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인사이트] 흑자국·적자국 불균형 심화 … 유로존 위기 불씨 여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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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EU 경제 위협하는 역내 불균형

‘실업률 23%, 15~24세 실업률은 44%, 국민의 20%가 난방이나 전화 없이 생활.’

그리스 실업률 23% 허덕이는데 #독일, 성장 촉진 대신 긴축만 요구 #IMF는 “일단 살려 놓고 살 빼야” #자국에 유리한 협약 강요하는 독일 #역내 불균형 조정할 대책 내놔야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그리스의 2016년 말 모습이다. 서양 문명의 원류임을 자부하는 그리스는 2010년 5월 구제금융을 받았다. 지난달 25일 그리스 정부는 5년 만기 30억 유로의 국채를 4.625% 금리로 판매하는 데 성공했다. 3년 만에 첫 국채 발행으로 내년 중반에 3차 구제금융에서 졸업할 수 있으리라는 일말의 희망을 심어 주었다.

하지만 그리스 경제를 전망할 때에는 아직 비관론이 우세하다. 총부채는 그리스 국내총생산(GDP, 1810억 유로)의 1.76배인 3200억 유로다.

그리스 경제개혁의 방향을 두고 IMF와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간의 시각 차이가 크다. IMF는 2010년과 2012년, 2회에 걸쳐 그리스에 구제금융을 제공했다.

2015년 7월 합의된 3차 구제금융에 IMF는 참여는 했지만 일부 자금 지원을 미뤄왔다. IMF는 부채의 함정에 빠진 그리스를 위해서는 부채의 일부 탕감이 선행돼야 하고, 기초 재정수지 흑자(primary surplus:이자 지급을 제외한 재정수지) 규모도 대폭 줄여야 구제금융에 참여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반면에 EU의 최대 경제 대국으로 유로존 경제위기 극복을 사실상 주관해온 독일의 입장은 강경하다. 그리스가 게으른 베짱이처럼 분에 넘치는 생활을 하여 경제위기를 맞았기 때문에 고강도 긴축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

그리스 경제는 2011년 마이너스 9%. 이듬해 마이너스 7%가 넘을 정도로 경제 침체 폭이 컸다. 지난해 겨우 0.4% 성장을 했는데 독일이 주도하는 유로존 채권국은 올해부터 기초재정수지 흑자를 GDP의 3.5%로 유지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IMF는 GDP의 179%인 그리스의 공공부채를 일부 탕감해주고 기초재정수지 흑자도 1.5%로 낮춰야 한다고 요구한다.

경제가 좋지 않을 때에는 정부가 돈을 풀어 실업자 구제 등에 앞장서야 하는데 기초재정수지 흑자 규모를 유로존 요구대로 따르면 긴축 일변도 정책을 지속하는 것이다. 아무리 그리스가 비만해져 쓰러져 중환자실에 실려 왔다 해도 먼저 살려 놓고 살을 빼야 하는데 살부터 빼지 않으며 한 푼도 줄 수 없다는 게 유로존의 입장이다.

독일이 이처럼 성장 촉진책을 동반한 긴축이 아니라 긴축만을 요구하는 것은 스스로를 부지런한 개미로 보는 뿌리 깊은 우월감과 역사적 요인 때문이다. 1990년 10월 3일 급속한 흡수통일로 통일 후유증을 앓았던 독일은 2003년 ‘어젠다 2010’(복지 축소 및 노동 유연성 확보가 골자)으로 경제 회생에 성공했다.

현재 독일 경제는 승승장구하고 있다. 독일은 지난해 2890억 달러의 경상수지 흑자(GDP의 8.3%)를 기록해 1964억 달러 흑자(GDP의 1.7%)에 그친 중국을 앞질렀다. 반대로 미국은 구조적인 경상수지 적자국이다. 지난해 4517억 달러의 경상수지 적자를 보였다.

미국·중국·일본에 이어 세계 4위, EU 28개 회원국 가운데 최대의 경제대국이 막대한 흑자를 기록하는 것은 독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로존 내 구조적인 경상수지 흑자국인 독일과 네덜란드, 반면에 그리스 같은 구조적인 적자국 간의 불균형은 해소돼야 한다. 유로존 불균형은 유럽뿐만 아니라 글로벌 차원에서도 미국과 같은 적자국에 보호무역 정책을 실시할 유인을 제공해주고 또 다른 경제위기를 잉태할 수 있다. 그럼에도 독일에게 내수를 진작하라고 요구하는 것 이외에 별다른 뾰족한 수가 없다.

2010년 11월 11일부터 이틀간 서울에서 개최된 제5차 세계 주요 20개국(G20)정상회의는 공동 성명서에서 ‘굳건하고 지속가능하며 균형잡힌 성장(strong, sustainable and balanced growth)’을 강조했다. 이 성명서는 구조적인 흑자국에 내수 진작과 사회복지 지출 확대를, 적자국에는 수출 촉진 등을 요청했다. 당시 주요 타깃은 중국이었고 그 다음이 독일이었다.

G20은 국제경제협력을 위한 최상위 포럼이지만 회원국들에 법적 구속력이 없다.

EU에서도 독일의 지나친 구조적인 경상수지 흑자는 계속 문제가 됐고 대책을 마련했지만 여전히 강제할 방법이 부족하다. 유로존 경제위기의 와중에 독일이 주도하여 신재정협약을 체결했다. 2013년 1월부터 발효된 이 협약에 따르면 참가국 예산은 균형을 이루거나 흑자이어야 한다. 1997년부터 발효된 안정성장조약(Stability and Growth Pact: SGP)은 회원국 정부 예산 적자가 GDP의 3%를 넘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 SGP를 더 강화하여 균형예산을 위반할 때 자동교정조항을 참가국 법에 명시하도록 규정했다. 2010년 국내법에 위 두 개 조항을 반영한 독일이 이를 EU차원에서 다른 회원국에게도 밀어붙여 수용하게 했다. 반면에 프랑스나 스페인 등은 경상수지의 불균형을 조정할 메커니즘을 요구했다.

결국 거시적 불균형절차(Macroeconomic Imbalance Procedure)로 신재정협약에 명시되었는데 EU 집행위원회가 회원국 경제를 연례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위반하면 시정을 권고한다. 2017년 집행위원회의 불균형보고서에 따르면 독일과 네덜란드는 경제적 불균형(구조적 흑자국),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과도한 경제적 불균형(구조적 적자국)에 처해 있다.

결국 신재정협약은 경제대국 독일의 정책 선호도가 대부분 반영되어 균형예산과 자동교정조항을 넣었지만 구조적인 흑자국 독일에게 교정을 강제할 방법은 역시 매우 미약하다. 회원국이 주권을 집행위원회와 같은 초국가기구로 정책권한을 이양하는 통합을 60년 넘게 해온 EU지만 경제대국 독일은 자국에 유리한 규칙을 통합 과정에 적극 반영해 왔다.

안병억 대구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안쌤의유로톡 제작운영자

안병억 대구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안쌤의유로톡 제작운영자

다음달 24일 독일 총선에서도 넘쳐나는 흑자는 작은 이슈일 뿐이다. 집권 기민당은 공약에서 감세에 중점을 두었고 대연정에 참여 중인 사회민주당은 흑자를 대규모 인프라 투자에 쓰겠다고 공약했다. 유로존 전체가 독일처럼 개미가 될 수 없는데 독일은 회원국들에게 이를 요구해 왔다. 경제대국다운, 그리고 유럽통합을 이끄는 국가로서 좀 더 책임있는 행동이 필요하다.

안병억 대구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안쌤의유로톡 제작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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