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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배명복 칼럼

태영호의 위험한 베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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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배명복
배명복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배명복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배명복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김정은은 괌에 대고 절대 미사일 못 쏩니다. 내기를 해도 좋습니다.”

“북한은 절대 괌에 미사일 못 쏜다” #태영호 전 주영 북한 공사의 단언 #김정은, 미친 척할 뿐 미치지 않아 #괌 타격은 사실상 대미 선전포고 #그 위험성 김정은도 잘 알고 있어 #연합훈련 축소 노린 벼랑끝 전술

1년 전 탈북해 한국에 온 태영호 전 주영 북한 공사. 태 전 공사는 북한이 서태평양의 미국령 섬인 괌을 겨냥해 미사일을 쏘는 일은 ‘저얼대~’ 없을 것이라며 기자에게 내기를 제안했다. 실은 나도 북한이 괌을 미사일로 ‘포위사격’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 그게 이성이고 상식이다. 하지만 게임이 성립하려면 나는 쏘는 쪽에 걸어야 한다.

북한은 상식이나 이성과 친한 나라가 아니다. 만에 하나 북한이 괌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해 내기에서 지면 태 전 공사는 몇만원의 소주값과는 비교가 안 되는 엄청난 걸 잃을 수 있다. ‘한국에 망명한 최고위 북한 외교관’에게 걸었던 기대가 단박에 무너질 수 있다. 명예는 물론이고 존립기반마저 흔들 수 있는 위험한 도박에 베팅한 것을 태 전 공사는 알고 있을까.

김락겸 북한 전략군사령관이 지난 10일 예고한 대로 오늘 이후 임의의 시점에 괌 주변 30~40km 해역에 네 발의 화성-12형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한다면 그는 내게 술을 사야 한다. 그 술자리는 ‘공화국’ 출신 대북 전문가 태영호에 대한 신뢰가 깨진 것을 다독이는 위로의 자리가 될 것이다. 반대로 북한의 괌 타격 위협이 결국 ‘공포탄’으로 밝혀지면 그 술자리는 대북 전문가 태영호의 실력을 인정하는 축하의 자리가 될 것이다.

지난주 기자는 태 전 공사를 인터뷰했다(본지 8월 12일자 14면). 북한의 괌 타격 계획이 발표되기 전이었고, 당연히 괌은 논외였다.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북한에 대한 ‘화염과 분노’ 발언이 나왔고, 북한은 괌 타격 위협으로 응수했다. 그에 맞서 트럼프가 ‘군사적 해법의 장전’이란 말 폭탄을 날리면서 한반도의 위기지수가 급등하고 있다. 누구의 담력이 더 센지 겨뤄보자며 마주 보고 달리는 ‘치킨게임’의 전형이다.

김정은은 과연 괌을 향해 미사일을 날릴 것인가. 북한을 잘 안다는 전문가일수록 쏠 가능성을 크게 보는 분위기다. 나와 친한 한 전문가는 “북한이 말을 뱉어놓고 안 한 적이 없다”며 그 가능성을 95%로 전망했다. 국방부와 군 지휘부도 쏠 가능성이 크다는 전제하에 대비 중이란 얘기도 들린다. 진짜 문제는 트럼프의 대응이란 얘기도 나온다. 트럼프가 괌을 향해 날아오는 북한 미사일을 요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북 보복 공격에 나선다면 그때는 진짜 전쟁이란 것이다.

전화를 통한 추가 인터뷰에서 태 전 공사는 괌 타격에 대한 우려는 기우(杞憂)라고 단언했다. 몇 가지 근거를 제시했다. 우선 김정은은 미친 척하는 ‘미친놈 전략’을 쓰고 있을 뿐 절대 미친놈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령인 괌 인근 해역에 미사일을 쏘는 행위는 미국에 대한 사실상의 선전포고나 다름없다는 걸 김정은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트럼프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이다. 자기 체제를 끝장내는 게임체인저가 될 수도 있는 무모하고 위험한 도발은 김정은도 자제할 수밖에 없다는 게 태 전 공사의 판단이다.

김정은은 할아버지인 김일성과 다르다는 지적도 한다. 김일성은 젊어서부터 화약 냄새를 맡으며 직접 싸움을 해 본 사람이지만 김정은은 그런 경험이 전무하다. 전쟁에 대한 공포심리가 클 수밖에 없다. 또 괌을 향한 미사일 발사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면 북한도 내부적으로 전쟁에 임할 본격적인 준비를 하는 것이 정상일 텐데 전혀 그런 움직임이 없다는 점도 지적한다. 요란한 군중대회는 내부 결속을 위한 분위기 조성용이지 전쟁 준비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북한군이 괌 타격 계획을 밝히면서 김정은에게 “보고하고, 지시를 기다리겠다”고 한 것도 처음부터 물러설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 것이란 해석이다.

전쟁을 할 각오도, 준비도 안 돼 있는 북한이 괌 타격 운운하는 것은 한국과 미국의 여론을 겨냥한 벼랑 끝 전술이라고 태 전 공사는 말한다. 그동안 북한이 무모하게 나올 때마다 한·미가 여론에 밀려 뒤로 물러섰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런 기대로 미친놈 전략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주저하지 말고 밀어붙이면 북한도 결국 뒷걸음질치게 돼 있다고 태 전 공사는 강조한다. 북한의 괌 타격 위협에도 불구하고 한·미 합동군사훈련 축소 같은 유화책을 써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태 전 공사는 자유를 찾아 탈북했지만 창살 없는 감옥생활을 하고 있다. 김정은은 이복형인 김정남을 암살하면서 태 전 공사의 손발까지 묶는 일타쌍피의 효과를 거뒀다. 그런 그가 술값까지 내는 것은 가혹하다. 술값이 얼마나 들든 나는 그가 이기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배명복 중앙일보 칼럼니스트