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더 주고 산 친환경 인증 계란…‘이럴 거면 왜 붙였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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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마크 중 일부. [중앙포토]

친환경 마크 중 일부. [중앙포토]

정부의 전국 산란계 농장 전수조사 결과 친환경인증 농가 계란에서 무더기로 살충제가 검출돼 소비자들의 신뢰를 저버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친환경 제품이라 몇 배 더 비싼 값을 주고 사먹었던 소비자들은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부적합 판정받은 49개 농장 중 #31개는 친환경인증 농가 #적발된 산란계 농장 59% 해썹 획득 농장

정부가 15일부터 18일까지 실시한 ‘살충제 계란’ 전수조사 결과 부적합 판정을 받은 49개 농장 가운데 친환경 농장은 63%인 31개에 달했다. 일반 농가(18곳)보다 오히려 친환경 농가에서 ‘부적합 판정’ 계란이 많이 나온 것이다. 많은 소비자가 그동안 친환경인증 마크를 보고 안전한 제품이라 믿으며 비싸게 구입했다.

친환경 인증 마크는 ‘HACCP(해썹ㆍ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 ‘로하스(LOHAS)’ ‘유정란’ ‘무항생제’ ‘유기농’ ‘동물복지’ 등의 단어로 인쇄돼 소비자에게 노출된다. 민간 인증으로는 한국표준협회가 부여하는 ‘로하스(LOHAS)’가 대표적이고, ‘유정란’이나 ‘HACCP(해썹ㆍ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 등도 계란 상자에서 자주 보이는 문구다. 특히 해썹은 위생 불량 등 생산 및 유통 과정의 환경을 제대로 관리하는지 심사해 부여하는 인증인데, 살충제 사용이 적발된 산란계 농장 59%가 이 해썹을 획득한 농장이었다.

계란마다 덕지덕지 붙어 있는 친환경 마크. [중앙포토]

계란마다 덕지덕지 붙어 있는 친환경 마크. [중앙포토]

친환경 인증제 자체의 의미가 무색해졌다. 농산물품질관리원 출신들이 인증 업무를 하는 민간업체에 다수 포진해 있으며, 유착관계가 형성돼 ‘부실 인증’이 많아졌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는 사전 예방 시스템부터 구멍이 나 있었다는 얘기다. 유통 과정에서 깨진 계란, 부패하거나 오염된 계란 등이 불법 거래돼 왔다는 점도 소비자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부실 인증’과 관련, 정부로부터 친환경 농산물 인증기관으로 지정된 민간업체 64곳 중 5곳이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출신 퇴직자가 대표를 맡고 있고, 임직원으로 가있는 사람도 수십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와 ‘농피아’의 유착이 이같은 부실 인증 사태를 불러왔다는 의심이 가능한 대목이다.

지난 19일이 이낙연 국무총리는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농산물품질관리원 출신들이 친환경 인증 민간기관을 장악하고 있다는 언론 지적에 대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걸 끊어주셔야 한다. 전문성이라는 미명 아래 유착까지 용납해선 안 된다. 국민 건강을 볼모로 한 매우 위험한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 총리는 또 “환경 인증ㆍ해썹(HACCP)처럼 소비자들이 100% 믿는 정부행정의 신뢰가 손상되면 살충제 파동보다 더 큰 상처가 될지 모른다. 완벽하게 재정비해줘야 한다”며 “농산물품질관리원을 포함해 식품 안전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담보해야 할 기관들이 그러지 못했다는 것은 뼈아픈 일이다. 잘못된 것은 도려낸다는 각오로 임해달라”고 강조했다.

김영록 농식품부 장관은 지난 18일 살충제 계란 재발 방지 대책 공식 브리핑에서 ‘친환경 인증제도가 민간 위탁으로 바뀐 것이 농식품부 산하 퇴직공무원의 일자리를 챙기려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유착 관계는 ‘없다’고 보고를 받았지만, 그에 따른 문제점이 있을 수 있으니 이번 기회에 점검하겠다”고 말했다.

한영혜 기자 han.youngh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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