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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물 관리 업무 일원화, 조직 통합에 그쳐서는 안 돼

중앙일보

입력

시민ㆍ환경단체 관계자들이 지난 7월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환경부로의 통합물관리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민ㆍ환경단체 관계자들이 지난 7월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환경부로의 통합물관리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토교통부의 수자원 관리 업무를 환경부로 넘겨주는 이른바 물 관리 업무의 통합을 정부가 추진하고 있으나 단순히 정부조직법을 고치는 수준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토부 수자원 업무 환경부로 통합 방안 #5월 청와대 발표로 시작, 국회 통과는 무산 #환경부 13일부터 전국 순회 토론회 시작 #통합으로 얻는 것 많지만 철저한 준비 필요 #홍수 예방과 수자원 확보에 차질 우려도 #5개 부처 19개 법 23개 법정 계획 수정해야 #"물이용기본법 제정, 유역별 관리체계 마련도"

물 관리 업무가 제대로 통합되려면 법과 제도로 뒷받침해야 하고, 그러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정부가 너무 서두르다가는 일을 그르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하천법 등 5개 부처 소관의 19개 법을 손질하고, 수자원장기종합계획 등 23개의 법정 계획도 다시 짜야 해 부처간 협력이 필요하다.

또 물 관리 기본법을 제정하고, 헌법에도 이를 반영할 필요도 있어 국회의 협력도 절실한 상황이다.

단국대 토목환경공학과 강부식 교수는 “환경부와 국토부는 물론, 행정안전부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등 관련 부처가 머리를 맞대고 충돌이 되거나 중복되는 업무가 없는지 하나하나 꼼꼼히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은경 환경부 장관(앞줄 오른쪽 네번째)이 지난 13일 부산 해운대구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열린 통합물관리 순회토론회에 참석해 관계자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은경 환경부 장관(앞줄 오른쪽 네번째)이 지난 13일 부산 해운대구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열린 통합물관리 순회토론회에 참석해 관계자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야당 반대로 조직 개편 일단 무산
통합 물 관리 작업은 지난 5월 청와대가 국토부의 수자원 관리 기능을 환경부의 수질 관리 기능과 통합하겠다고 밝히면서 시작됐다.
정부·여당은 지난 7월 임시국회 때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이 같은 통합 물 관리를 위한 조직 개편 내용을 담으려 했으나 일부 야당 의원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김수현 청와대 사회문화수석이 지난 5월 22일 오전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로 4대강 정책감사와 통합 물관리 추진 방침울 발표한 후 기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중앙포토]

김수현 청와대 사회문화수석이 지난 5월 22일 오전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로 4대강 정책감사와 통합 물관리 추진 방침울 발표한 후 기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중앙포토]

당시 야당은 국토부의 개발 기능과 환경부의 규제 기능이 한데 합쳐지면 견제와 균형이 무너질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정부·여당이 과거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4대강 사업을 청산하고, 징벌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이에 환경부와 국토부는 지난달 '통합물관리 비전 포럼' 가동에 들어갔고, 지난 13일부터는 전국을 돌며 모두 7차례의 순회토론회도 진행하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통합물관리 비전 포럼을 통해 연말까지 통합 물관리에 필요한 정책 방향을 찾고, 이행 로드맵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장 국회의 협조가 절실한 상황이다.

국회의 협조가 없으면 통합물관리 추진 일정이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는 만큼 1990년대 후반부터 20년 가까이 국회에서 진행돼온 물관리 일원화 논의를 반영하려는 정부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19대 국회에서만 6개의 물 관리 통합 관련 법안이 발의됐고, 20대 국회에서도 7개의 물관리 기본법안이 발의돼 심사가 진행 중이다.
여당과 야당의 입장이 다르고,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과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의원이 낸 법안의 내용이 다르다.
서로 다른 입법안을 정부가 물관리 정책에 반영하는 것이 간단한 일이 아니다.

◇물 효율적 사용하고 예산도 절약
전문가들은 대체로 물 관리 업무가 통합되면 긍정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지방상수도는 환경부가, 광역 상수도 업무는 국토부가 맡다 보니 업무 중복과 과잉 투자가 빚어지고 있다.
2014년 감사원은 전국 상수도 시설의 중복으로 인한 과잉 투자액이 4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했다.
전국 상수도 시설 이용률은 60.9%에 머물고 있는데도, 정작 농어촌 지역 면 단위의 상수도 보급률은 아직도 73.1%에 머물고 있다.
인제대 토목공학과 박재현 교수는 “낙동강에서 보듯이 수질 개선을 위해 환경부가 보·하굿둑 수문을 열라고 하지만 열쇠를 쥐고 있는 국토부에서 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 7월 낙동강 구지 오토캠핑장 부근에서 발생한 짙은 녹조. 통합 물관리에는 수질과 수량을 통합해 수질을 개선하자는 취지도 포함돼 있다. [중앙포토]

지난 7월 낙동강 구지 오토캠핑장 부근에서 발생한 짙은 녹조. 통합 물관리에는 수질과 수량을 통합해 수질을 개선하자는 취지도 포함돼 있다. [중앙포토]

2015년 가을 가뭄이 발생하자 보령댐 물에 의존하는 충남 서부 8개 시·군에서는 132일간 제한급수로 고통을 겪었다.

물 부족을 가뭄 탓만이 아니었다.
수자원 확보 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채 산업단지나 화력발전소 등 지역개발을 계속했고, 반면 기존의 소규모 상수원 취수시설은 폐쇄한 탓도 컸다.

게다가 수질과 수량이 나뉘어 있어 같은 하천사업을 하더라도 기형적이 된다.
환경부가 진행하면 홍수 방지를 위한 제방 공사를 빼고, 국토부가 추진하면 수질 개선 사업은 제외하는 식이다.
물관리가 통합되면 수질과 수량관리는 물론 홍수방지까지 종합적으로 접근할 수 있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간 3~6조 원에 이르는 물 관련 예산도 10~20%는 절감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국토정책과 물 정책 긴밀한 연계가 과제
통합 물관리가 효과를 발휘하려면 국토부 수자원정책국 조직을 환경부로 보내는 데 그쳐서는 곤란하다는 게 대부분 전문가의 지적이다.
우선 국토계획과 물관리 계획을 차질 없이 연계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부대 이주헌 토목공학부 교수는 “국토부의 국토종합계획·도로계획 등에서 하천과 관련된 내용을 빼놓을 수 없다”며 “국토부와 환경부가 관련 계획을 함께 검토하고 협력하는 체계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는 “국토부 공무원이 환경부로 옮겨가면 전혀 안 하지는 않겠지만, 환경부 성격 상 댐 건설 등 수자원 확보나 홍수 예방 대책에 소극적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지적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지금도 대규모 댐은 건설할 곳이 없고, 소형댐도 주민 등의 반대로 건설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또 홍수도 이제는 도시 홍수가 문제이기 때문에 하수도 시설을 맡은 환경부가 못할 것도 없다는 설명이다.

환경부가 직접 개발사업에 뛰어들면서 환경부의 정체성에 혼란이 생길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국토환경연구소 최동진 소장은 “통합됐을 때 조직 규모만 커지고 비효율적이 될 가능성도 있다”며 "통합으로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수자원 수요의 절반이 넘는 농업용수 부분은 이번 통합 물관리 논의에서 제외된 것도 과제로 남았다.
지난여름 농업용수 취수를 이유로 4대강 보의 수문을 제대로 열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수자원 관리업무가 환경부로 넘어가도 녹조 방지 등 수질 개선에 활용하는 게 쉽지 않다는 의미다.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통합물관리 포럼 전체 회의 [중앙포토]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통합물관리 포럼 전체 회의 [중앙포토]

◇주민 참여하는 유역 단위 통합물관리 필요
통합 물관리에 앞서 중앙정부에 집중된 권한을 지방자치단체와 지역주민에게 나눠주는 등 유역중심의 물관리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현재 환경부의 수질관리는 유역단위로 이뤄지고 있지만, 국토부의 하천관리는 행정구역 단위로 돼 있어 이를 일치시킬 필요도 있다.
유역 단위로 수자원 확보 계획을 수립하고, 이용토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물 관리 정책에서 지금까지는 중앙정부가 정책을 결정하고 갈등을 조정했는데, 이제는 수계별로 각 지역이 수평적으로 협력하고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체제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주헌 교수는 “물 통합관리도 결국은 더 나은 물 서비스를 시민들에게 효율적으로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며 “관련 부처를 모두 아우르는 큰 그림을 그려놓고, 장기적인 로드맵에 따라 체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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