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수소폭탄이 떨어지더라도 오늘 가을 날씨가 청명하고 바람이 스리스리 불면 행복한 사람, 그가 바로 남한 사람입니다.”
북핵 완성 한반도 위기론에 초연한 듯한 한국민 #안전벨트 매듯 유사시 대비해 놓고 할 일 하자
지난 3일 북한이 제6차 핵실험에 성공한 이후 SNS에서 회자한 어떤 이의 트윗 글이다. 1945년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 폭발력의 10배가 넘는 수소폭탄을 북한이 산중에서 터뜨려 지축을 뒤흔들었는데도 아무 일 없는 듯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웃픈’ 모습을 담았다.
북한은 가졌고 우리는 갖지 못한 절대무기 핵이 한반도의 안보를 쥐락펴락하는 상황이 닥쳤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에 이어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을 이동식 발사대에서 일본 홋카이도 머리 위로 날렸다. 방향만 틀면 괌 미군기지로 떨어졌을 거리였다.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안보 세상이 펼쳐졌는데, ‘놀랍도록 태연자약하다(surprisingly blase)’고 외신들이 표현할 정도로 한국은 차분하다. 서울 주재 한 외교관은 “2010년 국토(연평도)가 공격받는 상황에서도 평온해 신기했는데, 이번에도 놀랍다”고 했다.
왜일까. 몇 사람에게 물어봤다. “전쟁이면 어차피 전멸이니까, 차라리 잊고 산다” “무뎌졌다” “사는 게 팍팍해서 전쟁 신경 안 쓴다” “북한이 공격하진 않을 거다”. 저마다 다른 생각에도 가슴 한편의 불안감은 다들 있었다.
주변에는 나름의 대비에 나선 이들도 있었다. 외국 생활을 오래 한 40대 부부는 2주 치 생수와 식량, 간이 화장실을 준비해뒀다고 한다. 아이들과 연락이 끊길 경우에 대비해 1차 상봉 장소를 서울 외곽의 외할머니댁, 2차 장소를 집(또는 집터)으로 정했다. 곧바로 만나지 못할 경우 매주, 헤어진 요일의 낮 12시에 집에서 만나자는 약속까지 했다. 50대 독신 여성은 집을 계약하면서 전망 좋은 21층 대신 9층을 택했다. 계단으로 대피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30대 청년은 오토바이를 살 예정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선 안 되지만, 일어나지 않을 확률이 0%는 아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생화학무기를, 핵EMP탄(전자기파)을 쓰지 않길 바라지만 안 쓸 가능성이 0%는 아니다. 그동안 북한 도발로 숱한 청년들이 무고한 목숨을 잃었다. 종국에는 북·미가 대타협을 할 거라고는 하지만 핵을 결코 버리지 않을 북한에 대해 미국은 어떤 선택을 할지 알 수 없다. 북한의 궁극 목적은 미군 철수인데 막다른 대립이 어떤 위기로 비화할지 알 수가 없다. 주한미군이 철수할 경우 핵국가 북한과 중국·러시아에 둘러싸인 한국에 어떤 위기가 닥쳐올지도 알 수 없다. 김정은에게 6·25전쟁은 할아버지 김일성이 못다 이룬 꿈이고, 미국은 ‘경제·외교적 대북 압박을 할 데까지 하고 안 되면 군사적 옵션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기세다.
일본은 북한 미사일 발사 때 즉시경보시스템 ‘J 얼러트’를 가동해 주민 2500만 명에게 긴급 대비 지시를 하며 초 단위 대응에 나섰다. 헌법 개정을 위한 아베의 ‘오버액션’이라는 비난도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괌 정부도 북한의 포위공격 위협 이후 2쪽짜리 비상 대피 메뉴얼을 주민에게 나눠줬다.
우리는 미사일이 날아오면 어디로 피해야 하나. 생화학무기가 터지면 지하로 대피하나, 고층으로 가야 하나. 차 속에선 어떻게 하나. 쓸데없이 공포감을 부추기자고 함이 아니다. 안보 현실을 직시하고, 만일에 대비하자는 것이다. 정부는 유사시 대비 시스템을 정비하고 국민에게 몇 쪽짜리 대응 안내문이라도 배포해야 한다.
일본에 헤이와보케(平和ぼけ)란 말이 있다. ‘평화 치매’란 뜻이다. 패전 이후 고도성장 속 평화에 익숙해져서 위기에 둔감해진 걸 경계하자는 말로, 일본 우파가 즐겨 쓴다. 최근 북한의 도발로 일본 내에선 이런 말이 쏙 들어갔다. 대신 “한국이 평화 치매에 빠졌다”고 수근거린다고 한다. 안보불감증은 우리 사회가 젖어 있는 안전불감증의 또 다른 모습이다. 안전벨트 매고 차를 타듯, 차분하게 대비는 해 두자. 추석 명절 가족이 모이면 비상사태가 발생할 때 재회 장소라도 정해 놓자.
김수정 외교안보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