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억울한 옥살이'에 야권 "정권 잡았다고 판결도 뒤집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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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전 총리에 대해서 유죄선고를 한 13명의 대법관은 속된말로 ‘제정신이 아니다’, ‘또라이다’라는 것을 주장하는 거예요. 추미애 대표하고…”  (권성동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말씀이 좀 심하지 않아요? 또라이가 뭡니까?”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
“그것 밖에 더 됩니까?” (권 위원장)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권성동 위원장이 23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김소영 법원행정처장 등에게 한명숙 전 총리의 재판이 잘못됐다는 일부 목소리가 맞느냐고 질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권성동 위원장이 23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김소영 법원행정처장 등에게 한명숙 전 총리의 재판이 잘못됐다는 일부 목소리가 맞느냐고 질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2년간 복역한 한 전 총리에 대해 여권이 '억울한 옥살이'라고 주장하자 야권이 일제히 '법치주의 파괴'라고 반발하며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발단은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2일 출소를 하루 앞둔 한 전 총리에 대해 “기소도 잘못됐고 재판도 잘못됐다. 기소독점주의의 폐단으로 사법 부정의 피해를 입었다”고 발언하면서다. 23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교도소 앞은 출소하는 한 전 총리를 맞이하기 위해 우원식 원내대표를 비롯해 문희상, 홍영표, 전해철, 정성호 의원 등 민주당 소속 전ㆍ현직 의원 20여명이 출동했다. 이 자리에서 우 원내대표는 “한 전 총리가 억울한 옥살이라고 이야기했고, 무고함이 밝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오른쪽)가 23일 새벽 경기도 의정부시 고산동 의정부교도소에서 만기 출소하며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으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한명숙 전 국무총리(오른쪽)가 23일 새벽 경기도 의정부시 고산동 의정부교도소에서 만기 출소하며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으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따라 이날 지난해 회계결산을 위해 열린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는 여권의 태도를 성토하는 자리가 됐다.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은 현안질의에서 한 전 총리의 대법원 판결에 배석했던 김소영 법원행정처장(대법관)에게 “(당시 판결을) 부인하는 듯한 여러 정치권의 발언들이 나온다”며 견해를 물었고, 이에 김 처장은 “근거 없는 비난은 사법부의 신뢰에 좀 영향을 많이 미치기 때문에 바람직 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재판은 법 절차에 따라 또 객관적인 증거와 당사자의 충분한 주장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며 “재판결과에 대한 비판이 가능하겠지만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논의해 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김소영 법원행정처장이 이 23일 오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명숙 전 총리 만기출소를 계기로 여당을 중심으로 사법부 판결을 비난하는 듯한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김소영 법원행정처장이 이 23일 오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명숙 전 총리 만기출소를 계기로 여당을 중심으로 사법부 판결을 비난하는 듯한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추미애 대표의 발언에 대해 정확하게 신문보도를 보지 못했다”며 “이에 대해서는 자세히 입장을 말씀드릴 그런 상황이 아님을 양해해달라”며 답변을 회피했다. 하지만 권 위원장이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우리 사회가 존중해야 합니까? 무시해야 합니까?”라고 재차 질문하자 “존중해야 한다”고 답했다.
김진태 한국당 의원은 한 전 총리 추징금 징수 문제를 추궁했다. 김 의원은 “한 전 총리의 추징금 8억 8000만원 중 1억5300만원만 집행이 가능한 상황“이라는 법원 측 답변에 “보통 일반인들이 이랬으면 어떻게 됐겠냐.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23일 오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으로부터 한명숙 전 총리 추징금 징수 여부에 대한 질문에 답한 뒤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 [연합뉴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23일 오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으로부터 한명숙 전 총리 추징금 징수 여부에 대한 질문에 답한 뒤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 [연합뉴스]

야 3당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헌법과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들려 한다”며 한목소리로 여권을 맹비난했다.
김태흠 한국당 최고위원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오늘 새벽에 뇌물수수로 복역하다 출소한 한명숙 전 총리를 맞으러 민주당 지도부가 우르르 몰려갔다. 마치 영화에서 본 범죄조직 우두머리가 출소할 때 그 수하가 떼를 지어 가서 맞이하는 장면이 연상된 건 저 뿐만이 아닐 것”이라고 썼다. 이어 “판사까지 지낸 집권당의 대표가 사법부 판결까지 부정하며 법질서를 정면으로 무시하고 자기편이라고 무조건 옹호하는 이분법적 사고에 빠져 있다니 아연실색할 뿐이다”고 비난했다.
이재만 한국당 최고위원도 “정권을 잡았다고 사법부 판결 자체를 뒤엎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인가”라고 성토했다.

바른정당 주호영 원내대표가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국회의원·원외위원장 연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바른정당 주호영 원내대표가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국회의원·원외위원장 연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는 국회의원-원외당협위원장 연석회의에서 “(여당 지도부의 발언은) 한 전 총리는 잘못이 없는데 사법부의 잘못된 판단으로 유죄가 됐다는 것으로 읽혀진다”며 “여당 지도부 언행은 도저히 동의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직 총리를 역임한 사람이 죄가 없는데 대법원이 유죄 판결을 내린 것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며 “정말 재판이 잘못됐으면 여당 지도부는 국정조사를 제안하라”고 촉구했다.

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 한 목소리로 비판 #김소영 법원행정처장 "근거 없는 비난은 바람직하지 않다"

검사 출신인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은 “(한 전 총리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재판을 받고, 범죄사실이 드러나 수감생활을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한 전 총리는 5년 8개월 동안,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다. 긴 시간동안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진행했다는 것은 법원이 한 전 총리의 입장을 충분히 듣고 심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도 “사법부 판결을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시민사회의 덕목”이라며 “과거 정부의 사법부 판결까지 부정하는것은 자기들만 옳다는 사고”라고 꼬집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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