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무 한국역사문화연구원장 "역사공부는 국민의 평생 교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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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낼 때 일본 교과서 왜곡 문제가 터졌다. 그런데 그 일로 만난 우리 정치인을 비롯한 사회 지도층들이 역사 의식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 때 한분이 역사에 대해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고 고백하더라."

일반인 대상의 최고지도자 과정 프로그램으로는 역사 강좌를 처음 여는 이성무(66) 한국역사문화연구원장. 우리 교과 과정의 역사 수업 부재를 탓하고, 사회의 버팀목인 청장년이 되어도 여전히 역사를 배울 기회가 없는 것을 고민하다 올 6월 국사편찬위원장을 퇴임하고 평생교육원 역사 강좌를 시작하게 됐다.

다음달 4일부터 이화여대 평생교육원에서 이원장의 '한국의 역사와 문화'란 강의를 시작으로, 매주 목요일 정양모 문화재 위원장, 이배용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 안휘준 서울대 고고미술학과 교수 등 최고 강사들이 모여 '조선의 도자기''한국 미술의 흐름' 등을 강의한다.

최고지도자 과정이라면 그동안 경영.디자인.정보기술(IT) 등 실무적인 내용을 주로 다뤘다.

"역사뿐 아니라 최고지도자 과정에서 인문학을 가르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돈 버는 전공이 아니면 살아남지 못해 그렇게 해왔겠지만, 정년을 맞은 50~60대가 되면 나는 누구이며, 우리 민족과 국가는 무엇인지 근본적 문제를 더 고민하지 않는가. 그런 고민 해결에는 역사를 비롯한 인문지식이 필요하다."

지나간 역사 속에 현실 문제에 답이 있고, 미래를 예측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회 갈등을 보자. 보수와 진보, 노사 갈등을 최소화하는 것은 지도자가 어느 편도 들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집단이 극단적으로 가고, 지도층 또한 한 쪽 편을 들어 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모두가 역사 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한국의 역사와 문화'과목에서 강의할 대목인 훈구파와 사림파가 대립하던 조선시대를 언급하며, 훈구파는 세월에 의해 세력을 잃을 수밖에 없고 사림파는 그들 내부에서 분쟁을 겪었다고 설명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보수와 진보 갈등도 이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런 때 지식인들이 나서서 조화를 이루는 사회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이념은 주장하되 서로 상처를 내며 충돌하는 극한 대립을 피하려면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우리 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역사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 이 노사학자의 이야기다.

외세 때문에 쇠하기는 했지만 조선왕조가 5백년간을 인문을 강조한 문치주의로만 훌륭히 운영된 점을 상기하고 각박한 법률이 아니라 예(禮)로써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도 연구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지인인 강사들에게도 "역사 이야기를 해도 현실 문제와 관련시켜 강의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사실(史實)만 나열해서는 역사의 현대적 쓰임새를 수강자들이 몸소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역사 대중화에 보탬이 되고자 이원장은 환갑 이후부터 대중적 역사책을 써오기도 했다.

최근 '조선의 부정부패 어떻게 막았을까'(청아출판사) 등 여덟권을 펴냈다. 강좌에 대한 문의는 02-3277-3111~3.

글=홍수현,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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