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케인보다 무서운 이민법...한인 사회도 타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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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에 의해 범람한 27일(현지시간) 미 텍사스 휴스턴 시내에서 남성들이 아이들을 대피시키고 있다.[AFP=연합뉴스]

'하비'에 의해 범람한 27일(현지시간) 미 텍사스 휴스턴 시내에서 남성들이 아이들을 대피시키고 있다.[AFP=연합뉴스]

 미국을 강타한 허리케인 하비의 기세가 무섭다. 하지만 서류 미비 이민자(불법 체류자)들에겐 하비보다 이민법이 더 무섭다. 워싱턴포스트(WP)는 휴스턴 등 하비가 강타한 텍사스 주의 주요 도시에 사는 수십만 명의 불법 체류자가 이중고에 처해 있다고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반 이민 정책 기조가 이 지역을 강타하고 있어서다.

휴스턴 인구 8.7%가 불법 이민자 #적발될까 대피소 찾아가기 꺼려 #"트럼프와 정부가 주도하는 재난"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와 연방 정부는 서류 미비 이민자들도 폭풍과 홍수로부터 벗어나 피난처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이민세관집행국과 관세국경보호국은 공동 성명을 통해 피난처나 푸드뱅크 등에서 불법 체류자를 적발하지 않을 것이며, 폭풍과 그 여파가 남아있는 동안 "구명 및 생명 유지 활동"을 우선으로 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이민자 관련 활동가들은 휴스턴의 불법 체류자들이 대피소에 가길 두려워하고 있다고 WP에 말했다. 텍사스 주는 '피난처 도시(sanctuary city, 불법 이민자를 보호하는 도시)'를 공식적으로 불법화하는 공격적인 법안을 며칠 뒤인 9월 1일 시행할 예정이다. 새 법에 따르면 지방 경찰과 공무원이 이민자 추방에 동원될 수 있으며, 이들이 업무에 협조하지 않으면 일자리를 잃거나 감옥에 갈 수 있다. 미국시민자유연맹 등 관련 시민단체들은 위헌적인 법률이라면서 반발하고 있다.

한술 더 떠 텍사스 주는 오바마 전 행정부에서 시행한 미등록 이주 아동 추방유예(DACA) 프로그램을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부모를 따라 불법 체류자가 된 아이들을 내쫓지 않고 미국에서 살 수 있도록 2년마다 자격을 갱신해주는 제도다. 공화당이 집권한 10개 주가 연합해 9월 5일까지 이 조치를 폐지하지 않으면 연방 정부에 소송을 걸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유예 조치의 혜택을 받고 있는 미국의 서류 미비 이주 아동은 거의 80만 명에 달한다.

미국의 온라인매체 MIC는 DACA 폐지로 라틴아메리카는 물론 아시아계 미국인 공동체가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80만 명 중 아시아계 미국인은 13만 명에 달한다. 특히 1980년대와 90년대에 미국으로 대거 옮겨간 한인들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멕시코에서 2살 때 미국으로 건너 온 오스카 헤르난데스(29)는 "모든 사람들이 허리케인을 걱정하지만, 우리는 트럼프와 정부가 주도하는 또 다른 재난 앞에 놓였다"고 WP에 말했다. 에드와도 캐널레스 텍사스 인권 센터장은 텍사스 지역사회가 태풍으로부터 회복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청소부·요리사·목수·정원사 등 저임금 노동인력을 대거 잃을 위기에 놓여있다고 지적했다.

퓨 리서치 센터가 올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휴스턴은 미국에서 3번째로 서류 미비 이민자가 많이 살고 있는 도시다. 2014년 기준 57만5000명으로, 휴스턴 전체 인구의 8.7%를 차지했다. 이는 전국 평균치의 두 배 이상이다.

이경희 기자 dung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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