문에 검찰에 기소돼 머그샷을 찍는 신세가 된 건 아닙니다. 성추행 피해자 중 한명의 입을 막으려고 거액의 현금을 불법적으로 분산 인출했던 게 적발돼 금융거래법 위반과 허위진술 혐의로 징역 15개월에 보호관찰 2년을 선고받았죠. 또 이와 별도로 성범죄자 재교육 이수 명령도 받았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성추행 혐의를 인정했거든요. 그는 13개월간 복역하다 교외지역의 사회적응 시설로 이감된 후 전자발찌를 차고 가택연금 상태로 남은 형기를 채우게 됐습니다. 그가 풀려나면서 머그샷도 공개된 겁니다.

머그샷으로 스타가 된 제러미 믹스.

머그샷으로 스타가 된 제러미 믹스.

머그샷으로 인생역전, '핫 머그샷 가이' 

하지만 '모든 머그샷=몰락'은 아닌가 봅니다. 악명높은 갱단의 조직원이었던 제러미 믹스(33)는 2014년 불법 총기소지 혐의로 체포됩니다. 하지만 경찰 SNS 계정에 공개된 머그샷이 일주일만에 좋아요 10만개를 받으며 인기를 끌면서, 감옥에서 모델 에이전시와 계약하죠. 2016년 출소 뒤 모델로서 새 인생을 살게 됐답니다. 총 대신 명품 옷과 소품을 걸치고 런웨이를 걷게 됐으니 아주 드문 인생역전의 사례랄까요.

'핫 머그샷 가이'라 불린 그는 돈과 인기를 얻습니다. 최근엔 클로에 그린(26)과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인증샷을 인스타그램에 남기며 교제중임을 밝혀 또 한번 화제가 됐죠. 클로에 그린은 억만장자의 딸이자 축구 스타 호날두의 옛 연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러미 믹스는 결혼한지 8년이 넘었고 아들도 있다고 하네요. 남편의 불륜에 열 받은 아내는 남편과 찍은 핫한 사진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부부인증을 하고, 이혼소송을 준비중이라고 언론에 밝힙니다. '핫 머그샷 가이'는 이혼으로 또 한번 인생역전을 꾀할까요.

알쓸피디아-머그샷

경찰이 체포한 범죄자나 용의자를 식별하기 위해 찍은 사진을 머그샷이라고 합니다. '머그(mug)'는 '얼굴'을 가리키는 18세기 속어라고 해요. 사진기가 개발된 뒤인 1840년대 초에 이미 벨기에·영국 등에서 범죄자의 사진을 촬영했다고 합니다. 지금처럼 정면·측면 등을 찍는 전형적인 머그샷 기록 절차는 19세기 후반에 정착됐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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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기자 dung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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