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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닭을 초원서 기르는 건 불가능 … 50배 땅 필요, 계란 1개 700원 넘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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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문홍길 축산과학원 가금연구소장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의 연구소 계사에서 산란계 암탉을 살피고 있는 문홍길 소장. [사진 가금연구소]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의 연구소 계사에서 산란계 암탉을 살피고 있는 문홍길 소장. [사진 가금연구소]

“유럽에서 대안으로 떠오른 ‘개방형 케이지(Aviary system)’를 도입하면 동물복지와 안정적 생산량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닭장 밖서 놀다가 들어가는 개방형 #동물복지·생산량 두 토끼 잡을 것 #살충제 쓴 농장에 책임 전가 안 돼 #판매가의 절반 차지 유통구조 문제

문홍길(53) 국립축산과학원 가금연구소장이 내놓은 ‘살충제 계란’ 파동의 대안이다. 그러면서 문 소장은 “복지 계란을 생산해도 소비자가 사먹지 않으면 생산을 못한다. ‘살충제 계란’은 어느 한 쪽만 건드려서는 해결될 문제가 아니고 생산자·유통업자·소비자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에 있는 농촌진흥청 산하 국립축산과학원 가금연구소는 정부가 운영하는 유일한 가금류 연구기관이다. 닭·오리 등 가금류 종자를 개발하고 가금 생산 시스템을 연구하는 곳이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동물자원학(농학박사)을 전공한 문 소장은 1990년 4월 농진청 축산시험장 축산연구사로 공직에 입문했다. 국제기술협력과장과 국립축산과학원 영양생리팀장, 미국 농업연구원 상주연구원 등을 거쳐 2014년 3월부터 소장직을 맡고 있다.

많은 소비자에게 충격을 준 ‘살충제 계란’ 사태에 대한 전문가의 시각과 대안을 듣기 위해 문 소장을 인터뷰했다.

문 소장은 “기생충인 닭진드기는 숙주(닭)가 있는 한 완전히 없앨 수 없다”며 “다만 진드기 개체 수를 줄이자는 건데 정부(농림축산식품부)가 내놓은 대책은 동물복지형 축산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겠다는 접근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일반인은 그림 같은 푸른 초원에 닭을 풀어 놓은 방사형 복지를 생각하겠지만 이건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문 소장은 A4 용지 한 장 면적에 닭 한 마리가 올라가 있는 10단짜리 케이지(cage·철제 우리)를 예로 들었다. 그는 “완전 방사형으로 간다면 A4 10장을 옆으로 깔고 다시 A4 5장 정도의 바닥에 닭 한 마리를 키운다고 가정하면 50배의 땅이 필요하다”며 “이러면 계란 1개 가격도 700원이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가 소개한 대안이 유럽의 ‘개방형 케이지’다. 그는 “케이지에 각각 닭이 들어 있는데 현관문이 없다고 보면 된다. 아파트 동과 동 사이에 공터가 있는 것처럼 케이지와 케이지 사이에 복도가 있고 닭들이 케이지 밖 바닥으로 내려와 놀다가 다시 케이지로 들어가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개방형 케이지에서 닭 한 마리가 누릴 수 있는 공간은 일반 케이지(0.05㎡)의 2배 수준인 0.11㎡ 정도라고 한다.

문 소장은 “유럽에서는 닭의 사육 환경을 ‘1번은 완전 방사, 2번은 개방형 케이지’ 식으로 계란에 표시한다”며 “한국도 결국 일반 케이지에서 점차 동물복지 쪽으로 가되 소비자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는 쪽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살충제 계란’ 사태에 대해 “정부가 허가한 살충제라도 용법·용량에 맞춰 써야 한다”며 “농가가 불법인 줄 알고도 살충제를 썼다면 제재가 필요하고, 모르고 썼다면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생산자가 살충제를 쓴 것은 나쁘지만 그들만의 책임으로 돌려서는 근본적인 답을 찾기 어렵다. 물건을 싸게 많이 생산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현실, 중간 유통비가 판매 가격의 절반을 차지하는 복잡한 유통 구조도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복지’를 얘기하지만 현실은 말처럼 쉽지 않다”고 말했다. ‘복지농장이라도 우리 동네에 양계장이 들어오면 과연 반길까’ ‘계란 하나가 700원, 1000원이 되면 우리는 기꺼이 사먹을까’ 등 많은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는 의미다.

평창=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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