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열린 뉴욕채널 … 최선희가 이끄는 1.5트랙도 주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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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30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30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지난달 30일 중국 베이징의 주중 미국대사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북·미 간 채널에 대한 힌트만 몇 가지 남겼다. ▶평양을 향해 2~3개 열어 두고 있고 ▶중국을 통하지 않는 미국의 자체 채널이며 ▶대화를 원하는지 북한에 묻고 있다는 것이다.

틸러슨이 말한 2~3개 채널은 #유엔대표부 통한 공식 대화 통로 #5월 재가동 웜비어 석방 이끌어 #전직 당국자 참여 민간채널 유지 #스웨덴 등 활용 제3채널도 가능성

◆2~3개 채널 뭘까=북·미 간의 공식적인 대화 경로는 뉴욕에 있는 북한의 주유엔대표부를 활용한 이른바 ‘뉴욕 채널’이다. 미국과 외교 관계가 없는 북한은 미국 내에 합법적으로 둘 수 있는 유일한 공관인 유엔대표부를 대미 교섭창구로 활용해 왔다.

북한은 지난해 7월 미국이 인권제재 대상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포함한 데 반발해 뉴욕 채널 차단을 선언했다. 하지만 지난 5~6월 북한에 억류됐던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 석방 관련 협의를 위해 뉴욕 채널은 다시 열렸다. 조셉 윤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와 박성일 주유엔 차석대사가 각기 협의의 대표 역을 맡았다. 박성일은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평양 공연(2011년) 성사 등 북·미 간 교류에 관여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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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관반민(半官半民·1.5트랙) 채널을 활용할 수도 있다. 미국은 정부가 나서기에 앞서 전직 당국자나 전문가들을 내세우는 접촉을 우선적으로 해 왔다. 지난해 10월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1.5트랙 대화에 미국에선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핵특사와 조셉 디트라니 전 6자회담 차석대표가, 북한에서는 한성렬 외무성 부상과 장일훈 주유엔 차석대사가 나왔다.

주요 북미 접촉 일지

주요 북미 접촉 일지

최근에는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북미국장이 1.5트랙 측면에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웜비어 석방 논의도 지난 5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1.5트랙 대화에 참여한 최선희가 미 국무부와의 접촉을 원하면서 물꼬가 트였다. 조셉 윤 대표는 오슬로에 가서 최선희를 약 2시간 동안 만났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최근 한·미 관계 소식통을 인용해 “10월 중순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북·미 간 접촉이 추진되고 있다. 미국 측에서는 갈루치 전 특사 등 전직 관리가 나오고, 북한 측은 최선희가 참석 의향을 표했다”고 보도했다.

외교가에선 스웨덴 등이 주선하는 제3의 채널 가능성도 제기된다. 스웨덴과 북한은 1973년 수교 이래 상대국 수도에 서로 대사관을 개설했다. 평양의 주북한 스웨덴대사관은 북한 내에서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익대표부 역할을 하고 있다. 억류된 미국인 영사 면담 등도 스웨덴대사관이 맡는다. 외교가 소식통은 “스웨덴 정부도 그렇지만 스톡홀름평화연구소 등 스웨덴 내 연구기관들도 이전부터 남북 및 북·미 간 물밑 접촉을 성사시키는 데 큰 관심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대화 조건은=틸러슨 장관의 채널 발언 이후 헤더 노어트 미 국무부 대변인은 “북한이 비핵화 대화에 관심 있다는 신호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북한이 ‘로켓맨’ 등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김정은 비하 발언으로 격앙돼 있기 때문에 현재 미국과 진지한 협상을 추진할 분위기가 전혀 아니다”고 전망했다.

미국은 대화로 북핵 문제를 푸는 데는 찬성하지만 북한이 대화까지 나오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기조를 유지해 왔다. 정부 당국자는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이 협상 테이블 뒤에서 몰래 미국을 속인 과거 사례들을 면밀히 분석했다”며 “미국은 제재 수위를 최고로 올려 북한이 ‘비핵화를 안 하면 죽겠구나’ 하고 어쩔 수 없이 대화로 나와야 그 진정성을 믿을 수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틸러슨 장관도 “이란과 한 것 같은 엉성한(flimsy) 핵협상을 북한과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정용수·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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