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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도 전술핵에 부정적 … 전략자산 배치는 비용이 변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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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9호 05면

전술핵 재배치 vs 미 전략자산 상시·순환 배치 Q&A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13일 전국 성인 남녀 50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의 53.5%는 한국의 핵무기 독자 개발 또는 전술핵 재배치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는 35.1%였다.

“전술핵으로 공포의 균형” 주장에 #동북아시아 핵 보유 도미노 우려 #한·미 “실현 가능성, 효과 낮아” #전술핵 대안은 미 전략자산 배치 #韓 ‘확장 억제력’ 강화 차원 요구에 #美 방위비 분담 증액 요구 가능성

한발 더 나아가 ‘둘 다 실현 가능성이 있다’는 답변도 49.7%로 ‘불가능하다’는 답변(38.9%)보다 높았다. 개발 완료를 눈앞에 두고 있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우리 국민의 우려가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다. 특히 지난 3일 북한의 6차 핵실험에 이어 지난 15일 일본 상공을 넘어가는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 시험발사가 이어지면서 전술핵 재배치 찬성 여론에 더욱 힘이 붙는 모양새다.

청와대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4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핵에 대응해 우리가 자체적으로 핵을 개발해야 한다거나 전술핵을 다시 반입해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북한 핵에 우리도 핵으로 맞서겠다는 자세로 대응하면 평화가 유지되기 어렵고 동북아시아 전체의 핵 경쟁을 촉발시킬 것”이라고 반대 이유를 설명했다.

대신 정부는 핵 항공모함과 전략폭격기, 전략핵잠수함(SSBN) 등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상시 또는 순환 배치를 추진 중이다. 현재는 필요할 경우 한·미 협의를 거쳐 한반도에 전개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술핵 재배치 이슈는 북한이 도발을 계속하는 가운데 기존 입장대로 비핵화 협상 대신 핵 군축 협상을 요구할 경우 언제든 수면으로 다시 떠오를 수 있다. 국내 정치적으로도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안보 이슈가 선거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요인이 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중앙SUNDAY는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와 미 전략자산의 상시·순환 배치와 관련한 정치·외교·안보적 함의를 Q&A로 정리해 봤다.

Q 전술핵 재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의 근거는.

찬성론자들이 제시하는 핵심 근거 중 하나는 핵무기는 오직 핵무기로만 억지할 수 있다는 이른바 ‘공포의 균형’ 논리다. 한국이 북한 핵의 ‘인질’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핵 보유가 불가피하다는 거다.

전술핵 재배치는 북한의 재래식 무기 공격에도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해준다. 예를 들어 북한이 서해 연평도를 재래식 무기로 공격할 경우 한국이 북한의 추가 핵 공격을 우려해 곧바로 응징·보복에 나서지 못하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북한의 핵 개발을 사실상 방관해 온 중국을 압박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것이란 판단도 작용하고 있다. 중국이 가장 우려하는 안보 상황은 동북아시아의 핵 경쟁, 즉 한국→일본→대만으로 도미노처럼 이어지는 주변국들의 핵 보유이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 핵·미사일이 미 본토까지 위협하는 상황에서 ‘과연 미국이 샌프란시스코나 로스앤젤레스가 핵 공격 위협에 놓일 수 있는 상황에서 서울 방어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것인가’라는 국내의 불안 심리도 깔려 있다.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를 통해 미국의 ‘확장 억제(extended deterrence)’ 공약의 신뢰성을 더욱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Q 한국이 원한다면 미국은 수용할까.

가능성은 매우 낮다.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지난 13일(현지시간) ‘미국 핵무기의 심장’인 노스다코타주 마이노트 공군기지를 방문한 자리에서 “우리는 핵 억지력을 갖고 있으며 핵무기의 위치는 중요하지 않다”며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앞서 마크 내퍼 주한 미대사대리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미국의 한국 방위공약에 믿음을 가져야 한다”며 “미국은 진심으로 한국을 지킬 의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논리는 이렇다. 평양을 30분 이내에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미니트맨 3’를 비롯해 한반도 해역에 배치된 전략핵잠수함에서 발사 가능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트라이던트 D-5, 괌에서 2시간 안에 도달 가능한 B-1B 랜서 등 전략폭격기에 탑재된 핵무기 등을 통한 ‘핵우산’으로도 억지 효과는 이미 충분하다는 거다.

위성락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객원교수도 16일 중앙SUNDAY와의 통화에서 “전술핵이 한국에 배치되더라도 실제적인 효과는 현재의 ‘확장 억제’와 비교할 때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미국이 부정적 입장을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미국의 이 같은 입장은 1991년 남북한이 한반도 비핵화선언에 합의할 당시 상황과도 연관돼 있다. 김희상 한국안보문제연구소 이사장은 최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미국은 한반도 비핵화선언 때문에 전술핵을 철수한 게 아니라 옛 소련과 맺은 핵 군축 합의에 따라 비핵화선언을 서둘러 시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중국·러시아의 턱밑인 한반도에 핵무기를 재배치해 동북아시아의 전략적 균형을 변경하겠다는 ‘결단’ 없이는 전술핵 재배치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미 조야에선 일부 입장 변화 가능성도 감지되고 있다. 존 매케인 미 상원 군사위원장은 지난 10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국방장관이 불과 며칠 전 핵무기 재배치를 요구했는데 이는 심각하게 검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Q 문재인 정부가 수용하지 않는다면.

설사 미국이 입장을 바꾸더라도 한국이 수용하지 않으면 실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문재인 정부 대북정책의 핵심은 지난 7월 신베를린 구상에서 밝힌 대로 ‘대화를 통한 한반도 비핵화’다. 이런 기조하에서 전술핵을 재배치하는 것은 문재인 정부 대북정책의 근간을 스스로 포기하는 셈이 된다.

문 대통령이 CNN 인터뷰를 통해 직접 동북아시아 핵 도미노 현상을 우려하면서 전술핵 재배치 여론 차단에 나선 것도 이런 배경에서라는 분석이다. 이상철 국가안보실 1차장도 지난 12일 기자들과 만나 “남북한이 핵무장을 하면 동북아시아 핵무장이 확산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희옥 성균관대 정외과 교수(성균중국연구소장)는 한발 더 나아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에 이어 전술핵마저 재배치될 경우 그렇잖아도 위기에 빠진 한·중 관계가 회복될 수 없는 수준까지 악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반면 전술핵 재배치가 반드시 한반도 비핵화 명분을 약화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향후 협상 국면에서 북한 비핵화와 전술핵 철수를 맞교환할 수 있을 것이란 주장이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북한이 사실상의 핵무장국이라고 선언했을 때 전술핵을 한반도 비핵화 시 철수하는 조건으로 도입하는 방안은 고려할 만하다”고 지적했다.

Q 대안으로 제시되는 미국 전략자산의 상시 또는 순환 배치란 무엇인가.
정부는 박근혜 정부 때부터 북한 핵 억지 수단 중 하나로 미국에 전략자산의 상시 또는 순환 배치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기로 약속한 ‘확장 억제력’을 더욱 강화하자는 취지다.

북한의 6차 핵실험 직후인 지난 5일 송영무 국방장관은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과의 통화에서 한·미 연합군사훈련과 미 전략자산의 한반도 상시 또는 순환 배치를 강화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국방부는 밝혔다. 여기서 말하는 미국의 전략자산은 항공모함 전단과 핵잠수함, 전략폭격기 등을 뜻한다.

전략자산은 상시 또는 순환 배치될 경우 전술핵 재배치와 비슷한 효과를 볼 수 있다. 이들 전략자산에는 다양한 종류의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전술핵 재배치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도 완화될 수 있다.

미 전략자산의 상시·순환 배치는 가능할까.

배치 비용 문제가 최대 변수다. 한국은 북한의 5차 핵실험 직후인 지난해 10월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도 미 전략자산의 상시·순환 배치를 정식 요구했다. 하지만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국방비 부담을 이유로 난색을 표명했다.

다음달 열릴 올해 SCM을 앞두고 정부는 “이번에는 반드시 관철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의 부담이 커지는 데 대해 오바마 행정부보다 훨씬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어 협의가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달 송 장관이 방미 당시 전술핵 재배치를 요구하는 국내 여론까지 전달한 것도 전략자산의 상시 또는 순환 배치를 미국이 수용하도록 압박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전략자산의 상시·순환 배치 이슈는 이르면 올해 말 시작될 예정인 2019년 이후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 연동돼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출범 초부터 동맹국의 공정한 비용 분담이란 명분을 내세우며 한국 정부에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공공연하게 요구해 왔다. “전략자산을 상시 또는 순환 배치할 테니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증액하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올해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은 약 9507억원이다.

차세현 기자 cha.se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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