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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죽음 헛되지 않아야”, 자주포 사고로 아들 잃은 아버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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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K-9 포사격 훈련 간 불의의 사고로 순직한 故이태균 상사(26)와 故정수연 상병(22)의 합동 영결식이 엄수된 21일 오전 성남시 국군 수도병원에서 동료인 석현규 중사(27)가 추도사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사진 공동취재단]

K-9 포사격 훈련 간 불의의 사고로 순직한 故이태균 상사(26)와 故정수연 상병(22)의 합동 영결식이 엄수된 21일 오전 성남시 국군 수도병원에서 동료인 석현규 중사(27)가 추도사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사진 공동취재단]

“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불행한 사고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았으면 해요. 누구나 군 복무 잘하고 건강히 전역했으면. 그게 내 소망이고 우리 수연이도 하늘에서 그걸….”

지난 18일 강원도 철원군에서 K-9 자주포 사격훈련 중 불의의 사고로 순직한 고(故) 정수연 상병(22)의 아버지 정모(51)씨는 말을 잇지 못하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고(故) 이태균 상사와 정 상병의 영결식 다음 날인 22일 오후 서울 금천구 봉제공장 근처에서 정씨를 만났다. “봉제 공장에 밀린 급한 작업도 있고, 납기에 맞춰야 할 물건들도 꽤 있어 일하러 나왔어요. 할 일은 해야죠.” 아들을 떠나보낸 다음 날부터 정씨는 밀린 일을 하고 있었다. 정씨가 자신의 얼굴을 알리는 걸 원하지 않아 사진·영상 촬영은 하지 않았다.

그는 사고 직후 찾아온 김용우 육군참모총장에게 휴대폰 속 아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꽃다운 아들을 군에 보냈는데 왜 이런 모습으로 돌려주나”면서도 “내 아들 죽음 헛되지 않게 해달라”고 말해 주변을 울렸다.

봉제공장을 운영하는 정씨 부부는 소아마비로 왼쪽 다리가 불편한 지체장애인이다. 정씨의 엄지손톱은 까맣게 닳아있었고 오른손 손가락 관절 아래는 화상 자국이 선명했다. 며칠 전 작업을 하다 화상을 입었다고 했다. “'부모가 몸이 불편해 애가 저렇다'는 소리 안 듣게 하려고 열심히 일하고 엄하게 키웠어요. 수연이는 조용한 성격이면서도 엄마 생각을 끔찍하게 했죠. 이렇게 일찍 떠날 줄 알았으면 덜 혼낼걸. 너무 많이 혼내기만 한 것 같아.”

전문대 기계설비학과에 진학한 정 상병은 졸업을 한 학기 남긴 지난해 12월 12일 입대했다. 아버지는 아들이 생일(12월 23일)을 논산훈련소에서 보내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봉제공장일로 정 상병의 입대 모습을 보지 못한 정씨는 군복입은 아들을 처음 본 순간을 또렷하게 기억했다. “논산훈련소 교육 마치고 면회를 가서 봤어요. 아주 늠름해졌더라고. 자대배치도 받았고 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더라고. 엄마 아빠 건강이나 잘 챙기라고.”

정 상병은 아르바이트를 하면 어머니께 70만~80만원 용돈을 쥐어주곤 했다. 군대에서도 1주일에 한 번은 꼭 전화해 안부를 물었다. “일이등병때는 후임병이라 힘들텐데 하소연 한번 안하더라고. 훈련 마친 뒤 포상휴가를 받아 7월 28일에 휴가를 나왔어요. 그때 '전역하면 내 공장일을 돕겠다'고 해서 기특했죠. 8월 4일 복귀했는데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죠.”

사고 당일, 정씨는 오후 4시쯤 봉제공장에서 전화로 사고 소식을 들었다. “조금 다쳤겠지 싶었는데 헬기로 이송중이라고 해서 딸, 아내랑 국군병원에 갔어요. 이미 중태였고, 다음 날 새벽에 그렇게 됐죠.” 초점을 잃은 정씨의 시선이 허공을 향했다.

21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서 포사격 훈련중 사고로 순직한 이태균 상사와 정수연 상병의 영결식이 거행된 가운데 동료장병들이 분향 묵념한 뒤 유가족에게 경례하고있다. 조문규 기자.

21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서 포사격 훈련중 사고로 순직한 이태균 상사와 정수연 상병의 영결식이 거행된 가운데 동료장병들이 분향 묵념한 뒤 유가족에게 경례하고있다. 조문규 기자.

“처음엔 다 죽여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그런데 아들 외에도 순직자가 있고, 또 다들 많이 다쳤더라고. 아들의 동료와 고참들이 슬퍼하는 모습보니…. 눈물로 키운 내 자식이지만, 다른 부모, 자식들도 안타깝고 그렇습니다.”

담배 연기와 함께 한숨을 길게 내뱉은 정씨는 아들이 제일 좋아하던 삼겹살 얘기를 꺼냈다. “수연이가 고기를 그렇게 좋아해요. 입대 전에도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하면서 잘 다녀오라고 했지. 이럴 줄 알았으면 고기 좀 더 많이 사줄 걸, 더 잘해줄 걸…. 못해준 것들이 자꾸 생각나네. 아들 방만 봐도 너무 보고 싶고. 다음 생엔 넉넉한 집에서 태어나 하고 싶은 거 다하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정씨는 군 당국의 사고 조사가 제대로 이뤄질 걸 믿고 기다린다고 했다. “제대로 밝혀준다고 했으니 믿고 기다려야죠. 다신 이런 일이 없어야죠. 수연이와 같이 복무하던 동료들 머릿속에 사고나 안좋은 일 오래 남을텐데. 너무 미안해하지 말고 건강하게 전역했으면 좋겠어요. 국가도 누워있는 동료들을 최대한 지원하고 도왔으면 해요.”

아들을 잃은 슬픔속에서도 그는 아들의 동료들을 걱정했다. 인터뷰 도중 정씨는 거래처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납기를 맞추기 위해 들어가서 얼른 일을 해야 한다며 담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육군은 지난 21일, 이번 K-9 자주포 사고로 숨진 이태균 상사와 정수연 상병의 합동 영결식을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서 군단장장(葬)으로 거행했다. 육군은 이들을 순직 처리하고 각 1계급 진급을 추서했다. 영결식을 마친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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