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짜릿하고 극단적인 묘사는 없어도 벽돌담 쌓듯 생각 펼치는 지적 재미

중앙일보

입력 2017.09.09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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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문학이 있는 주말

모르는 사람들
이승우 지음
문학동네

한국에서는 문학성을, 프랑스에서는 대중성을 인정받는 소설가 이승우(58)씨의 새 소설집이다. 국내에선 문학상은 아쉬움 없이 받았지만(황순원·대산문학상 등) 판매는 상대적으로 미지근한 편이라면 프랑스에서는 반대라는 얘기다. 최근 한국문학번역상을 수상한 번역가 한유미씨는 “프랑스 독자들이 이승우 작가를 귀염둥이쯤을 뜻하는 ‘슈슈(chouchou)’라고 부르며 좋아한다”고 전했다. 이씨의 과거 소설집 제목에 빗대 표현하면 ‘사람들은 자기 집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다’라고 할 만한 상황이다.

한국 독자들은, 프랑스 독자에 비해, 왜 이승우에 미온적인가. 그의 소설에서 감탄할 만한 표현이나 짜릿한 이야기 전개, 극단적인 세태 재현 같은 걸 기대해서는 안 된다. 2014년부터 올해 봄까지 발표한 8편의 단편을 갈무리한 이번 소설집도 마찬가지다. 이승우 소설은 완력으로 독자들을 몰아붙이거나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마치 내 소설은 일종의 논리학 연습이야, 라고 말 걸듯 인물 내면에서 벌어지는 사고 전개 과정을 벽돌담 쌓듯 차근차근 펼쳐 보여준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일이 쾌감을 선사한다. 차분한 즐거움, 지적인(혹은 관념적인) 재미다.

첫머리에 실린 표제작 ‘모르는 사람’의 첫 대목부터가 그렇다. ‘아버지가 왜 떠났는지 오랫동안 궁금했다’라는 짧은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 화자의 생각은 곧 꼬리에 꼬리를 문다. 요약하면 이렇다. 그 궁금증 속에는 아버지가 무엇으로부터 떠나려 했는지에 대한 질문이 숨어 있다→떠나려 했던 대상을 알게 되면 ‘왜’도 짐작할 수 있다.→떠난다는 것은 붙어 있는 데서 자기를 떼어내는 것을 뜻한다→아버지는 어디서 무엇으로부터 자기를 떼어내려 했나.

소설의 일부를 요약한다고 해놓고 문장 대부분을 거의 옮기는 능력부족을 드러내고 말았지만, 어쨌든 이런 식의 이야기 전개는 소설의 결말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한편 흔히 ‘자아 찾기의 여정’ 쯤으로 요약되는 근대소설의 일반법칙 같은 걸 떠올리게 한다.

‘모르는 사람’은 아버지와 신의 구원이라는 이승우 소설의 오랜 주제가 나란히 들어 있는 작품. 우화 같은 느낌의 ‘신의 말을 듣다’가 특히 재미있게 읽힌다. 공론장에서 작동하는 정의나 명분이 개인의 윤리·양심과 어떻게 관계 맺는지를 파고 든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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