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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변화 못 읽어 수익률 뚝 … 짐싸는 외국계 운용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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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외국계 자산운용사가 짐을 싸고 있다. 해외 주식 투자 붐을 타고 한국에 상륙했던 외국계 자산운용사가 혹한기를 맞으며 한국 탈출에 나서거나 사업을 줄이고 있다.

주력분야 공모펀드시장 침체 지속 #금융규제 묶여 적극적 투자도 못해 #JP모간·피델리티 펀드 사업 접어 #상품 다양성 사라져 소비자에 불리 #‘아시아 금융허브’ 역할 퇴색 우려도

최근 몇달 사이 외국계 운용업계의 분위기는 뒤숭숭하다. 골드만삭스자산운용 철수 이후 5년 만에 JP모간자산운용이 이달 국내 펀드 운용 사업을 접기로 한데다, 외국계 운용사 중 대표 선수 격인 회사들도 하나둘씩 한국 내 사업을 줄일 채비를 하고 있어서다.

2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피델리티자산운용은 최근 500억원가량의 국내 주식형 펀드를 굴리던 운용팀 사업을 접기로 했다. 대신 해외 마케팅과 리서치 업무에 주력하기로 했다. 피델리티운용은 “주식형 펀드보다 상장지수펀드(ETF)를 선호하는 투자자가 늘면서 운용팀 유지가 어려워졌고 국내보단 해외 시장에서 더욱 장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프랭클린템플턴투신운용은 현재 삼성액티브자산운용과 조인트벤처 설립을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이다.

예단은 어렵지만 국내에서영업하고있는 삼성 액티브 운용 측 지분이 더 높아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앞서 UBS는 이달 초 하나UBS자산운용 지분 51%와 경영권을 하나금융투자에 넘겼다. 10년 만에 하나금융그룹과 협업을 끝내고 한국 자산운용 시장에서 부분 철수한 것이다. 주인이 사모펀드로 바뀐 곳도 있다. 홍콩계 파인브릿지자산운용은 큰 성과를 내지 못하다 지난 7월 사모펀드를 새 주인으로 맞은 뒤 이름을 에셋원자산운용으로 바꿨다.

자산운용사의 ‘코리아 엑소더스’가 심해진 이유는 무엇보다 외국계 운용사의 핵심 사업 모델과 현재 국내 펀드 시장 흐름의 괴리가 큰 탓이다. 외국계 운용사 대부분은 본사 상품에 100% 재투자하는 역외 재간접 펀드를 국내에 판매한다. 그렇다 보니 해외 주식형 공모펀드 상품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국내 공모펀드 시장은 10년 동안 침체됐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007년 223조원이던 공모펀드 순자산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그리곤 살아날 기미가 없다.

8월 말 기준 237조원으로 10년 전보다 소폭 늘었다. 반면 사모펀드나 부동산·특별자산펀드 시장은 급격히 커졌다. 같은 기간 사모펀드 순자산은 96조원에서 282조원으로 세배로 불었다.

박학순 금융감독원 자산운용국 부국장은 “외국계 운용사는 애초에 국내 운용보다는 영업 목적이 컸던데다 국내 운용사의 운용 범위가 해외로 넓어지면서 차별화가 어려워졌다”며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 공모펀드 시장이 활성화하지 못한 데 있다”고 말했다.

자연스레 실적도 나빠졌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계 자산운용사 23곳의 당기순이익은 975억원이었다. 지난해 상반기 660억원이던 당기순이익은 올 상반기엔 292억원으로 크게 줄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외국계 운용사는 국내 시장에서 규모를 키울 여력도 의지도 없다. 펀드 관리 인력도 국내 운용사에 비해 부족하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피델리티자산운용은 펀드 매니저 1명이 총 설정액 1조9100억원인 펀드 41개를 관리하고 있다. 블랙록자산운용과 얼라이언스번스틴자산운용도 1명이 각각 21개(1조1700억원)와 11개(1조5100억원)의 펀드를 담당한다. 국내 운용사는 펀드 매니저 한 명이 평균 6개(4000억원)의 펀드를 맡는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외국계 운용사는 실제 운용이 본사에서 이뤄지고 국내에선 헤지업무나 관리만 하기 때문에 국내 운용사와의 비교는 의미가 없다”면서도 “현재 사업 모델이 한국 시장의 트렌드와 맞는지는 생각해 볼 문제”라고 말했다. 국내 시장과의 정보 교류 차단과 금융 규제도 외국계 운용사의 적극적인 투자를 저해하는 요소로 지적됐다.

외국계 운용사의 한국 탈출은 장기적으로 국내 자본시장엔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환태 금융투자협회 집합투자서비스본부 자산운용지원부장은 “자산운용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금융허브 얘기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국내 시장에만 의존하면 언젠가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며 “해외 유수의 운용사가 국내 소비자에게 다양한 상품을 소개하는 긍정적 역할을 감안할 때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새누리 기자 newworl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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