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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D 족자에 붓글씨처럼, 전통·현대미 살려야 문화올림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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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안무가 차진엽(오른쪽)과 호우잉.[임현동 기자]

안무가 차진엽(오른쪽)과 호우잉.[임현동 기자]

한국과 중국의 대표적인 현대무용가가 29일 서울 대학로에서 만났다. 한국의 차진엽(39)과 중국의 호우잉(46). 각각 무용단 ‘콜렉티브 에이’와 ‘호우잉 댄스씨어터’를 이끌고 있다. 두 사람은 올림픽 안무가란 공통점도 있다. 호우잉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막식 안무가로 활동했고, 차진엽은 평창올림픽 개·폐막식 안무감독이다.

평창올림픽 안무 맡은 차진엽 #내년 2월 열릴 개·폐막식 앞두고 #무대·영상 등 담당자와 수정 거듭 #베이징올림픽 안무한 호우잉 #작품 만들 땐 0에서 출발해야 #살아 숨쉬듯 신선하고 실감나

29일 개막한 창무국제공연예술제에 70분짜리 무용 작품 ‘더 모먼트’를 들고 온 호우잉은 10년 전 올림픽 개막식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았다. 반면 차진엽은 올림픽 조직위원회와의 비밀 유지 약속 때문인지 말을 아꼈다. 호우잉은 올림픽 개막식 공연에 대해 “민족 문화의 정수를 뽑아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으로 구현해야 한다. 이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최고 수준의 미”라고 말했다. 이에 차진엽은 “담고 있는 메시지도 중요하지만 이를 시청각적으로 어떻게 표현해 현재적인 한국의 미로 나타낼지가 더 큰 과제”라고 말했다.

호우잉은 2007년 미국 뉴욕에서 무용단 ‘쉔 웨이 댄스 아츠’ 소속으로 활동하던 중 올림픽 개막식 안무가로 발탁됐다. “장이머우 베이징올림픽 개·폐막식 총감독이 전 세계에 흩어져있는 중국인 예술가 중에 적임자를 직접 골라 뽑아 일을 맡겼다”고 했다. 호우잉은 같은 무용단 소속 두 명의 안무가와 함께 개막식 앞부분 8분짜리 프로그램 ‘화권(畵卷·가로 길이가 긴 족자)’의 안무를 했다. 주경기장 바닥에 대형 LED판이 두루마리 족자처럼 펴지고, 그 위로 검은 옷의 무용수들이 올라가 마치 종이 위에 붓글씨를 쓰듯 춤을 춘 작품이다.

호우잉은 “당시 개·폐막식 준비 과정에서 중국 정부는 국가의 힘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해줬다. 개막 6개월 전부터 출연자 전원이 자신의 공연이나 직장일 등 개인적인 일정을 전면 중단하고 식 준비에만 매달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다시 하고 싶지는 않은 일”이라고 털어놨다. “내가 추구하는 예술성을 발휘하기 힘들기 때문”인데, “그래도 모든 이력서의 첫 줄에 ‘올림픽 안무가’라고 쓰면서 홍보 효과는 컸다”고 말했다.

차진엽은 함께 안무감독을 맡고 있는 한국무용가 김혜림 춤미르댄스시어터 대표, 뮤지컬 안무가 강옥순씨와 함께 두 시간 가량의 개·폐막식 프로그램을 모두 책임진다. “무대·영상·음악·의상 등 각 부문 담당자들과 모여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평창올림픽 개·폐막식 준비는 송승환 총감독, 양정웅 총연출, 장유정 부감독 체제 아래 음악 이병우·양방언·홍동기·원일, 의상 금귀숙·송지인, 미술 임충일 등 각 부문 전문가들이 감독을 맡아 진행 중이다.

한편 호우잉은 30일과 9월 1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더 모먼트’에 대해 “아무런 아이디어도, 계획도 없이 만들기 시작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또 “내게 창작과 안무란 내부의 열정을 표현하는 것”이라며 “과거의 경험을 좇기보다는 현재의 감정에 충실한 것이 창작 과정에서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차진엽이 “새 작품을 만들 때마다 매번 처음 안무를 시작할 때의 기분”이라고 하자 호우잉은 “뭐든지 ‘0’에서 출발하는 게 중요하다. 그게 더 신선하고 실감나고 생동감 넘친다. 나이가 들수록 경험이 늘어나는데, 긴 경험은 지루할 뿐이다”라고 반색했다.

호우잉의 한국 공연은 네 번째다. “한국 관객은 개방적이고 현대적”이라는 그는 한국 안무가에 대해서도 “매우 창의적이며 강한 캐릭터를 갖고 있다. 전통 문화의 흔적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이를 현대무용 안에 잘 녹여낸다”며 덕담을 건넸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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