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50년대 전술핵 스토리…어떻게 들여왔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미군의 전술핵 재배치를 둘러싼 정치권의 논란이 나라 밖에서도 시선을 끌고 있다.

50년대 남북 군사력 비대칭 심화 # 이승만,美에 동맹기구 창설 요구 # 美,“日 빠진 안보동맹 무의미”반대 # 李,기구 창설 접는 대신 핵배치 요구 # 주둔 비용 줄이려던 미 정부도 호응 #

미국의 워싱턴포스트는 13일(현지시간) 한국의 새 정부가 한반도 비핵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핵무장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북한의 6차 핵실험으로 인해 관련 논의가 뜨거워지고 있다고 전했다. 과거 배치 사례 등을 통해 가능성을 점검해봤다.

①전술핵 들어올 수 있을까=미군의 전술핵은 1950년대 말 배치됐다가 1991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하면서 철수했다. 그렇다면 전술핵을 다시 들어올 수 있을까. 역사적으로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옛 소련이 핵미사일인 SS -20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동독ㆍ폴란드ㆍ체코에 배치하자 미국도 1983년 핵탄두가 탑재된 중거리 탄도미사일 파싱 2(Pershing II)를 서독에 들여놨다. 이 미사일들은 87년 체결된 중거리핵미사일폐기협정(INF)에 따라 냉전이 종식된 1991년 완전 철수ㆍ폐기됐다.

냉전 당시 서독에 배치됐던 미국의 퍼싱2 미사일.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중거리 미사일이다.

냉전 당시 서독에 배치됐던 미국의 퍼싱2 미사일.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중거리 미사일이다.

독일에서 나갔던 전술핵은 미국의 확장억제(핵우산)전략에 따라 다시 통일 독일로 돌아왔다.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인 독일ㆍ이탈리아ㆍ터키ㆍ벨기에ㆍ네덜란드에 180여개로 알려진 전술핵을 배치해 공동 운용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도 전술핵 재배치까지 넘어야 할 산이 한둘이 아니고 길 자체도 먼 길이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②60년 전 전술핵은 어떻게 들여왔나=처음 전술핵이 한국에 배치됐던 건 1950년대 이승만 정부 때다.
당시 미국은 2차세계 대전 이후 옛 소련에 대한 봉쇄정책을 추진하면서 집단안보기구인 유럽과 동남아시아에 각각 나토와 남동아시아조약기구(SEATO)를 출범시켰다. 집단적 봉쇄정책의 사각지대가 동아시아였다. 1954년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이 구멍에서 기회를 찾았다.
휴전 이후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맺었지만 안보 상황은 여전히 불안정의 연속이었다. 특히 옛 소련을 비롯해 동구권 공산국가의 재정 지원을 받는 북한에 비해 경제와 군사 부문에서 한국의 열세는 더욱 심화됐다. 이런 안보 상황에서 이 전 대통령은 미국에 동아시아에도 반공동맹기구 창설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 전 대통령의 구상 속에는 한국과 대만 그리고 SEATO 회원국들이 참여하는 동아시아조약기구(EATO)가 있었다. 일본의 참여는 한국 뿐 아니라 대만ㆍ필리핀이 반대했다. 하지만 재정 부담을 나눠서 지기를 바랬던 미국에게 일본의 참여는 필수 조건이었다. 미국은 군사적ㆍ경제적 잠재력이 있는 일본이 빠진 동맹기구는 허수아비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EATO 창설은 물거품이 됐다.

57년 4월 다시 이승만 정부는 미국의 재정 부담이라는 변수를 감안해 EATO보다 작은 북동아시아조약기구(NEATO) 창설을 제안했다. 이번에도 일본은 배제됐다. 일본도 NEATO 참여로 얻는 기대 이익이 없다며 관심을 주지 않았다. 결국 없던 얘기가 됐다. 그러자 이승만 정부는 미국을 향해 핵무기 배치를 요구했다. 권오중 외교국방연구소 연구실장은 “휴전협정에 구속되는 한국은 국제법상 동맹기구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며 “이승만 정부가 요구했던 동맹기구 창설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핵무기를 반입하기 위한 외교적 카드였다”고 진단했다.

재정 지출 부담 때문에 주한미군을 줄여야 했던 당시 미국의 아이젠하워 정부도 소규모 전력으로 남북간 군사적 균형을 맞출 수 있다는 계산에서 전술핵 배치를 승인했다. 이승만 정부는 57년 6월ㆍ8월 두 차례 핵무기를 배치할 경우 주한미군 감축에 동의한다고 아이젠하워 행정부에 못을 박았다. 50년대 미군의 전술 핵무기 배치는 이렇게 남북의 군사력 불균형 상황에서 외교 레버리지를 확보한 이승만 정부와 재정 부담을 줄이면서도 동북아 세력 균형을 얻을 수 있다는 아이젠하워 행정부의 전략적 고려가 맞아떨어지면서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1952년 12월 방한한 미국 대통령 당선자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경기도 광릉의 수도사단을 시찰하는 모습. 앞줄 오른쪽부터 이승만 대통령 , 아이젠하워 당선자 , 백선엽 육군참모총장.

1952년 12월 방한한 미국 대통령 당선자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경기도 광릉의 수도사단을 시찰하는 모습. 앞줄 오른쪽부터 이승만 대통령 , 아이젠하워 당선자 , 백선엽 육군참모총장.

1952년 12월 아이젠하워 당선자가 전선시찰 중 국기에 대한 의례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아이젠하워 당선자 이승만 대통령.

1952년 12월 아이젠하워 당선자가 전선시찰 중 국기에 대한 의례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아이젠하워 당선자 이승만 대통령.

③지금의 안보 상황은=북한의 핵개발이 완성 단계에 접어든 현재의 안보 상황은 60여년 전과 묘하게 맞물린다. 군사 전문가들은 늦어도 올 연말 또는 내년 초면 한국을 사정거리에 둔 단거리 미사일에 소형화한 핵탄두를 얹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대체로 북한이 미국까지 날아가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완성하기 전까지는 미군의 확장억제력(핵우산)에 대한 신뢰가 유지되는 단계로 전력 비대칭 상황이 아니라고 본다. 50년대와 달리 문재인 정부에선 "전술핵 도입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술핵 재배치를 공론화 하기엔 상황이 무르익지 않았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정부 소식통은 14일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배치를 놓고 일었던 사회적 반향을 고려하면 어디든 전술핵이 배치될 해당 지역의 반발은 가늠하기 어렵다”며 “하지만 재배치 문제는 안보 환경 변화에 연동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하게 주시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정용환 기자 narrativ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