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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엔들 잊힐리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51호 29면

삶과 믿음

아주 오래전 일이다. 내가 학창시절 시골이던 외할아버지 댁에 놀러가 며칠을 묵을 때였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TV방송을 통한 이산가족찾기운동이 한창이었다. 자고 나면 수십 년 전 전쟁통에 헤어졌던 가족들이 서로 얼싸안고 우는 장면들이 보도돼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외할아버지께서는 며칠 동안 텔레비전 앞을 떠나지 않으셨다. 어느 날 한밤중에 잠에서 깬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텔레비전을 보고 계신 외할아버지를 보게 되었다. 다시 잠을 청하려는데 외할아버지의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전쟁 때 헤어진 가족들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이 그 밤 외할아버지를 울리고 말았던 것이다.

시간이 흐른 뒤 그날 밤에는 알지 못했던 외할아버지의 아픈 마음을 조금씩 느끼게 되었다. 텔레비전을 통해 보게 되는 이산가족들의 상봉 장면에 설사 내 가족이 아니더라도 눈물 흘리지 않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세상의 어떤 드라마가 이보다 더 슬플 수 있을까?

1·4후퇴로 작은 집에 맡긴 열 살의 딸이 이제는 환갑을 넘긴 나이가 되어 나타난 가족도 있었다. 이젠 늙어 버린 어머니 앞에서 “엄마, 왜 이제 오셨어요” 하며 울부짖자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떨어져 있었던 그 오랜 세월의 피맺힌 한의 절규를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었겠는가? 이제 와서 설명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세상에 어떤 단어도 이별보다, 그것도 기약 없는 이별보다 더 아픈 단어는 없을 것이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의용군에 끌려간 아들을 생각하며 대구역에서 돌아가시기 전 최근까지 무작정 밤늦도록 기다렸다는 한 할아버지의 사연도 눈물없이 들을 수 없었다. 전쟁터에 간 아들을 기다리며 돌아가실 때까지 사립문을 열고 주무셨다는 한 할머니의 마음을 과연 누가 온전히 알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 분단과 전쟁의 상처를 안고 있지 않은 가족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전쟁의 아픈 역사 속에 죽음과 이별을 체험하지 않은 가족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그러니 수십 년이 지나서야 만나게 되는 사람들을 보며 뜨거운 감격과 눈물이 솟구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는 TV 속 그들의 주름진 얼굴에서 우리의 아버지·어머니·할아버지·할머니·고모·이모부의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닌 진정 우리 자신의 일이었다.

남북이 다시 경색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초월해서 한 가지를 잊지 말자.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이산가족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 한 번만이라도 그들의 가족을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인륜이 아닐까. 꿈에도 그리던 가족의 소식도 듣지 못한 채 눈을 감으신 나의 외할아버지 같은 분들이 많다면 너무 슬픈 일이다.

허영엽 신부
천주교 서울대교구 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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