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충제 계란 낳은 264만 마리는? 독소 빼는 닭 다이어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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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계란을 낳은 닭은 앞으로도 계속 알을 낳게 된다. 그 계란을 먹어도 되나. 소비자의 궁금증과 걱정이 커진다.

살처분 않고 모이 사흘에 1회만 줘 #살충제 주로 쌓이는 지방층 분해 #축사 어둡게 해 살 빼주는 방법도 #이미 국내외 일부 농가서 활용

살충제 계란은 조류인플루엔자(AI) 같은 전염병으로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닭끼리 감염되지 않는다. 살충제는 동물의 몸 안에서 일정 기간 지나면 처음의 절반만 남는다. 이 기간을 반감기라고 한다. 피프로닐과 비펜트린의 반감기는 짧게는 2일, 길게는 일주일이다.

남태헌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장은 “반감기를 서너 차례 거치고 나면 닭 안의 살충제 성분이 제로에 가깝게 된다”며 “이 시기를 지나면 산란 적정기에 있는 닭이 생산한 계란은 괜찮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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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유로 농림축산식품부는 20일 살충제 계란을 낳은 닭에 대한 살처분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대신 닭이 살충제 계란을 낳을 때마다 전량 수거해 폐기한다는 방침이다. 그렇다고 소비자들이 안심하지는 못한다. 결국 닭에서 살충제 성분이 빠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이를 확인하기 쉽지 않다.

지금까지 계란에서 살충제가 검출되거나 기준치 이상 살충제를 쓴 것으로 나타나 불합격 처리된 농장은 49곳이다. 여기서 사육하는 닭만 264만 마리나 된다. 계란 폐기 처분 과정을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그래서 외국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피프로닐이 검출된 일부 유럽 농가는 모든 닭에서 피프로닐이 완전히 제거되고, 계란에서도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지 않는다는 걸 증명할 때까지 농장 문을 열 수 없다.

AFP통신에 따르면 농장이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닭을 살처분하는 방법이다. 전체 계란 농가 800여 곳 가운데 20%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네덜란드에서는 30만 마리를 살처분했다.

다른 하나는 닭 모이를 줄여 다이어트 시키면서 살충제 성분을 빼내는 방법이다.

살충제는 닭의 지방층에 쌓이기 때문에 지방을 줄이면 살충제도 몸 밖으로 빠져 나간다는 원리를 적용했다. 네덜란드 유기농 농가 단체인 ‘바이오넥스트’의 미리엄 반브리 대변인은 AFP와의 인터뷰에서 “피프로닐이 닭의 지방층에 집중적으로 쌓여 있기 때문에 살충제에 오염된 닭을 다이어트 시켜 독성을 빼내는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동물복지 관점에서 살충제 성분이 조금 검출됐다고 닭을 죽일 수는 없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네덜란드 가금류 조합에 따르면 닭은 보통 낮 햇빛 양이 줄어들기 시작하는 가을께 털이 빠지면서 지방도 함께 줄어든다. 농장주는 여기에서 착안해 닭 축사 환경도 어둡게 바꾼다. 닭 다이어트는 국내 일부 농가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계란에서 비펜트린 성분이 검출된 충북 음성군의 한 계란 농장은 폐기해야 할 계란 생산량을 줄이고 닭의 체질 개선을 위해 닭 다이어트를 선택했다. 전문 용어로 환우(換羽)로 불린다. 약 2주간 먹을 물은 주지만 사료를 사흘에 한 번꼴로 공급하는 식이다. 이렇게 하면 당장 알을 낳는 양이 줄고 묵은 깃털이 빠진다. 어차피 폐기해야 할 계란의 생산량을 줄이면서 닭 체내에 축적된 살충제 성분을 없앨 수 있다.

농식품부는 살충제 성분이 닭 몸 속에서 분변 등을 통해 자연스레 빠져나가기 때문에 시차를 두고 재검사를 진행하겠다는 방침이다. 김용상 농식품부 구제역방역과장은 “계란을 출하하는 마지막 시점까지 검사해 농약이 안 나왔을 때만 출하를 허용한다”며 “며칠이 걸릴지는 현장과 농가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말했다. 이때까지 생산된 모든 계란은 폐기 처분할 계획이다.

류영수 건국대 수의학과 교수는 “계란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지 않는다는 게 증명될 때까지 정부가 철저히 관리하는 한편 친환경 농약 등을 개발하는 데 투자를 늘리고 그 성과를 민간에 보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현영·심새롬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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