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정부 정책에도 ‘지렛대 원리’가 필요하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9면

고대진 IBK경제연구소장

고대진 IBK경제연구소장

“나에게 충분히 긴 지렛대와 튼튼한 받침돌만 있다면 나는 지구도 들어올릴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2200년 전 지렛대의 원리를 발견한 그리스의 수학자 아르키메데스가 남긴 말이다. 원리는 간단하다. 지렛대의 길이가 길면 같은 힘으로도 더 무거운 물체를 들어 올릴 수 있다. 이러한 지렛대 효과(leverage effect)는 경제 주체인 개인·기업·정부에도 유용하다. 개인의 경우 일부 자기자금에 차입금을 더해 주택을 매입하고 임대 수익을 거둘 수 있다. 이때 임대 수익률이 은행 이자율보다 높다면 차입금을 늘릴수록 투자수익률도 높아진다. 기업은 부채를 지렛대 삼아 설비투자·생산성·매출을 늘림으로써 자기자본 이익률을 높일 수 있다. 이처럼 개인과 기업은 적은 자본으로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지렛대 효과를 적극 활용한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최소의 예산으로 최대의 정책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비법이 지렛대 효과다. 2009년 10월에 도입한 ‘온랜딩’ 제도는 시장참여자를 지렛대로 활용한 대표적인 사례다. 정부가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정책자금을 지원할 때 은행과 같은 중개금융기관을 지렛대로 활용하면 이들 기관이 보유한 조직과 심사 역량을 활용할 수 있고, 지속적인 기업성장을 견인할 수 있으며, 사후관리를 할 때에도 이들의 경영자원을 활용할 수 있다. 즉 정부의 일에 시장참여자를 끌어들임으로써 정부는 재정 부담을 줄이면서 지원 효과를 배가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이 지렛대 효과를 주목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직면한 소득 양극화, 저성장, 저출산·고령화, 높은 청년 실업률 등은 심각한 사회 불안 요인이다. 정부가 최근 11조원 규모의 일자리 추가경정 예산을 편성한 것도 일자리 창출을 통해 이러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고육지책이다. 문제는 제한된 세입을 고려한다면 돈으로 일자리를 사는 데 한계가 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제한된 예산을 가지고 지렛대(정책)를 어떻게 늘릴지 고민해야 한다. 이는 받침돌(시장)을 어디에 놓느냐와 상통한다. 예컨대 일자리 창출 효과가 높은 기업에 대한 세제 지원, 중소기업 구인난과 구직난의 미스매치 해소를 위한 교통·편의시설 등 인프라 구축, 금융의 사회적 책임 강화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다만 세제·인프라·금융 등이 과도한 복지로 변했을 경우 차선(次善)이 없는 부작용에 유의해야 한다. 자칫 기업가 정신을 해치고 고용의 유연성을 저해하고, 도덕적 해이가 만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경제 역동성을 저해하는 질 나쁜 지렛대(규제)는 끊임없이 찾아내어 이를 과감히 제거해야 한다.

지금은 국가 안팎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이다. 정부가 추구하는 사람 중심 지속가능 경제의 빗장을 열 수 있는 아르키메데스의 강력한 지렛대가 곳곳에서 출현하기를 기대해 본다.

고대진 IBK경제연구소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