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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칼날 앞에 선 원세훈, '직권남용, 국고손실' 피의자 조사

중앙일보

입력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지난 26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돼 호송차에서 내리고 있다. [취재기자단]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지난 26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돼 호송차에서 내리고 있다. [취재기자단]

원세훈(66) 전 국가정보원장이 다시 한번 검찰의 칼끝에 섰다. 검찰은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원 전 원장을 26일 오후 2시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했다. 정장 차림에 흰색 마스크를 쓴 그는 취재진의 질문에 입을 열지 않고 조사실로 들어갔다.

26일 오후 2시 피의자 신분 소환 조사 #국정원법상 직권남용, 국고손실 혐의 #VIP 지시-보고 여부 등도 캐물어

검찰은 원 전 원장에 대해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국정원법상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해 추가 기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앞서 ‘댓글 부대’ 사건에서 원 전 원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2012년 선거를 전후한 시점에서 벌어진 국정원법상 정치 관여, 공직선거법 위반이었다. 그는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4년, 자격정지 4년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이날 검찰은 원 전 원장에게 민병주(59) 전 국정원 심리전단장이 연루된 댓글부대 예산 집행 의혹을 캐물었다. 48개 민간인 댓글부대 운영에 약 70억원의 국정원 특수활동비가 투입됐고 원 전 원장이 이를 총괄했다는 의혹이다. 앞서 민 전 단장은 19일 국고손실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민 전 단장에 대한 기소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추가 수사가 필요해 구속 기간을 연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민병주→이종명→원세훈’ 지휘 체계의 고리로 지목된 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에 대해선 추석 이후 한 두 차례 더 조사를 벌일 계획이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소환을 앞둔 서울중앙지검 [취재기자단]

원세훈 전 국정원장 소환을 앞둔 서울중앙지검 [취재기자단]

향후 원 전 원장의 수사는 크게 세 갈래로 갈라질 전망이다. ▶2012년 선거 전후의 공작 활동 ▶MB 블랙리스트 ▶정치인ㆍ교수 제압활동 의혹이다. 서울중앙지검은 외사부 일부 검사들을 국정원 수사팀에 투입해 수사팀 규모가 기존 10명에서 15명가량으로 늘었다.

선거 전후 공작활동은 기존 수사의 연장선에 놓여있다. 검찰은 이미 민간인 팀장들과 관제 데모에 동원된 의혹을 받는 추선희(58)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하는 등 어느 정도 수사를 진척해놓은 상황이다. MB 블랙리스트 의혹의 경우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이 제출됐다. 고소장엔 배우 문성근·김규리, 방송인 김미화, 영화 감독 민병훈씨 등 5명이 이름을 올렸다.

25일 국정원 개혁위원회(개혁위)의 조사 발표로 드러난 정치인·교수 제압활동 의혹도 수사 대상이다. 개혁위에 따르면 당시 학계(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이상돈 국민의당 의원)와 여권(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원희룡 제주지사) 인사들도 국정원의 표적이 됐다. 수사팀 관계자는 “기존의 ‘정부여당 옹호, 야당 비판’ 프레임에서 벗어난 학계, 여권 인사에 대한 공작에 대해선 직권남용 혐의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혁위는 원 전 원장을 업무상 횡령ㆍ배임 혐의로 수사의뢰할 것을 권고했다. 댓글부대, 보수단체를 동원한 온·오프라인 활동 과정에서 자금이 지원됐을 거란 판단에서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업무상 횡령보다는 특가법상 국고손실의 혐의가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며 “자금 지원 과정에서 나온 영수증 뿐 아니라 결재 과정에서 작성된 국정원 내부 증빙 서류 등에 대해서도 자료 제출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국고손실의 경우 액수가 5억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공소시효는 10년으로 국정원법 위반(7년)에 비해 길다.

검찰은 국정원의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한 비난 활동, MBCㆍKBS 방송 장악 의혹에 대해서도 원 전 원장이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수사할 방침이다.

25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로 들어서고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 [연합뉴스]

25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로 들어서고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 [연합뉴스]

검찰은 이날 원 전 원장에게 ‘윗선’으로 거론되는 청와대 관계자와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보고ㆍ지시 여부도 캐물었다. 국정원 적폐청산 TF는 지난 3일 2011년 국정원이 청와대의 지시로 ‘SNS 영향력 문건’을 작성해 보고했다고 발표했다. 25일엔 청와대가 2012년 선거를 앞두고 정치인들의 인물 세평(世評)과 동향을 수집하란 지시를 내린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원전 원장은 앞으로 수차례 더 소환해 조사를 벌일 예정이다”며 “블랙리스트의 피해자로 지목된 문화ㆍ예술계 인사는 가급적 추석 이후에 참고인 조사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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