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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광장서 너도나도 집회 … 문재인 정부 100일간 700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또 뭐 하나 봐.”

청와대 앞 시위도 두 달 새 3배 #통행제한·소음에 민원 이어져

서울 광화문광장 주변 상인들이 최근 자주 하는 말이다. 광화문에서 세종로사거리 사이의 공간에서는 평일 하루 평균 4~5회의 집회가 열린다. 곳곳에서 구호를 외치고 피켓을 든 모습을 외국인 관광객들은 신기해하며 카메라에 담고, 직장인들은 무심히 지나친다.

지난 18일(금요일) 광화문의 풍경도 그랬다. 광장 남측에는 3년째 자리를 지켜 온 세월호 추모 공간이, 정부서울청사 옆의 세종로공원에는 설악산 케이블카 건립을 저지하려는 이들의 농성텐트가 있었다. 그 반대편 열린시민마당 앞에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민주노총과 미군기지 환수를 주장하는 환수복지당의 천막이 나란히 자리 잡았다. 천막에는 ‘시민의 통행을 방해하니 20일까지 철거하라’는 내용의 종로구청 공문이 붙어 있었다.

정오쯤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동물보호단체들의 ‘살충제를 맞는 닭’ 퍼포먼스가 열렸다. 철제 우리 안에서 닭 머리 탈을 쓴 두 사람이 분무기에서 뿌려지는 액체를 맞으며 버둥댔다. 그 옆 횡단보도 앞에서는 설악산 케이블카에 반대하는 박그림(71) 녹색연대 대표가 피켓 시위를 했다.

오후 2시엔 정부서울청사 앞 인도에 설치된 무대에서 ‘전국재가장기요양기관연합회’ 회원들이 장기요양급여 수가 인상 등을 요구했다.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는 보수단체들의 ‘문재인정권퇴진촉구 애국의병혁명본부’ 출정식이 열렸다. 보수단체의 구호와 바로 옆 집회의 ‘임을 위한 행진곡’이 뒤섞였다.

오후 4시쯤 보수단체들이 떠난 자리에 휠체어를 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 수백 명이 농성 5주년 기념 집회를 열었다. 이들이 준비한 밥차도 등장했다. 집회는 밤늦게까지 이어졌고, 오후 11시쯤 남은 200여 명이 돗자리와 침낭을 깔고 누웠다.

광화문 일대를 관할하는 서울 종로경찰서 경찰관은 “촛불 정국 이전엔 하루에 1인 시위 한두 건 벌어지는 정도였다. 요즘엔 경찰에 신고할 필요 없는 기자회견·문화제를 포함해 쉴 새 없이 집회가 진행된다”고 말했다.

청와대 앞길 개방 이후 1인 시위와 소규모 집회 중 상당수는 청와대 쪽으로 옮겨갔다. 종로서에 따르면 지난 5월 27건이던 청와대 앞 시위는 지난달 86건으로 늘었다. 경찰 관계자는 “촛불집회는 규모에 비해 관리가 어렵지 않았는데, 최근의 시위들은 워낙 다양해 질서 유지가 더 힘들다”고 말했다. 평일 4~5회, 주말 10회 안팎의 집회와 시위는 새정부 출범 100일 동안 700회가 넘었을 것으로 그는 추산했다.

서울 혜화동에서 시청역 인근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박모(48)씨는 “광화문광장 일대가 행사나 집회 때문에 평일에도 수시로 차량 통행이 제한된다. 집회를 하더라도 통행 문제는 일으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청와대 인근의 청운·효자동 주민들은 지난 17일 “집회 소음으로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며 청와대·국회·경찰청 등에 탄원서를 냈다.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는 “정권이 바뀐 뒤 광장 정치가 현실 정치에도 ‘먹힌다’는 기대감이 높아져 각양각색의 집회가 열린다.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도심 집회가 누군가의 정상적인 생활을 방해할 정도로 일상화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참가자들 스스로 ‘시민적 양식’ 차원에서 절제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상지·하준호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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