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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청년에게 농업을 권하기에 앞서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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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가영 소녀방앗간 이사

김가영 소녀방앗간 이사

요즘 청년 벤처 창업으로 농업이 뜨고 있다는 기사가 많이 나옵니다. 정부에서도 청년 농업벤처 창업을 돕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도 합니다. 저는 10여 년 전인 대학 2학년 때 농사를 짓기 시작해 지금은 농업벤처기업을 합니다. 그렇기에 이런 현상을 크게 반깁니다만 한편으론 우려스럽게 지켜보기도 합니다.

청년들의 농업벤처 창업 바람 #바람직하지만 중도 포기 많아 #구태의연한 농정·사회인식이 #청년 농업벤처의 걸림돌 돼

물론 개인적으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농업이야말로 청년이 도전해볼 만한 일”이라고 말입니다. 그렇지만 농업벤처는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젊은 농업벤처 창업인들께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 제 경험과 생각 몇 가지 얘기하고 싶습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 농촌을 모르던 아이가 농사를 짓게 된 것은 농촌연대활동을 떠났다가 만나게 된 검붉은 과실과 초록의 대지, 시시때때로 변하는 하늘의 모습처럼 자연의 민낯에 이유 없이 마음이 끌려서였습니다. 처음엔 그저 자연에 머물러 농사를 지어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는 그 동네 젊은이가 되었고, 동네 어르신들을 대신해 채소를 좀 더 좋은 값에 팔아 보겠다며 다니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농사꾼과 장사꾼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10년 넘게 농사를 짓고, 농산물을 팔고, 이제는 내가 지은 농산물로 직접 밥집도 열었습니다. 모두 매 순간 살아가기 위해 벌인 일들이었는데 세월이 쌓이다 보니 세상에선 어느덧 저를 ‘농업벤처인’이라고 불러주더군요.

그동안 세상이 많이 변해 “대학 나와서 험한 일 한다”고 하시던 어른들의 염려도 조금씩 수그러들고, 오히려 응원해주시는 분이 많습니다. 주변의 동생이나 친구도 이 일을 해보겠다면서 뛰어듭니다. 제가 시작한 일에 벌써 40여 명의 동료가 생겼습니다. 기업 형태를 갖추게 되자 오히려 겁이 더럭 났습니다. 동료가 없을 때는 그저 혼자 먹고사는 일이니 혼자 애쓰면 그만이었는데 이제 여럿이 먹고살아야 하는 일터가 되었으니까요.

농업의 보람이라면 이런 겁니다. 매년 열리는 새로운 농작물로 소비자를 만나는 일이라 한 번 겪은 실수를 경험 삼아 여러 번 반복해 고치다 보면 새로운 생산과 판매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것. 의외로 창의적인 일입니다. 도시의 보통 직장 일은 성과를 내기까지 기간이 길고 자신이 기여할 여지가 적은 편이지만 농업 생산은 파종부터 수확까지 한 사람의 손안에서 이뤄지기에 자기 일을 하고 싶은 젊은이에겐 자유롭고 보람찬 직업입니다.

그러나 농사 경험 없이 무턱대고 농사부터 짓겠다고 덤벼들면 실패하기 쉽습니다. 귀농하려면 정착지를 정하고 경작을 하기 전에 그 지역사회로 가서 작은 일자리를 찾거나 지역에 기여할 봉사활동을 하면서 장소와 계획을 마련하는 게 좋습니다.

실제로 저는 이 일을 하면서 처음엔 호기롭게 도전한 많은 청년 창업가가 떠나는 걸 보았습니다. 농업은 그 기반을 갖추는 데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듭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해 주지만 실제 농업생산물을 판매하고 난 뒤 소요 비용을 빼면 인건비 겨우 남고 대출을 갚자면 또 한참이 걸립니다. 여유 자금 있다고 위험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닙니다. 대부분 지역별로 지원하는 경작물의 종류가 정해져 있어 수확 농작물이 그 지역의 주력 농산물이 아닌 경우엔 농민 스스로가 기존의 유통 구조에서 새로운 판로를 직접 찾아야 합니다. 또 농산물의 인증 체계를 따르는 데 상당 비용이 듭니다. 그런데 그렇게 인증받은 농산물 가격이 지출 비용만큼 시장에서 인정받기도 힘듭니다.

우리 사회의 농업에 대한 인식과 가치에 대한 인정은 한참 뒤떨어져 있는 게 사실입니다. 농업벤처가 발전하려면 먼저 사회 인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소비자는 생산자의 터전이 지속 가능해야만 먹거리 안전이 보장되고, 좋은 농산물을 먹으려면 값을 더 지출해야 한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 혁신을 위해 전문성 있는 젊은이가 많이 뛰어들어야 합니다.

그러자면 정책적으로도 단순히 생산 비용을 보전하는 방식이 아니라 농업 기술 개발, 유통 혁신, 농업생산물 소비 연구 등 농업 인접 영역까지도 긴 호흡을 가지고 지원하고 같이 고민해야 합니다. 농업을 1·2·3차 산업 융합이라고 해서 ‘6차 산업’이라 부르면서도 실제 농정은 1차 산업의 범주에 묶여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래서는 전문성 있고 야심 찬 청년을 불러 모을 수 없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농업을 자신의 삶과 일터로 삼고 싶어 합니다. 이젠 청년의 일터가 될 농업에 우리 사회가 현대적 감각으로 다가가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김가영 소녀방앗간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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