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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 확대의 결과 … 연체율은 꾸준히 낮아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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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1호 19면

[시장을 보는 눈] 가계부채 급증의 이면

일러스트=강일구 ilgook@hanmail.net

일러스트=강일구 ilgook@hanmail.net

최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17년 8월 말 국내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 현황’은 매우 흥미로운 숫자를 제시한다. 가계에 빌려준 돈 중에서 제때 이자를 받지 못하거나 혹은 원금을 떼일 위기에 처한 돈의 비율, 즉 연체율이 0.28%로 사상 최저 수준에 그쳤기 때문이다. 물론 은행들이 우량 고객만 골라서 대출해 줬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타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저축은행의 연체율 역시 마찬가지 흐름이다. 가계대출 연체율은 2015년 말 6.8%에서 2016년 말 5.7%로 떨어진 데 이어, 2017년 6월 말 4.5%까지 하락했다.

사금융이던 전세금이 드러난 것 #새 아파트 청약 집단대출도 한 몫 #미국 등 선진국 금리인상 본격화 #자영업자 이자 증가 등 대비해야

한국 가계부채가 나날이 증가하고, 이게 한국 경제를 무너뜨릴 가장 위험한 요인이라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가계대출 연체율이 끝없이 떨어지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견해는 일시적 현상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해, 최근의 가계대출 연체율 하락은 대출이 급격히 늘어난 데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고 보는 견해다. 대출을 받자마자 이자를 연체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니, 이 주장은 꽤 일리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가계대출 연체율의 지속적인 하락 흐름은 일시적 현상이라는 주장과 대치된다. 은행의 가계 연체율은 1998년 말 7.9%에서 2007년 0.6%, 그리고 2014년 말에는 0.5%까지 떨어지는 등 거의 20년째 하락 흐름을 지속 중이기 때문이다.

가계대출 연체율 0.28%로 사상 최저 수준

가계부채가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체율이 떨어지는 현상을 설명하는 둘째 견해는 주택 임대시장의 구조변화다. 간단하게 말해, 전세가 월세로 빠르게 전환되는 과정에서 가계대출이 급증했다는 주장이다. 2006년만 해도 전체 임대가구 중에서 전세가구의 비중이 54.2%에 이를 정도로 높았지만, 2016년에는 그 비중이 39.5%까지 줄어들었다. 이와 같은 전세의 월세 전환은 가계 부채 증가로 연결된다. 왜냐하면 대략 430조~490조원 정도로 추정되는 전세 보증금이 축소되는 과정에서 공식적인 가계대출의 증가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3억원짜리 아파트를 보유한 사람이 2억원에 전세를 놓다, 보증금 1억원에 월 50만원을 받는 반전세로 전환했다고 생각해 보자. 1억원의 여유자금이 있는 사람이야 이 돈을 손쉽게 전세 세입자에게 돌려줄 수 있겠지만, 그런 여유가 없다면 집 주인은 세입자에게 돌려줄 전세 보증금을 부동산 담보대출을 통해 마련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집 주인과 전세 세입자 사이에 존재하던 1억원의 사금융이 부동산 담보대출이라는 제도권 금융으로 전환되는 셈이다. 게다가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사람은 1억원에 대해 2~3%의 이자를 내는 대신, 연 5% 이상의 월세 이율을 누릴 수 있으니 오히려 가계의 재무구조가 개선되고 연체율이 떨어질 것이다.

전세가 월세로 전환되는 게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치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2017년 6월 말 기준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총액은 449조원이다. 즉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총액에 버금가는 전세 보증금이 사금융의 형태로 우리 사회에 암묵적으로 존재했던 셈이다. 결국 전세의 월세 전환은 개인적인 영역에 존재하던 사금융이 주택담보대출의 형태로 드러난 셈이기에, 이전보다 더 투명해지고 또 부채 관리도 용이해졌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가계부채의 급증 원인이 임대시장 구조의 변화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파트 공급이 급증하면서 집단 대출이 늘어난 것도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그러나 최근 일부 지역 청약 경쟁률에서 확인되듯, 주변 아파트의 가격보다 저렴한 값에 공급되는 새 아파트에 청약한 사람들의 대출이 부실화될 가능성은 매우 작다. 또 일시적으로 연체하더라도 금융권에서 금방 회수할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 한다.

금리인상 통한 대출 축소에는 신중해야

결국 가계대출의 급증을 주도했던 요인 중에 남는 것은 자영업자 대출뿐이다. 2014년을 전후해 주택담보대출 요건이 크게 완화되면서 개인사업자들이 주택담보대출을 늘렸기 때문이다. 2016년 9월 말 기준 약 164조원의 가계대출이 실제로는 자영업자의 사업자금 대출 성격을 띄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영업자의 연체율은 높지 않으며, 적어도 2016년까지는 꾸준히 떨어지는 흐름이었다. 물론 중국의 사드 관련 보복과 김영란법 시행 이후 내수경기가 급격히 악화되었기에, 자영업자의 재무 건전성이 악화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대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상의 상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가계부채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체율이 크게 떨어진 이유는 전세 중심의 임대차 시장이 월세 위주로 재편되는 데 따른 구조적 요인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된다. 사금융의 일종인 전세의 월세 전환은 외형적인 가계부채의 증가 요인일 뿐, 실질적으로 본다면 민간 내에서 이뤄지던 개인 간의 금전 거래가 공적인 영역으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오히려 가계부채의 관리 면에서 더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이것으로 모든 문제가 깔끔하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자영업자의 대출이 부실화될 가능성을 대비할 필요가 있다. 추경 등 정부의 직접적인 재정지원뿐만 아니라, 기업들의 투자 및 고용 촉진도 자영업의 어려움을 덜어 주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개인사업자로 전환하는 사람들의 수가 끊임없이 늘어나는 상황에서는 경쟁이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통화정책의 변화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일각에서는 저금리 때문에 가계부채가 급증했다며 금리인상을 통해 이를 정상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나, 한국 가계부채의 증가 원인은 매우 다양하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전세의 월세 전환 흐름이 정책금리를 몇 차례 인상한다고 바뀔지 의심스러운 데다, 지어진 지 30년이 지난 노후 아파트의 비중이 빠르게 상승하는 상황에서 새 아파트에 대한 입주 수요를 무한정 억제하는 게 가능하냐는 이야기다. 특히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금리인상을 단행하면, 이자상환 부담 및 매출 둔화의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

물론 금리인상을 아예 하지 말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미국 등 선진국 금리인상이 본격화되는 상황에서 한국만 무한정 금리를 동결하기 어려울 수 있다. 다만,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을 저금리에서만 찾는 태도에서는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가계부채의 증가에는 구조적 요인과 경기 순환적 요인이 모두 영향을 미쳤기에, 그 대응도 이에 맞춰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홍춘욱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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