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자가 본 법정]초등생 살인죄 무기-징역20년 선고 순간에도 태연한 10대 여성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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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범 P양(18·재수생)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다. 주범 K양(17)은 징역 20년에 처한다."

인천 초등생 살해 주범이 피해 어린이 C양(8)을 유인해 자신의 아파트 집으로 데려가는 모습.[중앙포토]

인천 초등생 살해 주범이 피해 어린이 C양(8)을 유인해 자신의 아파트 집으로 데려가는 모습.[중앙포토]

22일 오후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의 주범과 공범에 대한 선고 공판이 열린 인천지법 413호 법정. 판사의 중형 선고에도 연두색 수의를 입은 두 10대 여성 피고인들의 얼굴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손을 앞으로 모은 뒤 잠시 눈을 감고(P양), 차렷 자세로 눈을 여러 차례 깜빡이긴(K양) 했지만 둘 다 눈물을 흘리진 않았다. 시종일관 무표정으로 판사석만 바라봤다. 그리고 들어올 때처럼 말없이 법정을 빠져나갔다.

인천지법, 인천 초등생 살해 10대 2명에 각 무기-징역20년 선고 #심신미약 등 피고인들 변명은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아 #공범 재수생은 무기징역 선고…검찰 구형 그대로 수용 #"주범,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 아니다" #"공범, 범행 잔혹함 등으로 볼 때 소년법 특성 고려할 상황 아냐"

이웃에 사는 초등학생을 유인해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10대와 그 공범에게 법원이 만 18세 미만 미성년자에게 적용되는 법정형의 최고 한도를 선고했다.
인천지법 형사15부(허준석 부장판사)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미성년자 약취·유인 후 살인 및 사체손괴·유기죄로 기소된 주범 K양에게 징역 20년을, 살인과 사체유기 혐의로 기소된 P양에게 무기징역을 각각 선고했다. 또 이들에게 3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을 명령했다.

앞서 지난달 29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검찰이 구형한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인천 초등생을 살해한 A양이 3월 30일 경찰 조사를 받은 뒤 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천 초등생을 살해한 A양이 3월 30일 경찰 조사를 받은 뒤 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재판부는 "이 사건은 여성 청소년들이 아동을 유괴해 살해하고 사체까지 훼손해 사회 전체와 충격과 공분을 불러일으킨 사건"이라며 "피고인들의 범행으로 대가족에서 사랑을 받으며 자라 새 학기를 맞은 피해자는 참혹하게 삶을 마감했다. 피해자를 다시 못 본다는 애통함과 피해자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가해자에 대한 극심한 분노에서 유가족들은 고통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또 "피고인들은 공모에 따라 피해자를 살해하고 신체 일부를 건네받기도 했다. 이로 인해 피해자는 사망한 후에도 온전히 가족에게 돌아가지 못했다"며 "피고인들이 반성문을 제출하긴 했지만, 재판 내내 책임을 줄이기 위해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어 반성하고 있는지 의문이고 유가족도 피고인들의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안경을 끼고 단발머리(K양)와 하나로 머리를 묶은 채(P양) 재판장에 등장한 이들은 재판 내내 태연했다. 잠시 손을 문지르고 깍지 낀 손을 쥐었다 펴긴 했지만 선고 내내 큰 움직임은 없었다.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K양은 지난 3월 29일 인천시 연수구의 한 공원에서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초등학교 2학년생 A양(8)을 유괴해 살해한 뒤 시신을 잔혹하게 훼손하고 유기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인천초등생 살인 시킨 공범 [연합뉴스]

인천초등생 살인 시킨 공범 [연합뉴스]

P양은 당초 K양과 살인 범행을 함께 계획하고 훼손된 A양의 시신을 건네받아 유기한 혐의(살인방조 등)로 구속기소 됐다. 그러나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K양이 "P양의 지시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하면서 살인 등으로 죄명이 변경됐다.
재판부는 40분간 이어진 이날 선고에서 K양과 P양이 재판 과정에서 했던 변명을 하나하나 반박했다.
'아스퍼거 증후군 등 심신미약과 우발적 범행, 자수'를 거론하며 선처를 구했던 K양의 주장은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법원은 "K양이 조사과정에서 주장한 다중인격이나 아스퍼거 증후군 등이 범행 당시 심신 상태와 직접 연관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피고인이 조사 당시 범행을 부인하는 등의 태도를 보인 만큼 형법상 '자수'에 해당한다고 보기어렵다"며 "범행 전 휴대전화로 '초등학교 하교시간 등을 검색하고 학교 주변을 배회하며 범행 대상을 물색하고 폐쇄회로 TV(CCTV)를 의식하는 모습, 나중에 발각될 것을 대비한 행적 등은 우발적인 범행이 아닌 계획적인 범행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살인 범행을 공모한 적이 없고 K양의 범행을 역할극으로 생각했다"는 P양의 주장도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주범과 공범의 공모관계가 직접적이거나 이를 입증할 수 있는 물증은 남아있지 않아 주범인 K양의 진술에 의존해야 하는데 K양이 자신의 심신미약을 주장하면서 공모를 주장하는 것은 사전 논의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 자신의 기존 주장을 뒤엎는 것"이라며 "P양이 역할극인 줄 알았다면서도 K양에게 사체 일부를 건네받은 뒤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함께 있었고 둘의 대화 내용 등도 입수 과정에 관여하거나 경위를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면 취하기 어려운 태도를 보이는 등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재판을 담당한 허준석 부장판사는 양형 이유를 설명하기 전 잠시 말을 멈췄다. K양과 P양이 만 18세 미성년자라 소년법이 적용 대상자이기 때문이다.
소년법상 18세 미만 최고형은 15년이지만 특정강력범죄법을 적용해 K양은 최고형인 20년을 선고했다.

인천 초등생 살인 사건을 다룬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한 장면[사진 SBS]

인천 초등생 살인 사건을 다룬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한 장면[사진 SBS]

문제는 1998년 12월생으로 올해 만 18세인 P양이다. 사형 또는 무기형에 처할 경우 15년의 유기징역으로 한다는 소년법 제59조 ‘사형 및 무기형의 완화’ 조항은 범행 당시 18세 미만인 경우에 적용되기 때문에 P양은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가 가능하다. 이에 검찰도 P양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었다.

허 부장판사는 "여러 차례 고심했다"며 "범행의 잔혹함, 사안의 중대성에 비추어 볼 때, 실행행위 분담 여부나 소년범죄의 특성을 고려하여 책임의 경중을 가릴 사안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P양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이유를 설명했다.

인천지법 관계자는 "주범 K양에 대해선 현행 법률 하에서 선고할 수 있는 최대한도의 형인 20년을 선고했고 공범인 P양은 비록 소년범이고 실행행위에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범행의 잔혹성과 사안의 중대성 등을 고려하여 무기징역형의 중형을 선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피해자인 A양의 엄마를 비롯한 가족은 법정 방청석에 나오지 않았다.
피해자 가족들의 법률대리인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김지미 변호사는 "소년법상 만 18세 이상에겐 사형·무기징역 선고가 가능하지만 이례적인 판결"이라며 "구형대로 나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예상보다 형이 높게 나왔고 피해자의 엄마도 (선고 결과에 대해)놀랍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인천=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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