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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적긴축, 바람에 맞서 대응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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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윤 기자 중앙일보 편집국장
김종윤 경제부장

김종윤 경제부장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2010년 11월 ‘2차 양적완화(QE)’를 결정한 건 위험한 도박이었다. 2009년 3월의 1차 양적완화는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무너진 미 금융시장 회복이 목적이었다.

돈줄 죄는 Fed, 신흥국 ‘긴축 발작’ 방아쇠 될 수도 #한국은행도 신속히 대응해 중앙은행 신뢰 쌓아야

중앙은행은 ‘최종 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다. 패닉이 덮쳤을 때 누구든 중앙은행의 문을 두드리면 담보를 잡고 아낌없이 대출해주는 게 역할이다. 금융시스템 작동을 위해서다. 문제는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퍼펙트 스톰이 덮치자 금융시장에 불신이 싹텄다. 누가 언제 쓰러질지 모르니 남을 믿지 못했다. 돈이 돌 리 없었다.

이때 착안한 게 비전통적 통화정책인 ‘대규모 자산 매입(LSAP)’, 곧 양적완화다. 전통적 통화정책인 기준금리 조정은 초단기 금리에 즉각 영향을 미친다. 순차적으로 장기 시장금리와 예금·대출 금리의 변동으로 이어지고, 궁극적으로 실물경제의 흐름을 좌우한다.

버냉키가 그린 양적완화는 Fed가 시장에서 장기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을 직접 사는 것이다. 금리 파급경로를 건너뛰고 장기채 시장에 직접 모르핀을 투여했다. 노골적인 자산 가격 조정이자 시장 개입이었다. 장기채 가격이 뛰면(금리 하락) 투자자가 장기채를 살 유인이 없어진다. 버냉키는 대신 투자자가 회사채로 눈을 돌리길 바랐다. 그러면 단기 채권 가격이 오른다(금리 하락). 금리가 낮아지니 경기부양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다만 돈이 주식시장으로 쏠릴 수 있다는 게 걱정이었다. 실물경제는 바닥을 기는데 주식시장만 과열될 수 있다. 2차 양적완화가 모험으로 불린 이유다. 버냉키는 설령 주가에 버블이 끼더라도 가격 상승에 따른 ‘자산 효과’를 바탕으로 경기가 개선되면 문제없을 것으로 봤다. 노무라종합연구소의 리처드 쿠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이를 두고 “말 앞에 마차를 놓는 것과 같은 꼴”이라고 말했다. 실물경제가 나아진 결과로 자산가격이 오르는 경기 개선 사이클과는 정반대의 코스를 가기 때문이다.

버냉키의 모험, 어느 정도 성공했다. 동시에 부작용도 만만찮았다. 버냉키의 후임 재닛 옐런은 지난 20일 이제는 과열을 걱정해야 할 때라는 메시지를 시장에 보냈다. 4조5000억 달러까지 급증한 Fed 보유 자산 중 만기가 된 국채나 MBS를 다음달부터 재투자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만기 장기채권을 시중에 풀고 돈을 빨아들이겠다는 ‘양적긴축(QT·Quantitative Tightening)’이다.

그 배경에는 경기 회복에 대한 자신감에다 과열된 주식시장에 대한 선제 대응 의지가 담겨 있다. 요즘 미 다우지수는 고공행진 중이다. 그동안 풀린 돈이 불나방처럼 증시로 뛰어든 결과다. Fed가 양적긴축에 돌입하면 양적완화 때와는 반대로 장기채권 가격이 떨어져(금리가 올라) 투자 매력도가 커진다. 증시에서 발을 빼 채권시장으로 오라는 유혹의 신호다.

지난 10년간 세계경제는 돈줄 파이프를 여는 데만 익숙했다. 이제 닫아야 할 차례다. 가보지 않은 길이니 파이프를 얼만큼 닫아야 할지, 돈의 흐름을 어떻게 역류시켜야 할지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분명한 건 양적긴축은 세계 경제의 딜레마라는 점이다. 자금 회수로 장기금리가 급등하면 자동차와 주택 등 금리에 민감한 수요가 위축되면서 경기는 다시 하강곡선을 그릴 수 있다. 그러면 중앙은행은 또 돈줄 파이프를 열어야 하고, 그러다 재차 닫아야 하고. 양적긴축의 덫이다.

그동안 Fed가 푼 돈은 꽤 신흥국으로 향했다.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고 경제가 성장세를 보여서다. 한국도 포함된다. 이 말을 뒤집으면 본격적으로 긴축의 시대로 접어들면 한국에 투자됐던 자금이 본국으로 유턴할 수 있다는 뜻이다. 통화가치와 주가 등이 급락하는 ‘긴축 발작’ 걱정은 그래서 나온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셈법이 복잡해졌다”고 말했다. ‘바람에 맞서 대응하는(lean against wind)’ 게 통화정책이다.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진 한은, 어떻게 바람에 맞설 것인가.

김종윤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